[구모룡 칼럼] 떨어져 갈라진 종이 울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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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한국해양대 명예교수

지난달의 산불은 도처에서 무서운 기세로 타올랐다. 엄청난 산림을 태우고 민가와 축사를 덮쳤다.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고 삶의 터전을 잃었다. 주변부 주민의 안위가 소멸하는 극한 상황을 보여주었다. 산사나 암자도 불길을 피할 수 없긴 마찬가지였다. 수목과 동물 등의 뭇 생명체와 집과 가게와 사찰이 한꺼번에 잿더미가 되었다. 이러한 비참의 국면에서 내게 유독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고 뇌리를 맴도는 이미지가 있었다. 바로 잔해 위에 덩그렇게 내려앉은 고운사의 범종이다. 고운사는 경북 의성에 있으며 681년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주지하듯이 의상은 멀고 먼 서역으로부터 전해져 당나라의 장안에서 번역돼 들어온 〈화엄경〉을 요약해 〈법성게〉를 만들어 전파한 고승이다. 불교학에 어두운 만큼 그 세세한 내력을 알 길이 없으나, 온갖 꽃들이 만발할 화엄의 도량이 상당 부분 폐허가 되고 종루가 불타면서 추락한 종의 모습이 가슴을 때렸다.

새로운 생태적 재앙 ‘메가파이어’

그 잿더미 속 떨어져 갈라진 종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얼굴 봐

인간의 욕망과 자본 중심의 문명

자연의 질서 배반하며 파국 초래

은총의 빛 회복 사회로 나아가야

사월 초파일에 여러 불자가 떨어져 갈라진 범종을 둘러싸고 두 손을 모은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한시바삐 복원돼 심금을 울릴 종소리를 듣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한 표정이다. 따져 생각하면 붓다의 은총을 땅바닥에 떨어뜨린 이는 결국 대중이다. 실수로 저질러진 산불이라고 하지만 이토록 무섭게 타오른 연유도 인간이 기후를 붕괴한 데서 찾아야 한다. 이제 산불은 사람이 통제할 수 있거나 자연의 순환하는 현상으로 치부할 수 없는 양상에 이르렀다는 진단이 크다. 기후 위기와 함께 이전과 다르게 그 규모에서 본질 자체가 심각하게 변화한 양상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생태철학자 조엘 자스크는 그의 책 〈숲이 불탈 때〉에서 이 새로운 생태적 재앙을 ‘메가파이어’로 지칭한다. 이미 그린란드, 미국 캘리포니아, 그리스, 호주, 캐나다, 스페인 등 세계 도처에서 발생한 초대형 산불인 메가파이어는 매우 극단적인 현상이며 인간의 힘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인간의 ‘나쁜 삶의 기술’이라는 중력이 파국을 부르고 있다는 생각이다.

유독 떨어져 갈라진 종에 더욱 눈길을 둔 까닭은 자연과 신의 은총을 배반하는 인간의 욕망이라는 중력 때문이다. 제국 문화와 자본주의적 경제가 공포가 되었다. 이 대목에서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가 쓴 〈성탄절에 종소리를 들었네〉라는 시편을 또한 상기하게 된다. 그도 남북전쟁으로 불에 타 쓰러진 교회의 잔해 위에 떨어진 종을 보면서 참혹한 인간의 비극을 외면하는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 집이 불타면서 아내가 죽자, 그의 비애와 우울은 더욱 깊어지는데 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생환한 장남이 치유되는 과정과 더불어 서서히 그는 영혼의 종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 우연히 그의 생애를 다룬 영화 〈나는 종소리를 들었네〉를 볼 수 있었다. 전쟁과 재앙을 겪으면서 사람은 시몬 베유가 말한 ‘중력의 비극’에 그만 쉽게 사로잡히고 만다. 우리 또한 이처럼 은총의 빛을 외면하고 난파하는 맹목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잔해 위에 떨어져 갈라진 고운사의 범종에서 나 자신을 포함해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얼굴을 본다. 어쩌다 은총을 잃고 무례하고 품위 없으며 저급하게 되었을까? 말의 바른 의미를 왜곡하고 다른 이에게 거짓을 씌우며 배척하고 공격하는 현상이 일반화되었을까? 물론 권력은 오랜 역사 속에서 사슴을 말이라고 우기는 폭력을 행사해 왔다. 근대 독일에서 히틀러의 등장으로 1920년대의 10년 안에 사회가 급작스럽게 변화하며 평범한 사람들이 공격을 당하거나 서로 미워해 제대로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사태를 직면한 역사적 사실이 있다. 편을 가르고 다른 한편에 낙인을 찍거나 악마화하는 현실이 되었다. 물론 우리 사회를 이와 같은 최악의 예외에 견줄 수는 없다. 하지만 사회적 분노를 감추느라 우울한 사람들이 하나둘이 아닌 형국이 되었는데 지난 6개월의 사태가 이를 더욱 심화했다.

마치 떨어지거나 갈라져 소리를 낼 수 없는 종처럼 우리 사회는 서로를 잇고 만나고 대화하는 장소를 상실한 듯하다. 절차적 정당성을 잃은 권력이 폭력으로 변질되면서 붕괴했다. 다시 근본을 살려 종탑을 재건하고 삼천리강산에 종을 울려야 한다. 자유, 민주주의, 법치주의 등의 말이 왜곡되거나 잘못 구축된 시스템과 엘리트주의 체제의 민낯이 드러난 모순된 현실을 개조해야 한다. 모든 국민이 분노와 우울, 증오와 혐오에서 놓여나 평화와 희망의 주권을 추구하는 과정이 요긴하다. 드론으로 내려다본 산불 현장은 너무 참혹해 바로 보기 힘들 지경이다. 그렇지만 긴 겨울을 지나고 더딘 봄을 겪으면서 매화 피고 벚꽃 지며 철쭉에 이어 장미가 만발하는 자연을 통해 은총의 종소리를 듣는다. 정치권력이 바뀌는 일이 곧 미래를 보장하는 일은 아니다. 장미 대선을 지나서 화엄의 연꽃이 제대로 우리 사회의 광명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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