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의 세상톡톡] 신공항 넌더리 시즌2
어렵게 입지 확정하고도 미적거리다
김해공항 확장안에서 가덕행 급선회
특별법 제정에도 흘러간 시간만 8년
또다시 공사기간 2년 연장안에 흔들
누더기 국책사업에 지역민은 몸서리
정권, 신뢰 회복 달린 문제로 여겨야
2017년 말 ‘신공항 넌더리’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김해 돗대산 여객기 추락 사고와 김해공항 포화 문제가 동시에 불거지면서 본격화한 신공항 건립 문제가 정권이 세 번 바뀌면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며 적은 소회였다. 이명박 정권 때는 그냥 기자로, 박근혜 정권 때는 근접 취재 기자로, 문재인 정권 때는 근접 취재 부서 데스크로 신공항 문제를 바라보면서 든 느낌이 ‘넌더리’였다는 뜻일 테다.
좀 오래된 기억이라 넌더리라는 용어가 적절한지 사전을 다시 뒤적여 본다. 넌더리의 사전적 의미는 ‘지긋지긋하게 몹시 싫은 생각’이라는 뜻이다. 비슷한 뜻으로는 몸서리, 싫증 등이 나열돼 있는데 그 용어들을 접하자마자 과거의 기억들이 다시 생생하게 소환돼 왔다.
당시 칼럼은 박근혜 정권 때 결정이 난 김해공항 확장안을 놓고 정권이 바뀌자 또다시 신공항 입지 선정을 원점 재검토하려는 당시 여권의 움직임을 비판하려고 쓴 기억이 난다. 박근혜 정권 당시 김해공항 확장안을 부산시민이 수용한 것은 그 안이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김해공항 문제 해결을 위해 시작한 신공항 논의가 그 당시에만 벌써 20년이 넘었기에 한시라도 빨리 신공항을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감에서였다. 따라서 신공항 입지 선정을 새로 시작하자는 것은 이미 결정된 김해공항 확장안을 다시 늦추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게 칼럼의 요지였다.
김해공항 문제를 풀기 위해 동남권 신공항을 같이 만들어가자는 부산시의 순진한 요청이 가덕-밀양 대결구도로 변질된다. 수도권 언론들이 신공항 유치하려면 핵폐기장 같은 혐오시설을 함께 유치하라며 비아냥거린다. 이 과정을 기억하는 지역민들의 트라우마를 다시 건드리지 말라는 얘기까지 덧붙일 정도로 칼럼엔 감정이 가득 실려 있다. 부산시 출입 기자로 현장에서 신공항 입지 선정 용역을 지켜보며 용역이 김해공항 확장안으로 결론나는 과정을 모두 겪었던 개인적 경험까지 그런 감정에 불을 붙여 결국 ‘넌더리’라는 제목이 나온 듯했다.
신공항을 두고 벌어진 정치 게임에 대한 강력 비판에도 불구하고 결국 신공항 문제는 민주당 주도로 2021년 김해공항 확장안을 폐기하고 가덕신공항을 새로 추진하는 특별법 제정에까지 이르렀다. 2017년에도 이미 지역민들이 넌더리를 낼 정도로 주물럭대던 신공항 문제가 그로부터 4년이 지나 특별법을 다시 만들기에 이르렀고, 법 시행 이후 다시 4년이 더 흘렀으니 8년의 세월이 공중에 떠 버린 셈이다.
지역민 대부분은 그렇게라도 특별법이 만들어졌으니 신공항 건설은 차질없이 진행되는 것으로 알았다. 김해공항 문제 해결이 늦어져 지금도 도떼기 시장처럼 미어터지는 김해공항에서 불편을 감수하거나 국제선 이용을 위해 인천공항까지 출국 하루 전에 가는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조만간 가덕신공항에서 비행기 탈 수 있겠지’라는 희망을 가졌던 세월이었다.
그러던 가덕신공항 문제가 다시금 도마에 오른 것은 윤석열 정권 때였다. 2030 엑스포 부산 유치에 대통령이 직접 팔을 걷고 나서자 당장 문제가 된 것이 엑스포 개최 전 신공항 개항 가능 여부였다. 그 전까지 국토교통부가 제시한 가덕신공항의 개항 시점은 2035년. 그것조차 아직 공사 시작도 하지 않은 사전타당성 검토 수준이었다. 하지만 엑스포 유치에 공을 들이던 대통령이 엑스포 개최 이전 신공항 개항 가능 여부를 타진하자 국토부는 158억 원의 예산으로 전문적인 검토 끝에 2029년 12월 개항이라는 기본계획을 내놓았다.
이후 최근까지 진행된 가덕신공항 관련 프로세스는 우리가 익히 아는 것처럼 국토부와 건설 계약을 맺은 현대건설 컨소시엄의 ‘몽니’에 가까운 공기 2년 연장안으로 인해 질곡 속으로 빠져들었다. 입지와 관련해서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몇차례나 원점 재검토에 시달려 온 지역민으로서는 공기까지 재검토 도마에 오르자 가덕신공항이 과연 제대로 지어지기나 할 것인지 불안에 휩싸였다. 국토부가 현대건설 컨소시엄과 맺은 신공항 건설 계약 무효화 작업에 걸리는 시간과 재입찰, 기본설계안 재수립 등의 시간 등을 고려하면 불안은 강한 의구심으로 이어진다.
혹자는 성급하게 짓는 것보다는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안전하게 짓는 것이 더 낫지 않느냐며 지역민들의 의구심이 지나치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2017년 칼럼에서도 지적했듯이 신공항은 이 지역 사람들에게 장기간 지우기 힘들 정도로 강한 트라우마를 새겨 온 이슈다. 지역에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공항 정책에 따른 국책사업임에도 입지는 물론 건설 공기조차 오락가락하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넌더리’가 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느 정권이든 이 넌더리를 치유하지 않고서 어떻게 신뢰를 쌓을 것인가.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