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은밀한 죽음의 덫, 유령어업 막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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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덕 한국수산자원공단 이사장

‘유령어업(Ghost Fishing)’. 섬뜩한 기분이 드는 표현이다. 유령이나 유령선이 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어업 활동 중 바다에서 유실되거나 버려진 어구가 계속해서 바다 생물을 포획하여 물고기가 사라지는 것을 말하며 해양 환경과 수산업이 직면한 대표적 위협 중 하나이다. 사람의 손이 잘 닿지 않는 바닷속에 방치된 어구가 무의미하게 그리고 오랫동안 해양 생명을 앗아가기 때문에 피해는 장기간 축적되고, 실태 파악도 어렵다. 최근의 조사와 분석에 따르면 유령어업이 초래하는 생태적, 경제적, 사회적 피해는 이미 위기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Ghost Fishing’이라는 표현은 1960년대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처음 등장했다. 1980년대 어업 공간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유실되는 어구가 대규모임이 확인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하였고, 유엔환경계획(UNEP)과 유엔식량농업기구(UNFAO) 공동 보고서(2009)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이 보고서는 전 세계 바다에서 매년 약 64만 톤에 가까운 어구가 버려지거나 유실되며, 이는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의 주요 비중을 차지한다고 경고했다. 또한 유실된 그물이 수년간 생물을 포획하며 자원 손실을 가중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명확히 제시했다.

유실·폐기 어구에 포획돼 폐사 ‘죽음 악순환’

해양 생물 1500종, 연 1조 7000억 원 피해

생분해 기술·디지털 관리 등 국제 협력 필요

이후 유령어업의 심각성은 점차 구체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최근 호주의 연방과학산업연구소(CSIRO)는 전 세계적으로 어구 종류에 따라 매년 5~30%가 유실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유럽연합 공동연구센터(JRC)는 북동 대서양 1000m 심해에서 약 2만 5000개의 폐자망을 발견했다. 이 그물들은 대구, 가자미, 문어 등이 다량으로 걸린 채 수년간 ‘죽음의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었으며, 사체가 다시 미끼가 되어 새로운 피해를 불러오는 비극적 순환 구조가 확인되었다. 그리고 미국 해양대기청(NOAA)은 일부 북극 연안의 유실 어구가 바다표범·고래·바닷새의 주요 폐사 원인임을 밝히기도 했다.

이제 유령어업은 세계 해양 생물에 가장 광범위한 비의도적 피해를 주는 요인 중의 하나다. GGGI(세계폐어구계획)는 전 세계적으로 약 1500종 이상의 해양 생물이 ALDFG(유실·폐기·방치된 어구)에 의해 직접적 영향을 받는다고 분석했다. 바다거북, 바닷새, 물범, 돌고래 등 보호종의 폐사도 유령어업과 연관되어 있다. 경제적 피해도 매우 큰데, EU는 유령어업으로 발생하는 어획량 감소·조업 차질·선박 사고 등 경제적 손실을 연간 10억 유로(약 1조 7000억 원) 이상으로 추정했다. 우리나라도 연간 약 40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제사회도 본격적으로 유령어업을 해양 환경 및 식량 안보 관련 핵심 의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FAO는 2018년 ‘어구 표시 자발적 지침’을 채택해 모든 어구에 식별 표시, 유실 시 보고, 회수 및 폐기 절차 마련을 권고하고 있다. UNEP, IMO(국제해사기구), RFMOs(지역수산관리기구)도 유령 어구를 범세계적 해양 오염원으로 규정하고 공동 대응을 확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9년 해양폐기물 및 해양오염퇴적물 관리법을 제정하고 2022년 수산업법을 개정하여 침적 폐어구 수거 사업 확대, 어구 실명제, 어구 보증금제, 재활용 기반 확충 등 어구 전주기 관리 체계를 단계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특히 한국수산자원공단 자료에 의하면 2024년 통발을 대상으로 세계 최초로 도입된 어구 보증금 제도가 2026년부터 자망과 부표까지 포함되면서 연간 1400만 개가 넘는 어구가 대상이 된다. 그리고 아직은 일부 어구에 한정되기는 하지만 폐어구 반납에 대한 인센티브 제도가 도입된 이후 폐어구 회수량이 배 가까이 증가한 사례를 볼 때, 합리적인 관리 체계 위에 적절한 인센티브가 더해진다면 유령어업 예방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유령어업을 줄이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식의 변화다. 어구 유실이나 무단 폐기는 단순한 재산 피해나 순간의 편의에 그치지 않고 어업 자원의 영구적인 유령 소비로 이어지고 전 지구적 피해로 돌아온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나아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기술과 정책, 지역사회가 함께 하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생분해성 어구, 저비용 어구 추적 장치, 디지털 어구 관리 시스템 등 혁신 기술의 도입과 어구 판매·사용·회수·폐기 과정의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전주기 관리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공해와 극지 해역처럼 국가 경계를 넘어선 해역에서는 책임 있는 국기들이 중심이 된 국제적인 협력 대응도 필요하다.

유령어업은 바닷속에서 조용히 일어나지만 그 영향은 영구적이고 파괴적이다. 바다의 건강과 소중한 수산 자원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어업인, 공공 기관과 정부, 그리고 시민단체가 함께 유령어업을 예방하고 문제해결에 함께 나서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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