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희망 고문 대선 공약

강희경 기자 him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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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경 사회부장

월드엑스포 유치, 산업은행 이전 등
윤 전 대통령 부산 공약 이행 안돼
극심한 정쟁 속 부산 갈수록 암담

3년 만에 다시 다가온 대선 앞두고
해사법원 설치·해수부 이전 등 공약
선거 표몰이 용 공약 그칠까 우려

또다시 대선이다. 12일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대선은 지역이 중앙에 존재감을 보일 수 있는 중요한 기회로 여겨져 왔다. 그래서 각 지자체는 물론 시민사회단체 등도 대선 때마다 지역 현안들의 대선 공약 반영을 위해 분주하다. 이번에도 부산에선 시와 부산상의, 시민단체 등이 최근 대선 공약에 포함되어야 할 과제들을 선정했다.

그러나 대선이 갈수록 보수 진보 양 진영의 정략적 대결로 치닫고 있는 데다, 지난 대선 때 부산 공약의 진척 상황을 보면 대선 공약이 그렇게 중요한가라는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직전 대선 주요 공약들이 결국 공수표가 돼 그간 지역에서 기울여온 노력이 허사로 돌아간 현실을 보면서 허탈하기만 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공약한 2030 월드엑스포 부산 유치전은 결과를 다시 떠올리기도 민망할 정도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완패했다. 당초 리야드와의 승부에서 대등할 것이라고 판단했던 정부와 부산시의 준비 부족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에 노무현 전 대통령 때부터 시작된 북항 재개발 사업도 여전히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동남권의 염원인 가덕신공항 건설 사업도 우여곡절을 거치며 드디어 첫삽을 뜨는가 했지만 다시 차질을 빚고 있다. 시공사인 현대건설 측이 공사 기간을 입찰 공고에서 제시한 84개월(7년)이 아니라 108개월(9년)로 고집하면서 국토부가 수의 계약 절차를 중단했다. 다시 입찰을 하든, 어떤 방식이든 당초 정부가 약속했던 2029년 개항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 사이 중·장거리 해외 노선을 이용하기 위해 인천공항을 오가는 동남권 주민들의 불편과 손해는 계속되고, 트라이포트 운영을 통한 동남권 발전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

윤 전 대통령의 부산 핵심 공약이던 산업은행 본사 부산 이전도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산업은행 이전이 부산을 실질적인 금융중심지로 성장시키고 동남권 산업 생태계를 업그레이드시킬 촉매제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대통령과 국민의힘 주도의 공약에 의회를 장악한 더불어민주당이 철저히 반대했다. 월드엑스포 유치 실패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부산시와 정부가 추진한 부산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 역시 민주당이 외면했다.

결국 지난 대선에서 제시된 주요 대선 공약 중 실제로 이행된 것은 없다. 각 당 모두 서로 비난하기 바쁘지만, 쇠락하는 부산을 되살리기 위한 진심어린 노력은 양측 어디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국민의힘은 야당 설득에 소극적이었고, 민주당은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모든 일에 반대만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윤 전 대통령의 뜬금없는 계엄령 선포와 그에 따른 탄핵으로 인해 대선은 예정보다 2년 일찍 찾아왔다. 아무것도 이뤄놓은 것 없이 완전히 새롭게 판을 짜야 할 가능성도 있다. 탄핵 이후에도 자중지란인 국민의힘은 이제야 후보를 정해 아직 발표된 지역 공약이 없다. 반면 이재명 후보를 내세운 민주당은 일찌감치 공약을 발표했다. 3년 전 공약이었던 부울경 메가시티 구축과 해운·물류 클러스터 조성 외에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과 해사전문법원 설치라는 깜짝 공약을 내놨다. 해양산업의 기반을 강화하면서 부산을 명실상부한 해양강국의 중심도시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여기에 북극항로를 개척해 대륙철도와의 연결을 통해 부산을 동북아 물류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도 더했다.

부산의 십수년 된 과제였던 해사법원 설립과 함께 해양수산부 이전까지 발표한 이 후보의 공약에 설렌 것도 잠시, 그는 수도권 공약을 발표하면서 인천에도 해사법원을 설립하겠다고 했다. 인천에 들어설 법원은 국제 해사사건 전문으로 특화 발전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의 구상대로면 향후 해사사건은 ‘국내 부산, 국제 인천’으로 이분화한다. 해사사건 대부분이 국제계약과 관련한 분쟁을 다루는 해외 소송이다. 부산과 인천의 표를 의식해 해사법원 공약을 이용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여기에 부산이 크게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공약도 단순히 선거용이란 의문을 낳는다.

지난 3년을 또 허송세월하면서 부산은 더 힘들어졌다. 올해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8~39세 청년 인구를 추월할 정도로, 부산은 더 노쇠해졌고 경기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소멸하는 지방을 살려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선 지금 당장 뭐라도 해야 할 때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산업은행 이전과 해양수산부 이전 등 각 당 공약 가리지 말고, 바로 행동에 옮기길 바라본다.


강희경 기자 him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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