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AI 시대, 인간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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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공공건축·도시계획, 디지털 전환 확산
건축가는 가능성 조율·결정하는 존재
방향을 정하고 의미 캐내는 몫은 인간

2026년 새해의 시작과 함께 전 세계의 이목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소비자 가전 전시회)에 집중됐다. 이번 행사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현대차가 선보인 피지컬 AI, ‘아틀라스’였다. 글로벌 IT 전문 매체가 선정하는 ‘베스트 오브 CES 2026’에서 ‘최고 로봇’상을 받기도 한 아틀라스는 현존하는 휴머노이드 로봇 가운데 가장 진보된 사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아틀라스는 단순히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다. 인지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로봇이다. 스스로 학습한 내용은 같은 작업공간에 있는 모든 아틀라스에게 바로 공유된다. 배터리가 부족하면 스스로 충전한다.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날이 멀지 않았음을 선포하는 것 같다.

코로나 펜데믹 이후 AI는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오픈 AI의 샘 올트먼은 “인간의 모든 지적 능력을 대체하는 기계 AGI가 5년 안에 가능하다”고 말했다. AGI(범용 인공지능)는 특정 작업이 아닌, 인간처럼 다양한 영역에서 추론하고 학습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범용 인공지능이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한발 더 나아가 ASI(인공지능 초지능)에 베팅하고 있다. 인간보다 수천, 수만 배 뛰어난 지능이 10년 안에 가능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부 연구자들은 AGI가 수백만 명의 개발자 지능을 시뮬레이션하며 단기간에 ASI로 진화할 수 있다고 예측한다.

이러한 변화는 노동시장에 즉각적인 충격을 주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최고의 직업으로 꼽히던 개발자는 이제 경력자만 필요로 하는 직군이 됐다. 신입사원이 맡던 일의 상당 부분을 AI가 수행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대규모 해고와 채용 중단을 단행했고, 해고는 입사 초기 인력부터 시작됐다. 경력을 쌓을 기회마저 AI가 대체하면서, 미래의 직업에 대한 불안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건축 설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 건축 설계 분야의 디지털 전환은 아직 더딘 편이지만, 최근 시장에서는 디자인 요구가 세분화되며 일회성 프로젝트가 늘고 있다. 소규모 주택이나 근린생활시설의 기본 평면 정도는 건축주가 직접 AI를 활용해 만들어 오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도면의 완성도가 곧 전문성과 권위를 상징하던 시대는 서서히 저물고 있는 듯하다.

공공건축과 도시계획 분야에서는 변화가 더욱 뚜렷하다. 디지털 트윈 기술은 도시계획을 종이 도면의 영역에서 ‘체험’의 영역으로 옮겨놓고 있다. 일조 변화, 침수 경로, 보행 동선은 더 이상 추상적인 선이 아니라 가상 도시에서 직접 확인하고 검증하는 대상이 된다. 재난 대응 역시 사후 분석이 아닌 사전 시뮬레이션을 통해 설계 단계에서 결정된다. 이는 건축이 디자인을 넘어 사회적 안전망과 정책의 적합성을 판단하는 ‘도시 데이터 전문가’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AI 시대의 건축가는 도면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가능성 사이에서 조율하고 결정하는 존재로 재편될 것이다.

인간은 오랫동안 ‘이 행성에서 가장 뛰어난 종은 인간’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왔다. 도구를 사용하며 직립보행을 가능하게 했고, 고도로 발달한 뇌로 문명을 만들어왔다. 그러나 이제 도구를 다루는 능력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더 능숙하고, 계산과 논리적 추론 역시 인공지능이 앞서는 시대가 됐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이제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다시 인간이 무엇인가를 묻는다는 것은 인공지능을 어떻게 위치시킬 것인지, 그리고 인간의 한계와 확장 가능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미래를 모색할 것인지에 관한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인간의 정의가 바뀌는 인류학적 지점에 서 있다. 빌 게이츠는 앞으로 가장 큰 과제는 인공지능의 강력함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이 인공지능을 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한다. 그는 AI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그 한계를 인식하고, 적절히 통제하며 활용하는 새로운 철학과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AI가 할 수 없는 마지막 영역은 계산이 아니라 판단이다. 결국 방향을 정하고 의미를 캐내는 일은 인간의 몫이다. 기술은 선택지를 넓혀주지만, 선택의 책임까지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건축 역시 마찬가지다. AI는 수많은 대안을 제시할 수 있지만, 어떤 공간이 공동체에 필요하고 어떤 도시가 지속 가능하며,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판단은 인간의 사유에서 나온다. 인공지능이 도면을 그리고 도시를 시뮬레이션하는 시대에, 건축가의 역할은 기술을 앞서는 데 있지 않다. 기술이 닿지 못하는 질문을 끝까지 붙잡고, 인간의 삶과 사회가 향해야 할 방향을 사유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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