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의 세상톡톡] 쿠팡 정치학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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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정보 유출 사고 친 대기업
독점적인 플랫폼 지위 누려 와
잠금 효과 끝낼 조치 서둘러야
상식 벗어난 행보 일상 정치판
거대정당 독점 만든 선거 허점
국민이 낡은 제도 혁신 나서야

지난해 11월 쿠팡에서 약 3370만 개의 개인정보가 무단으로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쿠팡의 한 분기 기준 구매 이력 활성고객 2470만 명을 훨씬 웃도는 규모다. 쿠팡은 ‘셀프 조사’ 결과 유출 규모는 3000명 수준이라 뒤늦게 해명했지만 믿는 이는 드물다.

정보 유출 소식이 나온 지 일주일쯤 지나자 쿠팡의 이용자는 감소세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하루 활성고객 수가 1000만 명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개인정보 유출의 공포가 대규모 고객 이탈로 이어질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다. 쿠팡의 경쟁사 활성고객이 덩달아 늘어나면서 쿠팡은 조만간 큰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 같은 예측이 빗나간 것으로 확인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달 중순 주간 활성고객 수는 정보 유출 사고 발생 전인 지난해 11월보다 오히러 4.1%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연초를 맞으면서 경쟁업체 가입자가 일부 늘었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쿠팡의 아성은 여전히 견고해 보인다.

쿠팡이 고객에게 큰 피해가 갈 수 있는 사고를 일으키고도 이처럼 이용자 수에 큰 변화가 없는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로 업계는 대안 플랫폼 부재를 첫손으로 꼽는다. 쿠팡에게는 네이버쇼핑이나 11번가, G마켓 등 유사한 유통업 경쟁자가 있지만 전국 단위 익일·새벽 직배송 등의 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춘 곳은 쿠팡 이외에는 없다. 오프라인과는 달리 플랫폼 유통 구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 공정거래 제도와 대형사가 압도적 편의를 누릴 수 있는 물류 인프라가 이 같은 현실을 만들었다. 결국 대안 플랫폼 부재로 인한 독점 구조는 소비자를 쿠팡의 생태계에서 나가지 못하도록 가둬놓는 강력한 ‘잠금 효과’를 낳게 됐다.

이후에도 쿠팡이 국회 청문회에서 고자세를 보이는 등 버젓이 활보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소비자들은 분통이 터질 일이지만 최근 들어 세상 일이 대부분 이와 비슷한 형태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쿠팡처럼 대안 부재를 이유로 불이익을 얻기는커녕 반사이익을 얻는 존재가 되레 세력을 불려가는 곳이 있다. 국내 정치권이 대표적이다.

국내 정치판은 플랫폼 독점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 공정거래 제도처럼 승자독식으로 인한 거대 정당의 싹쓸이를 막지 못하는 선거제도로 인해 거대 정당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다. 이 때문에 소수 정당이나 신생 정당은 제대로 자리를 잡을 틈이 없다. 최대 득표자 1인만 당선되는 소선거구제의 병폐를 지적해도 소선거구제의 과실을 최대한 향유해 온 거대정당 두 곳은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사정이 이러니 유권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거대정당 중 한 곳을 지지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본인의 정치철학에 맞는 후보가 있다고 해도 사표가 되면 자신이 싫어하는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있기에 ‘최악 막으려 차악을 찍는’ 선택만 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유권자조차 정치공학적인 선택을 하다 보니 거대정당 양당 체제는 더욱 공고화하고 이들 정당은 유권자를 자신의 지지세력으로 가둬 놓는 강력한 ‘잠금 효과’를 누리게 됐다.

쿠팡의 무책임한 행위에도 소비자들이 꽁꽁 묶여있는 것처럼 입법 폭주나 계엄 옹호 같은 비상식적인 행위에도 거대정당들의 지지자들이 더 늘어나는 기현상이 나타난다. 혹자는 이런 현상을 두고 ‘팬덤 정치’라는 분석을 하기도 하지만 팬덤보다는 최악 기피 성향에 따른 ‘잠금 효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 아무리 못 해도 너희가 지지하는 정당보다 못 하겠느냐”는 심리다. 애초에 건설적인 입법이나 정책 마련이 불가능한 구조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은 현행 소선거구제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시급히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1위 득표자가 아니라도 당선될 수 있다는 보장이 있어야 자신의 표가 사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상식적인 투표가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헌법을 개정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정치 지형을 개선할 수 있는 강력한 조치다.

쿠팡이 누리는 견고한 대안 부재 플랫폼의 지위도 정권의 개입이 시작된 이상 어떻게든 변화를 맞을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쿠팡에 대해 “처벌이 두렵지 않은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앞으로는 ‘잘못하면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도 높은 대책을 주문했으니 개입은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정치판에서 거대정당들이 차악으로서 누리는 지금과 같은 지위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결국 정당에 ‘잠긴’ 국민들이 깨어나야 한다. 심판이 두렵지 않은 그들이 떨 수 있게 선거제도부터 바꾸도록 강도 높은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정치판이 더 곪지 않도록 할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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