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삶이라는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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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1967~)

다소곳한 문장 하나 되어

천천히 걸어나오는 저물녘 도서관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게 말하는 거구나

서가에 꽂힌 책들처럼 얌전히 닫힌 입

애써 밑줄도 쳐보지만

대출받은 책처럼 정해진 기한까지

성실히 읽고 깨끗이 반납한 뒤

조용히 돌아서는 일이 삶과 다름없음을

나만 외로웠던 건 아니었다는 위안

혼자 걸어 들어갔었는데

나올 땐 왠지 혼자인 것 같지 않은

도서관

시집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2022) 중에서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게 말하는 것’이란 시인의 말이 되뇌여집니다. 인간의 삶을 수많은 말들이 저장되어있는 도서관에 비유한 시에서 반성과 성찰과 위안을 읽어봅니다.

나는 너무 많은 말을 하며 살고 있구나 생각합니다. 혼자 걷는 외로움과 두려움. 주어진 대로 열심히 살다가 어쩌면 대출받은 것일 수도 있는 삶을 조용히 반납하는 일. 다 말하지 않고 더 말하는 시. 나도 내 삶에서 혼자서 걸어 나오는 든든한 문장이었음 좋겠습니다. 조용하고 변함없는 친구, 지혜로운 상담자, 인내심 많은 선생님인 책을 통해 나만 외로운 게 아니었다는 위안을 얻고 싶습니다.

성실히 읽고 깨끗이 반납해야 하는 우리의 삶. 우리는 서로를 읽으며 배우는 책입니다. 문득, 살아온 날들을 글로 쓴다면 책 열 권은 거뜬할 거라던 노모의 말이 생각납니다.

신정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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