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오리를 품다
김정화 수필가
도심 한복판 있는 연산동고분군
일제 강점기 부장품 거의 도굴
출토된 오리모양토기 더 애틋
날렵한 생김새 독보적 존재감
오리 관해 알수록 경외감 느껴
도심 한복판에 고총이 올록볼록 돋아 있다. 길게 뻗은 산줄기에 거대한 알이라도 밴 듯 봉우리마다 큰 고분을 중심으로 작은 봉분들이 모여들었다. 모두 열여덟 기로 삼국시대 선조들이 조성한 지배집단의 무덤으로 추정한다.
연산동고분군이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에 세 명의 도굴꾼이 언론에 보도되면서부터였다. 철제 갑옷과 투구를 비롯하여 굽다리접시와 그릇받침, 긴목항아리 토기들과 화살통, 쇠촉 등의 철기와 무기류가 출토됐다. 하지만 안타까운 일은 도굴로 부장품이 대부분 망실되었다. 그나마 출토된 조그만 오리모양토기가 남아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는다.
물론 신발모양이나 등잔모양과 낙타모양 같은 세련된 토기도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나, 연산동 무덤의 오리모양토기는 이유 없이 애정이 간다. 그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그냥, 무조건 좋은 경우이다. 그동안의 오리모양토기는 굽다리 위에 오리를 올려놓은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그들 오리는 한결같이 등 위에 잔의 아가리 모양을 붙였거나 꼬리 쪽에 구멍을 내어 그릇 역할을 도우며, 구멍에 기름을 넣어 등잔 기능을 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것들은 주로 몸집이 대칭적이거나 고도비만인 것이 많은데 기우뚱기우뚱 걷는 오리의 뒷모습을 상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난다.
이곳의 돌덧널무덤에서 출토된 오리모양토기를 한번 보시라. 사진은 검색만 하면 나오고 실물은 부산박물관에 고이 모셔놓았다. 물론 발견 당시에는 여러 조각으로 깨져 있었으나 복원과정에서 접착되었다. 가히 생김새가 독보적이다. 몸을 낮게 엎드렸다. 눈앞에 물고기 사냥감이라도 있는 양 단풍잎 같은 양발은 깃털 아래 숨긴 채 바짝 긴장하고, 바람에 마른 풀이라도 날리면 후다닥 날개를 펴고 쏜살같이 달려들 것만 같다. 콩알만 한 콧구멍은 들창코처럼 치들려서 비 오는 날이 걱정되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후각은 더 발달하였을 듯하다. 부리가 넙덕하고 짧아서 거추장스럽지 아니하고 뻐끔하게 꺼진 눈은 먹이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미동도 없다. 엉덩이 안쪽은 결실되어 텅 빈 속을 드러내 놓았지만 그렇다고 결코 가벼운 행색이 아니다. 천 년을 넘게 무덤 속에서 제 주인을 지키고 영혼을 안내했으리라 생각하니 가상하기 짝이 없다.
그러면 오리는 어떤 동물인가. 샤머니즘의 우주창조신화에 의하면 태초의 물바다에서 인간을 구원한 동물은 오직 오리뿐이었다. 오리가 수중 밑바닥까지 잠수하여 흙을 퍼다가 물 위에 붓고 계속 쏟아부어 그 흙이 쌓여 오늘날의 땅이 되었다 한다. 공중을 날고 물에서 헤엄치며 땅 위를 걷는 탁월한 능력이 있는 오리야말로 땅과 하늘을 연결하기에 충분한 자질이 있다고 여겼다. 오리를 한 번이라도 키워본 사람이라면 오리의 위풍당당한 걸음걸이를 경외하지 않을 수 없다. 뒷걸음치지 않고 직진의 걸음을 걷는 강인함을 알면, 오리가 과연 인간보다 못하다고 단정 지을 수 있겠는가.
일렬로 늘어선 고분군을 한 바퀴 도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리모양토기가 출토된 커다란 봉분 앞에서 한참을 멈추었다. 그때 산책 나온 동네 노인이 도굴꾼들 때문에 거칠산국 무덤 속이 텅텅 비어버렸다고 한숨을 쉬며 지나간다. 내 키보다 높고 큰 이 고분 속에는 이제 오리모양토기는커녕 더 이상 잠자는 오리도 오리알도 없다. 유물이 모두 빠져나가고 주인도 알 수 없는 빈 무덤 곁으로 쓸쓸한 바람만 휘돌며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