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여객선 공영제, 다시 논의해야 할 때
윤승철 무인도섬테마연구소 대표
집으로, 일터로, 병원으로 가야 하는데, 갈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다른 대체 교통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길이 없어 걸어갈 수도 없다. 섬사람들의 이야기다. 우리나라에 사람이 거주하는 유인도서는 총 481개인데, 이 중 정기선이 다니지 않는 섬이 73개로 15.7%에 달한다. 이들 섬은 육지와 연결되지 않았고 일반 항로는 물론 국가 보조 항로조차 없어 공식적인 해상 교통편이 없는 상태다. 설령 여객선이 다닌다 해도 민간 선사들이 수익성을 이유로 운항을 자주 결항하거나 높은 요금을 부과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여객선이 기항하지 않는 섬 중 100여 곳의 섬에서는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운영비를 마련해 도선을 운영하고 있다. 정규 항로마저 없는 섬들의 주민들은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며 낚싯배에 이동을 의존하기도 한다.
섬 주민 생존·이동권 여전히 외면당해
대중교통법 개정에도 현실은 제자리
준공영제 한계… 공영제로 가야 할 때
안전·공정·접근성 담보할 현실적 해법
그런 섬들에 사람들이 산다. 섬 주민들에게 여객선은 단순한 교통수단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생존권, 이동권, 안전권, 그리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권리와 직결된다. 한동안 여객선 공영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것도 국민의 교통 기본권과 행복추구권 보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늦었지만 2020년 ‘대중교통의 육성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대중교통법)이 개정되면서 연안여객선과 유·도선이 대중교통에 포함됐다. 그러나 제도상에서 대중교통에 편입되었다고 해서 기존 대중교통과 동등한 수준의 지원이나 정책적 우선순위가 보장되진 않았다. 실제로 산간벽지 주민을 위한 철도나 도로 인프라 구축·운영 예산과 연안여객선 관련 지원 예산을 단순 비교해 보더라도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법은 바뀌었지만, 현실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이미 2022년, 당시 정부는 섬 주민들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으로 ‘연안여객선 공영제’를 국정과제(120대 과제)에 포함하고, 2025년을 목표로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또한 해상교통 소외 도서 제로화와 연안여객선 전체 항로를 당일 육지 왕복이 가능한 1일 생활권으로 전환하겠다는 구상도 내놓았다. 그러나 정작 섬을 오가는 여객선은 오히려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2013년 168척이었던 여객선은 2023년에는 155척, 2025년(4월 기준)에는 147척으로, 여객운송사업면허 업체 수도 2021년 62개에서 2022년 58개, 2025년에는 54개가 되었다. 정책 방향과 실제 현장 간의 괴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셈이다.
여객선 공영제는 당연히 누려야 할 이동권 보장과 더불어 해상 안전에 기여하는 바도 크다. 현재 우리나라 연안여객선은 대부분 영세한 민간 선사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2025년 현재 전체 54개 여객선운송업체 중 18개 업체가 10억 미만의 자본금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40개 업체는 3척 이하의 선박만을 보유하고 있다. 2023년 기준 기본 선령(船齡)인 20년을 넘겨 운영 중인 선박도 31척으로 20%에 달한다. 영세한 경영, 노후 선박, 안전 투자 부족 등의 구조적 한계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이유다. 2023년 일본에서는 연안여객선 2102척 가운데 55척만이 사고가 난 반면, 같은 해 우리나라에서는 전체 연안여객선 155척 중 58척이 기관 손상(30%) 등 다양한 원인으로 사고를 겪었다. 우리나라 연안여객선 운용과 안전 실태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여객선 공영제는 또한 대중교통임에도 지나치게 비싼 요금을 조절해 줄 수 있다. 교통수단별 km당 운임 단가를 비교해 보면, 연안여객선은 306원으로 항공(209원)보다 높다. 특히 인천-대이작도, 인천-백령도, 포항-울릉도 등 일부 항로의 경우에는 1km당 요금이 KTX의 5배 수준이다. 운임 현실화는 비단 섬 주민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여객선 이용객의 75%는 일반 국민이다. 섬을 방문하고, 섬의 가치를 아는 관광객들에게도 도움이 되며, 이는 곧 지역 경제의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 일부 지자체가 시내버스와 같이 연안여객선 준공영제를 추진하고 있지만 이는 근본적 한계가 존재한다. 제도적으로 지자체는 여객선 항로와 운임에 대한 인·면허권이 없어 운항 계통 서비스 개선이나 운항 적자 관리에 실질적으로 개입할 권한이 없다. 권한이 없는 상태에서 재정지원만 늘리는 준공영제는 결국 민간 선사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고, 서비스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운영 적자까지 공공이 모두 떠안게 되는 구조로 귀결될 수 있다.
따라서 이제는 준공영제의 한계를 넘어 공공이 직접 항로와 운임을 관리하고 서비스 품질을 책임지는 공영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2016년부터 꾸준히 여객선 공영제를 시행 중인 전남 신안군의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여객선 공영제는 섬과 육지를 잇는 선박을 안전하고 합리적인 대중교통으로 자리매김하게 해 섬 주민의 이동권 보장은 물론, 국민 모두의 편리한 접근성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