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손기정과 일장기, 보스턴마라톤
변현철 문화부 독자여론팀장
베를린 올림픽 일장기 떼어낸 신문, 경매
남승룡과 함께 한국인 기상 세계에 알려
광복 후 사령탑 맡으며 한국 마라톤 빛내
뛰어난 지도력, 서윤복 보스턴 우승 견인
마라톤 영웅 고(故) 손기정 선생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출전과 우승 소식을 담은 ‘조선중앙일보 원본 신문’ 1936년 8월 10, 13, 14일 자 발행분 3점이 지난달 14일 경매에 나와 화제가 됐다. 손기정 선생은 한국 마라톤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선구자다.
손기정은 일제강점기인 1912년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태어나 소학교 시절 때부터 마라톤을 시작했다. 손기정은 1932년 동아일보 주최 경영마라톤대회, 1933년 고려육상경기회 주최 제3회 15마일 크로스컨트리경주대회 등 각종 국내 대회에 출전해 우승하며 두각을 드러냈다. 이후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했고 일제강점기 시기 한국인 신분으로 일본인들을 이겨 일본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이때 같이 선발전에 출전한 한국인 마라톤 선수 남승룡도 국가대표로 뽑혔다.
일제는 한국인이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을 막으려고 베를린 현지에서 2차 선발전을 진행하는 등 몽니를 부렸으나 손기정과 남승룡은 빼어난 실력으로 일본 선수들을 다시 한번 눌렀다. 손기정은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2시간29분19초로 골인해 당시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따냈다. 남승룡은 2시간31분42초로 결승선을 끊어 은메달을 딴 영국의 어니 하퍼와 불과 19초 차이로 값진 동메달을 획득했다.
한국인으로서 따낸 자랑스러운 올림픽 금메달과 동메달이었지만 한국은 일제 치하 지배를 받았기에 때문에 이 두 선수의 가슴엔 일장기가 박혀있었다. 당시 남승룡은 시상대에서 고개를 푹 숙였고, 손기정은 월계수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렸다.
동아일보는 신문 지면에 손기정의 가슴에 박혀있던 일장기를 지우고 사진을 게재하는 이른 바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일제로부터 무기한 정간을 당하기도 했다. 나라의 주권이 상실된 상태에서 이 두 선수는 한국인의 뿌리와 절개를 잊지 않았다. 손기정은 한국인의 모습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선 오직 올림픽 무대 금메달 획득이 정답이라 생각하며 뛰었고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도 ‘조선’을 세계에 각인시켰다.
특히 남승룡은 동메달을 획득하였음에도 자신의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가리지 못한 사실을 부끄러워 했으며, 남달리 조국을 위한 신념이 강했던 그는 대회가 있을 때마다 각국의 기자들에게 자신이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임을 눈물로 호소함으로써 또 다른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남승룡은 손기정 못지않은 마라톤 실력을 발휘하며 1932년 제8회 조선신궁경기대회 1위, 1933년 제20회 일본육상경기선수권대회 2위 등의 빛난 업적을 이뤘다.
남승룡의 조카 남청웅씨는 “남승룡 선생은 양정고등보통학교 시절 서울에서 고향인 순천까지 하루에 200리(80㎞)에서 250리(100㎞)를 5일간 뛰고, 부모님의 심부름을 하기 위해 여수까지도 뛰는 등 달리기를 항상 생활화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손기정과 남승룡의 뒤를 이어 한국 마라톤을 빛낸 선수는 바로 서윤복이었다. 서윤복은 1947년 4월 19일 보스턴국제마라톤대회에서 광복 후 처음으로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국제 대회에서 2시간25분39초의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감격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국민 영웅’ 손기정은 마라톤 감독을 맡아 서윤복의 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남승룡은 코치이자 페이스 메이커로 서윤복의 우승을 돕기 위해 35세 나이를 잊은 채 대회를 완주해 12위를 차지했다.
서윤복은 당시 최강으로 평가받았던 일본과 미국 선수들을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1947년은 해방된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으로, 서윤복의 우승은 단순한 스포츠 승리를 넘어 국가적 자존심을 회복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지금까지도 보스턴마라톤은 세계 최고 권위의 마라톤대회 중 하나로 꼽힌다.
그의 우승이 더욱 값진 것으로 평가받았던 이유는 당시 한국은 해방 후 혼란기였고, 훈련 환경이나 지원 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서윤복은 개인적인 노력과 투혼으로 세계 정상에 오른 것이다. 서윤복은 경기 후 “달리는 내내 조국과 민족을 생각했다”며 “일제 때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뛰어야 했던 아픔을 생각하며 반드시 이겨야겠다는 결심으로 뛰었다”고 소감을 밝힌 바 있다.
서윤복의 보스턴마라톤 우승 이후 한국 마라톤의 전통은 황영조, 이봉주 등으로 이어졌는데, 현재 한국의 최고 기록은 2000년 도쿄국제마라톤에서 이봉주가 세운 2시간7분20초로 25년째 깨지지 않고 있다. 즉, 2000년 이후 한국 마라톤은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 마라톤의 부흥을 위해 정부와 체육계의 장기적이고 대대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변현철 기자 byunh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