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가르칠 교수·장비 없는데 정원만 늘리면 뭐 하나”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반도체 인력 양성’을 주문한 이후 15일 범부처와 민관합동 특별팀이 가동되는 등 정부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대학과 기업 등 현장에서는 단순히 반도체학과 정원 확대만으로는 인재 양성이 불가능하고, 연구자와 인프라 확충 등 종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15일 오전 교육부 주최로 ‘반도체 산업 생태계와 인재 수요’를 주제로 진행된 공개토론회에선 반도체 인재 양성을 위한 대학과 기업의 주문이 쏟아졌다.
발제를 맡은 반도체 석학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석좌교수는 인재 육성에 앞서 연구와 교육을 할 수 있는 교수 충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황 교수는 “그동안 반도체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여론에 교수를 안 뽑았고, 교수가 없으니 대학원생과 학부생도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산업계에서는 인력이 없다는 얘기만 계속 나오는데 대학과의 괴리가 굉장히 큰 상황이다”고 진단했다.
그는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43명 중 정통 반도체를 연구하는 교수는 2~3명 정도지만, 학부 졸업생의 30%는 반도체 회사에 취업한다”며 “대부분 반도체를 공부하지 않고 입사하다 보니 기업에선 재교육을 시켜야 하고, 이로 인해 대학에 반도체 교수가 필요 없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학부생을 가르칠 교수가 더욱 줄어드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졌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반도체 관련 연구개발(R&D) 지원 부족도 문제로 거론된다. 황 교수에 따르면 정부의 한 해 R&D 예산 3조 원 중 반도체 분야는 500억 원으로, 반도체 기업의 산학지원금 500억 원을 더해도 1000억 원 정도다. 황 교수는 “반도체 분야 대학원생 1명에 연간 최소 1억 원이 드는데, 한 해 동안 키울 수 있는 인력이 1000명 정도에 불과하다”며 “교수와 연구 인프라를 갖추지 않으면 학생 정원을 늘려봐야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토론자로 나선 학계와 현장 전문가들도 학생 정원 확대에 앞서 필요한 지원 방안에 대해 의견을 쏟아냈다. 시스템반도체 설계를 전공한 김지훈 이화여대 전자전기공학과 교수는 “학생 수가 늘어나면 교수 수도 늘어야 하고, 그에 따른 공간 지원 등 후속적으로 여러 가지를 고민해야 한다”며 “전체적인 총괄 조직이 생겨서 반도체 설계 교육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도록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생들도 주요 요구 사항 중 하나로 교수 확충을 꼽았다. 박솔아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박사과정생은 “현재 지도교수 1명당 담당 학생이 20명이어서 세밀한 지도에 한계가 있다”며 “좋은 성과를 내는 해외 교수님께 배우려고 외국으로 가려는 학생들이 많은데, 국내외 우수 교수님을 많이 영입해주시면 인력 유출 방지와 연구 성과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력 확보를 위해 대기업이 채용과 연계해 운영하는 ‘반도체 계약학과’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김형환 SK하이닉스 부사장은 “계약학과는 한시적 기간을 두고 운영하기 때문에 계약이 끝났을 때 교수의 거취가 불안정해진다”며 “충분한 교육이 이뤄지려면 (최신 기술·연구를 아는) 신진 교수가 필요한데 이런 분들을 구하기 어려운 게 문제”라고 토로했다.
반도체 계약학과가 수도권 대학에만 쏠린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2023학년도 기준으로 두 기업과 연계해,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삼성전자) 50명, 고려대 반도체공학과(SK하이닉스) 30명,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삼성전자) 70명, 서강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SK하이닉스) 30명, 한양대 반도체공학과(SK하이닉스) 40명, 포항공과대 반도체공학과(삼성전자) 40명, 한국과학기술원 반도체시스템공학과(삼성전자) 100명을 선발한다. 이에 더해 최근 서울대에도 반도체 계약학과를 만들기 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경쟁하고 있다.
한동석 경북대 교수(IT대학장)는 “(계약학과 졸업생이)삼성전자 260명, SK하이닉스 200명 등이 입사하면 나머지 대학 학생들은 두 회사 거의 못 가게 되고, 수도권의 계약학과에서 많은 인재를 흡수할수록 지역은 굉장히 힘들어진다”며 “기업 컨설팅을 받아 기존 대학 커리큘럼을 개선하는 등 지금의 학과를 좀 더 탄탄하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반도체 관련 지원 시설이 있는 지역거점 국립대학교에 더 투자를 하고, 주변 대학이 이를 활용하도록 해 반도체 인력을 양성하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제안했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