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트럼프 관세 전쟁 2.0, 한국은 응답자 아닌 제안자 돼야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백창봉 동아대 기초교양대학 겸임교수

1980년 당시 미국은 소련과의 냉전으로 인한 긴장, 이란 인질 사태로 인한 경제침체 등 대내외적인 불안정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때 대선에 나선 레이건은 ‘Let’s Make America Great Again’이란 구호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후 트럼프는 2016년과 2024년의 미국 대통령 선거 때 다시 이 구호를 사용하였다. 다른 점은 레이건의 구호에서 Let’s를 빼고 보다 직접적이고 명령형 느낌을 살렸으며, 기업가답게 상표로 등록까지 했다는 것이다. “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 트럼프 대통령의 복귀와 함께 시작된 2기 행정부의 무역정책은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America First!’ 미국 우선주의다.

지난 1월 20일, 그는 취임 연설에서 “외국을 세금으로 부유하게 하지 않겠다”며 전면적인 관세 전쟁을 예고했다. 그리고 불과 몇 달 사이, 우리는 실체 없는 숫자의 압박을 실감하고 있다. 협상론적 관점에서 본다면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앵커링(Anchoring)' 전략이다. 그것도 세기적 선점효과를 위한 빅 앵커링이다. 말 그대로 근거 없는 과도한 숫자(허수)를 제시해 협상의 출발점을 지배하는 전략이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이러한 전략에 수동적으로 대응해선 안 된다. 한국은 이제 반응형 협상가인 ‘응답자’에서 설계형 협상가인 ‘제안자’로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문제를 재정의하고, 협상의 의제를 새롭게 설정하는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 미국이 요구하는 조건이 아닌 비전을 중심에 두고 미국의 불안이나 트럼프의 자존심과 욕구, 미국민의 가치 등을 파악해서 자극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대비해야 할 첫 번째 전략은 '리프레이밍(Reframing)'이다.

미국은 한국의 무역흑자를 문제 삼고 있다. 그러나 실제 문제는 무역수지라기보다는 미국의 기술안보 불안이다. 반도체, 배터리, 방산부품 등 미국이 생존을 위해 의존하고 있는 공급망의 핵심을 우리가 쥐고 있다. 무역문제를 경제안보로 리프레임하고, 협상 의제를 전환해야 한다.

두 번째 전략은 '리패키징(Repackaging)'이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선박 수리·해군 정비 기술을 갖고 있다. 미국은 자국 내에서 단 한 척의 항모도 수리하지 못하는 구조다. 이를 단순한 산업 부문이 아니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유지시키는 핵심 공공재로 포장할 수 있다. ‘한국의 기술이 없다면, 태평양을 지킬 수 없다’는 논리로, ‘전통 우방 한국의 기술력이 전통 우방 미국의 군사력과 함께 한다면, 인도 태평양은 우리의 활동 무대가 된다’라는 재포장이 가능하다. 아니 ‘미국의 도움으로 이만큼 기술력을 가진 한국이 되었으니, 이젠 미국의 인도 태평양 전선에 도움을 줘 보답할 기회를 주기 바란다’라고 과대포장도 가능하다.

세 번째 전략은 '리포지셔닝(Repositioning)'이다.

이제는 미국이 제시하는 조건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새로운 판을 제시해야 할 시점이다. 예를 들어 한미 해군 공동 정비 센터 구축, 미국산 LNG 도입 확대와 한국산 에너지 시스템 연계 등을 포함한 협상안을 선제적으로 제시해 이익의 교환 구조를 우리가 설계해야 한다.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마샬 군도를 보자.

이 나라는 미국과 자유연합협정(COFA)을 체결해 군사적 전략 요충지로서의 가치를 활용하고, 미국의 지원을 받는다. 국토는 작지만, 전략은 크다. 마샬 군도의 협상력은 국력의 함수가 아니다. 이는 한국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트럼프2.0의 관세 전략은 단순한 보호무역이 아닌 전략적 협상의 포석이다. 우리가 이 게임에 응답자로 참여하면 손해는 필연이다. 이제는 게임의 규칙을 재설정하는 ‘제안자’가 되어야 한다. 협상은 숫자 싸움이 아니라 프레임 싸움이다. 우리가 먼저 문제를 재설정하고, 이익의 구조를 새롭게 짜고, 제안의 방향을 주도할 때 비로소 진짜 협상이 시작된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