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진규의 법의 창] 사기 없는 세상, 신뢰 사회로 가려면
법무법인 정인 변호사
“절대 남에게 말하지 마세요.” “지금 송금하지 않으면 큰일 납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평생 후회합니다.” 사기범들의 대사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매번 속는다. “설마 내가 그렇게 당할 줄은 몰랐어요.” 사기 피해자들의 공통된 말이다. 누군가는 고수익 투자로, 누군가는 지인의 부탁으로, 또 누군가는 말 한마디에 인생을 송두리째 잃었다. 우리 사회에 사기 범죄는 이제 특별한 일이 아니다.
최근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사기 피해 신고는 하루 평균 1000건을 넘긴다고 한다. 보이스피싱, 투자사기, 전세사기, SNS 쇼핑몰사기, 코인사기, 부업사기, 그리고 지인 간 금전사기까지. 사례는 너무나 다양하고, 수법은 점점 교묘해지며, 그 피해는 점점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사기범’의 처벌만을 논할 수 없다. 왜 사기가 이렇게 끊이지 않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는지를 본질적으로 질문해야 한다.
전국 사기 피해 하루 평균 1000건 넘어
사기범 처벌 속도 늦고 피해 회복도 더뎌
법, 마음까지 규제 못 해…내면 성찰 필요
형법 제347조는 사기죄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사람(타인)을 기망하여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얻은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또한 특별법은 피해액에 따라 가중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사기범의 처벌 속도가 느리고, 피해 회복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히 디지털 기술과 결합한 지능형 사기는 수사도 쉽지 않다. 사기 피해의 70% 이상에 달하는 지능형 사기의 피해자들은 분노와 무력감 속에서 좌절한다.
사기 범죄가 과거보다 더 만연한 원인으로 사회적 환경 변화에 따른 경제적 불안, 온라인 거래 활성화로 인한 사회적 디지털 환경의 변화, 처벌의 느슨함으로 인한 범죄자에게 ‘리스크 대비 수익이 높은’ 범죄로 인식되는 현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태도가 가져온 사회적 신뢰 저하 등을 들 수 있겠다. 이러한 원인에 대해 첫째, 진화하는 사기 범죄에 대응하여 법과 제도의 정비를 통하여 사기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범죄수익의 박탈, 피해회복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 디지털 범죄 대응 전담 기구의 확대와 기술적 감시 시스템이 요구된다. 둘째, 금융·디지털 문해력 교육 강화가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금융과 디지털 문해력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성인을 대상으로도 지속적인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 셋째, 온라인 플랫폼 책임 강화가 필요하다. 중고 거래 앱, SNS, 투자 플랫폼 등 사기 발생 가능성이 높은 온라인 환경에 대해 피해 보상 제도를 포함한 운영자의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넷째, 신뢰 회복을 위한 사회, 문화적 변화가 절실하다. 이익보다 양심, 경쟁보다 연대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정직이 손해가 되지 않는 사회, 타인을 속이기보다 배려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사기는 설 자리를 잃는다.
위와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기의 근절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한계는 ‘법의 예방 기능’만으로는 부족함을 의미한다. 법은 ‘범죄 이후’에 개입할 수 있지만,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기획’이 따로 필요하다. 사기 범죄의 심리적 본질을 불교의 통찰, ‘탐·진·치’에서 참고해 볼 수 있다. 불교는 인간의 고통과 악행의 뿌리를 ‘탐욕(탐), 분노(진), 어리석음(치)’의 세 가지 독으로 설명한다. 사기 범죄 역시 예외가 아니다. 피해자는 쉽게 돈 벌고 싶은 마음으로 유혹에 빠지고, 사기범은 더 많은 이득을 탐해 범죄를 저지른다(貪·탐).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분노는 “나만 당할 수 없다”는 방식으로 또 다른 피해자를 낳는다(瞋·진). 경계심 없는 어리석음은 사기를 반복하게 만든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진실을 분별하는 지혜는 부족하다(癡·치). 법은 이러한 마음의 문제를 직접 규제하지 못한다.
사기 예방의 최후 방어선은 ‘나 자신의 판단력’이다. “나한테만 너무 좋은 기회는 없다” “믿고 싶은 마음을 경계하라” “모르면 물어보라”는 단순한 원칙이 사기를 막는다. 불교에서 말하는 ‘보시(나눔)’ ‘자비(공감)’ ‘지혜(통찰)’ 중 ‘지혜’는 단지 수행의 덕목이 아니라 현대사회 범죄 예방의 또 하나의 실질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사기를 줄이기 위해선 속이는 사람을 막는 법과 속지 않는 사람을 만드는 교육,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내면의 성찰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사기는 단순한 범죄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이며, 공동체를 파괴하는 해악이다. 대한민국이 진정으로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경제성장뿐 아니라 ‘신뢰 사회’로의 도약이 병행되어야 한다. 사기에 대한 단호한 대처와 함께, 정직이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적 토양을 마련하는 일, 그것이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할 과제다. 누군가가 “돈을 쉽게 벌 기회가 있다”고 귀에 속삭인다면, “변호사나 전문가에게 물어 보고 답해주겠다”고만 해도 사기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