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대선과 암살의 기술
장병진 경제부 차장
“야 우리나라 대통령 없어졌어.”
KBS 예능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에 개그맨 김원훈이 조진세와 고등학생 이진(일진보다 아래 단계란 뜻) 역할로 출연해 대뜸 내뱉은 대사다. 대통령을 다시 뽑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김원훈이 설명하더니 조진세에게 “너 누구 뽑을 거야”라고 묻는다.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조진세. 결국 “학생 신분이라 투표하기는 애매하기는 해”라며 위기를 넘긴다.
그리고는 경찰관 역할인 개그맨 송필근에게 “경찰관 아저씨는 투표권도 있는데 누구를 뽑을 거냐”고 묻는다. 송필근은 “경찰관복은 정당과는 무관하다”고 오해(?)를 푼 뒤 화를 내며 상황을 넘긴다.
이 장면은 커뮤니티에서 ‘개그콘서트 암살단’이란 제목으로 화제가 됐다. 정치적 소신을 밝히는 것이 ‘댓글 테러’는 물론 여러 곤란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분위기를 개그맨들도 알았기에 이를 개그 소재로 썼을 터이다. 과거 정권의 블랙리스트에 자신의 이름이 올라 자신도 모르게 슬그머니 활동이 끊기는 ‘사실상 암살’이 이뤄진 적도 있다.
암살 가능성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2023년 발표된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사람들이 크게 느낀 사회갈등은 ‘보수와 진보’(82.9%)가 가장 많았다. ‘빈곤층과 중상층’(76.1%), ‘근로자와 고용주’(68.9%)보다 더 높았다. 2년이 지났지만 이 갈등이 줄었다고 느끼는 이들은 없다. 굳이 수치를 나타내지 않더라도 체감되는 정치 성향에 갈등은 극에 달해있는 느낌이다.
여론과 트렌드에 민감한 마케터들이 이런 분위기를 놓칠 리 없다. 부산 향토기업 대선주조는 제21대 대선 한정판 특별 에디션을 출시했다. 대선주조의 브랜드 ‘대선159’가 대선과 동음이의어라는 점을 활용한 캠페인이다. 상표에는 ‘함께 대선 합시다’라는 간결하고 핵심적인 메시지를 흰색 배경 상단에 배치했다. 암살을 우려했기 때문일까. 태극기 이미지로 대통령 선거의 중요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주요 정당 상징 색상을 디자인 요소로 활용하는 다소 ‘수비적인’(?) 모습도 보였다.
대선주조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매번 비슷한 전략을 쓰고 있다. 2017년 당시 카피는 ‘대선으로 바꿉시다’였다. 2017년 1월 ‘시원’(C1)을 대체하는 ‘대선’을 출시하고 5월 대선을 겨냥해 ‘대선으로 바꿉시다’라는 대선 마케팅을 펼친 셈. 이런 마케팅이 잘 통했기 때문일까. 당시 대선주조의 시장 점유율은 10%대에서 50%대로 올랐다. 5년 뒤인 2022년 대선을 앞두고도 대선주조는 ‘대선, 당신의 선택은’이라는 카피를 내걸고 캠페인을 진행했다. 아쉽지만 결과는 신통치 못했다.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소비자에게 크게 각인되지 못한 것은 확실하다.
이번 대선주조의 ‘함께 대선합시다’ 마케팅이 성공하기를 기대한다. 요즘 지역 기업 대선주조의 시장점유율은 2017년에 비해 많이 떨어져 있다. 대선 마케팅의 성공으로 지역 기업이 살고, ‘함께’해야 한다는 고민도 깊어진다면 더 바랄 것도 없다. 다행히 시장에서는 대선주조 마케팅 분위기가 좋다는 말도 들린다. 이것저것 재지 말고 소주 한잔 하며 속을 터놓으면 오해하고 미워할 일도 좀 준다. 이번 대선도 제발 좀 그랬으면 좋겠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