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화의 크로노토프] 도시가 건네는 따스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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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음악 칼럼니스트

예술이 주는 위로는 '작은 숨고르기'
세월 흔적 담긴 공연장은 내적 쉼터
객석에 앉아 리듬 찾고 힘 비축하길

달력 한 장만 남은 12월, 시간과 공기는 서로 다른 속도로 흐른다. 도시의 시곗바늘은 여전히 빠르게 돌아가지만, 마음속 시간은 어둑한 빛을 따라 느리게 움직인다. 정리해야 할 일들과 정리되지 않는 감정이 뒤섞이는 시기에는 누구나 본능적으로 ‘숨 고르기’를 원한다. 자연이 겨울에 속도를 늦추며 다음 해를 준비하듯, 자연의 일부인 인간 역시 느린 박자로 되돌아가려는 감정을 품게 된다. 예술은 그렇게 오래된 감각을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되살린다.

부산은 변화의 파동 속에서 새로운 시간을 덧입히는 중이다. 클래식 전용극장이 문을 열었고, 기존 공간들은 역할을 재정의하기 시작했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기술과 AI는 도시의 생활 리듬을 바꾸어 놓았지만, 사람들은 자신만의 속도를 되찾으려 한다. 도시는 원래 ‘서로 다른 시간이 공존하는 지층’이다. 2025년의 부산은 그것을 또렷하게 드러냈다. 서로 다른 속도를 가진 장소와 사람들이 뒤섞이며, 도시는 어떤 리듬을 선택해야 할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이런 때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자신에게 주는 위로’다.

예술이 주는 위로란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속도를 잠시 내려놓고 스스로 시간을 거두고 바로잡는 작은 숨 고르기다. 공연장은 이런 위로를 몸으로 직접 느끼게 하는 장소다. 공연 전 객석을 감싸는 정적, 서서히 어두워졌다 다시 밝아지는 조명, 무대 위 짧은 침묵 같은 작은 순간들은 우리가 잊고 살아온 삶의 속도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따뜻함은 공간을 기억으로 바꾼다”는 바슐라르의 말처럼, 공연장의 온도는 단순한 난방의 온도가 아니라, 오래도록 스며든 몸의 흔적과 시간이 켜켜이 쌓인 기억의 온도다. 아무리 기술이 앞서가도, 이 느린 온도는 사라지지 않는다. 공연장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도 결국 ‘조용한 위로’를 향한 자연스러운 선택일 것이다.

50년 넘게 부산시민회관은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위로의 온도를 품어온 곳이었다. 뒤이어 문을 연 부산문화회관 또한 40년 가까이 수많은 예술가의 긴장 어린 숨결과 스태프들의 보이지 않는 노고가 겹겹이 쌓여 하나의 예술적 지층을 이루어왔다. 이 두 장소는 부산에서 공연예술을 업으로 삼은 이들이 의례처럼 거쳐 간 출발점이었고, 관객들에게는 스며든 시간이 되살아나는 익숙한 온기였다. 한 해의 끝자락에 이곳을 찾으면 묵직한 공기 속에 응축된 시간이 자연스레 다가와 빠르게 흘러온 일들을 잠시 내려놓게 한다. 세월의 흔적이 담긴 극장은 단순한 시설을 넘어, 도시의 기억이 잠시 머무는 내적 쉼터가 된다.

이제 부산의 공연 지형은 또 다른 전환점을 맞고 있다. 부산콘서트홀은 대규모 기획과 풍부한 음향을 통해 도시 예술 역량을 확장하고 있다. 내년 정식 개관을 앞둔 낙동아트센터는 서부산권에 오래 비어 있던 문화적 공백을 메울 신호탄이다. 오래된 극장은 축적된 시간의 무게로 도시를 지탱하고, 새로운 극장은 관습에서 벗어나 실험을 받아들이는 유연한 리듬이 된다. 극장은 단순한 시설만이 아니다. 베르그송의 말처럼 “의식 속을 흐르는 응축의 질적 시간”, 즉 지속의 본질이 드러나는 자리다. 공연예술은 관객에게 다른 시간의 흐름을 체험하게 한다. 공연 시간은 다루는 방식에 따라 30분의 연주가 5분처럼 들리기도 하고, 10분의 연주가 1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차이가 베르그송이 말한 질적 시간의 차이다. 지속의 질을 바꿔 관객의 의식 구조를 바꾼다는 의미다. 그래서 낯선 리듬의 변화 속에서도 자신만의 숨표를 찾기 위한 위로의 시간은 더욱 절실해진다. 예술가와 청중의 숨결이 맞닿는 순간, 도시의 예술 생태계는 비로소 다층적 균형을 얻는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즈음, 거창한 결산보다 중요한 것은 잃어버린 감각을 회복하는 일이다. 자신만의 리듬을 찾는 것은 다음 해를 위한 힘을 비축하는 것이다. 공연장에 잠시 머무는 숨 고르기만으로도 지친 도시의 속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속도를 조율할 수 있다. 빠른 시대일수록 예술의 느린 기술이 필요한 이유다. 공연장에 들어서면 스마트폰은 속도를 멈추고, 숨기운은 자연스레 제자리를 찾는다. 유명한 공연이 아니어도 충분하다. 이름 없는 지역 예술가들의 작은 공연도 그 자리를 찾아줄 수 있다.

12월의 공연장은 단순한 문화 소비의 장을 넘어, 도시의 서늘함을 따스하게 감싸안는 안식처다. 정신없이 달려온 삶 속에서 본래의 리듬을 되찾아주는 둥지와도 같다. 이때 예술은 한 해의 끝자락을 지탱하는 본연의 위로가 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힘이 된다. 화려하거나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마음이 닿는 공연 하나를 찾아 객석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없이 달려온 삶의 속도는 안정되고 다음 해를 살아낼 힘은 천천히 채워진다. 공연장이 건네는 작은 위로를 통해 도시가 몰아쳤던 압박을 떨쳐 내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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