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의 생각의 빛] 가질 수 없는 너에게 보내는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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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창작은 무엇을 얻기 위한 행동인가
뒷말 무성한 허울뿐인 문학상 유감
지난 시대 진정한 작가정신 그리워

도로명이 같은 동네 문인들 몇몇이 횟집에 모여 조촐한 ‘신년회’를 하였다. 지역 창작지원금 선정자도 두엇 끼어 있었는데, 이들이 구상하는 향후 출판 계획을 들으면서 부러웠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로부터 1주일가량 지나 필자가 속해 있는 작가 모임의 정기총회가 열렸다. 신임 회장을 비롯한 임원 및 집행부 인선이 승인되고 난 뒤, 모임에서 연말이면 수여하는 작가상의 상금 배분 문제와 관련한 안건을 놓고 오랜 시간 회원들 의견이 갑론을박 진행되었다. 총회 막바지에 작가의 창작 정신과 문학상의 의미를 곱씹게 하는 고문 한 분의 귀중한 격려사를 마지막으로 행사는 끝이 났다. 늦은 저녁을 겸한 뒤풀이 자리에서 테이블마다 서로 마주 앉아 모처럼 총회의 피로를 잊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분위기였지만 마음 한편에 싸늘하게 올라오는 물음을 어쩔 수 없었다.


작가와 문학상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문학하는 일’의 의미였다. 요즘 부쩍 늘어난 각종 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는다. 글 쓰는 이라면 한 번쯤 문학상에 응모하거나 도전하려는 마음이 생기는 건 인지상정이다. 주위에서 굵직한 상금이 딸린 문학상이라도 받게 되면 집필에 집중하다가도 더러 ‘딴생각’이 들지 않는 건 아니다. 이를테면 ‘돈 안 되는’ 문학을 하면서도 이에 대한 격려와 보상의 차원에서 기관에나 단체에서 작가에게 주는 상은 윤택하고 안정적인 창작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계기요 에너지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 예전부터 문학상이 주는 순기능이 사그라들고 역기능이 도드라지는 현상을 심심찮게 듣거나 보게 된다. 창작 역량이 제각각 천차만별인 문단 사회에서 재능 있는 작가로 인정받는 손쉽고도 단순한 잣대가 문학상 수상 여부이다.

문학상 수상 이력이 화려할수록 독자는 작가와 작품을 예사롭지 않은 눈길로 바라본다. 반면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창작의 한길만을 걷는 작가라도 문학상과 인연이 먼 이들이 있다. 그러니까 상 자체는 작가에게 부여하는 문학적 권위의 월계관이라기보다는 작품성이나 창작의 노고 여하와 관계없이 주어지는 ‘행운’의 일종이라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창작이 먼저고 그다음에 의도와 무관하게 상이 뒤따르는 것이다. 하지만 문학상 수상과 관련한 뒷얘기를 종합해 보면 수상을 목적으로 한 집필 활동이 우리 시대의 작가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처럼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모든 작가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열정적인 집필과 작품성이 별개인 것처럼, 너도나도 좇게 마련인 공동체의 기류와 관계없이 ‘쓰기’ 자체에 빠져 자신의 재능을 온전히 쏟아붓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궁핍한 시대에 시인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란 물음으로 잘 알려진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1770~1843)은 청년기 짧은 시기에만 창작에 몰두하였고, 나머지 반평생을 정신질환에 고통을 받으며 숨진 독일 시인이다. 횔덜린이 살았던 시대의 독일과 지금의 한국을 단순하게 비교할 수는 없지만, 고전주의가 막을 내리고 낭만주의가 활짝 필 때의 독일 지성의 조류는 자연과 고대에 관한 관심과 아울러 작가의 개성과 상상력을 높이 샀다. 계몽주의와 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에 대한 반대급부의 일종으로서 팽배해진 당시 유럽 지성계의 흐름이었다. 그러한 지적 물결의 한복판에서 횔덜린은 당대를 궁핍한 시대라 규정하면서 진정한 시인의 태도와 자세가 무엇인지 되물었던 것이다.

인공지능(AI) 기술이 눈만 뜨면 새롭고 앞선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되고, ‘문학’이라는 이름이 포함된 인문학의 퇴조를 실감하고 있는 지금 우리 작가들에게 창작이 과연 누구를 위하며 무엇을 얻기 위한 행동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작가의 창작활동 지원과 보호를 위한 정부 기관 및 재단과 단체의 창작지원금, 그리고 여러 문학상 제정과 시행이 척박하고 곤궁한 정신문화의 허기를 앓고 있는 이 시대의 작가에게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지 나로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허울뿐이며 뒷말이 무성한 문학상 제도를 없애자는 말이 아니다. 당연히 존재해야 하고 작가에게도 분명 큰 힘이 된다. 한편으로 그러한 문학상의 남발은 창작 동기와 근기가 허약하면서 창작 관행에 따른 글쓰기만을 문제의식 없이 ‘일삼는’ 작가들에게는 오히려 ‘달콤한 독약’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 다시 말해 상금을 받기 위해 창작을 하는 주객전도, 혹은 쓰기 위해 쓰는 게 아니라 명성을 얻기 위해 쓰는 본말전도의 형국을 작가와 문단 스스로 자초할 때 횔덜린이 말한 궁핍한 시대의 시인이 떠맡아야 할 사명은 석양의 놀빛처럼 차차 사그라들기 마련이다. 정신은 결코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요즘엔 물질적인 허기를 참아가며 오로지 문학이라는 하나의 이름만으로 자신의 상상력과 재능을 탕진했던 지난 시대 진정한 작가가 그립기만 하다. ‘그런 시대’가 아니라 ‘그런 정신’이 아쉽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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