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학수의 문화풍경] 행복의 철학, 목표 추구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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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철학 아카데미 숲길 대표

자기 성장 통해 삶의 의미 모색
난관 해결 고통 감수해야 도달
존재 지향적 가치관 전환하길

우리는 흔히 “행복은 ○○를 소유하는 것” “행복은 △△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치 행복이 욕망이나 소망의 달성 여부에 달려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이다. 물론 원하는 것을 얻는 기쁨이 순간적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과연 행복의 본질이 그 찰나의 만족감에만 머무는 것일까? 많은 이들이 행복을 소망이 충족되는 상태라고 믿지만, 김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은 이러한 통념과는 다른 깊은 통찰을 우리에게 전한다.

시에는 활짝 핀 모란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는 없다. 시인은 모란이 피는 짧은 시간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순간을 간절히 기다리는 과정 속에서 느끼는 희망과 설렘, 그리고 기다림 자체의 가치를 노래한다.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라는 구절은, 아직 모란이 피지 않은 현재를 단순한 ‘기다림’의 시간이 아닌,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아직’의 시간으로 인식하게 한다. 드디어 5월 초 모란은 활짝 핀다. 그러나 ‘드디어’의 시간은 얼마 가지 못한다.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모란은 이내 떨어져 시들어 버리고, 만개의 환희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라는 허무함으로 변모한다.

시인은 ‘모란이 뚝뚝 떠러져 버린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흰 서름에 잠길테요’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허무함은 모란이 피는 그날부터 시작되었다. 욕망이 충족된 순간의 기쁨은 찰나에 불과하며, 감각 적응 현상처럼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강도가 점점 더 약해지기 때문이다. 감각 적응은 냄새나는 방에 들어가도 좀 시간이 지나면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의 감각이 지속적인 자극에 둔감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모란은 피는 순간 이미 지고 있는 것이다. “찬란한 슬픔”이라는 모순적 시어는 목표 달성에 수반하는 양면성, 즉 즐거움과 동시에 허무함이라는 이중성을 지적하는 것이다.

김영랑의 시에서 모란이 피어나기까지의 기다림은 평온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다. 그것은 혹독한 겨울의 추위와 눈바람을 맞으며 인내하는 고통의 시간 같은 것이다. 우리는 흔히 행복을 고통 없는 안락한 상태라고 상상한다. 마치 따뜻한 햇볕 아래 모든 어려움이 사라진 듯 편안한 곳에 머무르는 것이 행복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곳으로 나아가는 여정에는 필연적으로 난관이 수반된다. 많은 이들이 고통을 회피하며 안락한 영역에 머무르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자세로는 진정한 행복에 결코 다다를 수 없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이것이 행복의 패러독스이다. 어떤 사람들은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행복 자체를 포기하고 컴포트 존에 머무르고자 한다. 컴포트 존이란 친숙하고 안전하고 편안하게 느끼는 심리적 상태이다. 우리는 늘 다니는 길로만 다니며, 이전에 했던 일만 하고, 친구들하고만 만나는 등 컴포트 존을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 위험과 불안, 그리고 도전의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많은 이들은 컴포트 존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 것이다. 마음을 비운다면서 목표를 낮추거나 목표를 세우지 않고 살아가는 것도 컴포트 존 안에서 체류하고자 하는 자세이다. 그러나 이런 마음가짐으로는 행복을 얻을 수 없다. 진정한 행복은 마치 험준한 산을 오르는 등반과 같다. 숨이 차고 다리가 아픈 고통의 순간들 덕택에, 사방으로 툭 트인 정상의 전망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행복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하나는 ‘소유 지향적인 삶’이고, 다른 하나는 ‘존재 지향적인 삶’이다. 소유 지향적인 삶에서는 물질적 풍요와 성공을 통해 행복을 얻으려 한다. 더 좋은 집, 더 비싼 차, 더 높은 지위를 갈망하며 끊임없이 소유를 늘리는 삶에서 행복은 불안정하고 일시적이다. 반면, 존재 지향적인 삶에서는 자기 자신의 성장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행복을 찾는다. 자신을 창조하고 타인과의 발전적 교류 속에서 환희를 경험하는 사람은 잘 나가는 타인을 질투하지 않는다. 우리가 소유 모드의 삶으로부터 존재 모드의 삶으로 전환한다면, 대중의 시기를 득표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현대 민주정치의 선거 전략에도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안락함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변화와 성장에 집중하며, 목표를 향해 용감하게 나아가야 한다. 김영랑의 시처럼, 모란이 피기까지의 인내와 기다림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행복의 깊이를 깨닫게 될 것이다. 고통을 회피하는 안락함 속에서는 결코 피어날 수 없는, 값진 행복의 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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