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CES 2026이 국내 제조업에 던진 숙제
김영한 경제부장
한국 제조업 주목하는 빅테크들
AI와 제조업 간 경계 넘는 협력
일상 속 AI 구현 현장 급부상에
국내 기업들도 다양한 변화 모색
영세 지역 제조업체엔 '남의 일'
국가가 'AI 전환' 흐름 이끌어야
‘CES 2026’도 눈부신 첨단 기술의 향연을 풀어냈다. 빅테크들이 제시한 일상으로 깊숙히 들어온 인공지능(AI) 기술에 감탄하는 한편으론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 약진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제조업과 AI 간에 산업 경계를 넘어 진행되는 결합 시도들이었다.
세계 AI 산업을 이끄는 혁신 기업인이 한국 조선기업의 변화를 언급한 일이 대표적이다. 이번 CES 기조연설을 맡은 엔비디아 젠슨 황 CEO가 한국 HD현대의 디지털 트윈 기반 조선소를 호평한 것이다. 전통 제조업이자 동남권 산업 주축인 조선업이 AI 기술 기반을 만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상적이었다. 그는 엔비디아와 여러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 사례 가운데 HD현대를 콕 집어 “우리가 협력해 온 디지털 트윈 개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라고 극찬했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기술이 아닌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공개로 피지컬 AI 사업 청사진을 제시하는 ‘변신’을 선보였다. 키 190cm, 몸무게 90kg의 아틀라스가 56개 관절을 360도 회전하며 부품을 옮기고 자연스럽게 작업대 사이를 오가는 장면에서 머지않은 시기에 숙련공을 뛰어넘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등장을 상상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현대차는 그 시점을 2년 후라고 못박았다.
AI 기술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글로벌 기업들이 이 시점에 한국 제조업에 주목하고 있는 모습에서는 안도감마저 느껴졌다. 세계인이 글로벌 빅테크들이 선보이는 첨단 AI 기술에 홀려 있는 사이 그들은 실험실 속 AI를 구현할 현장이자 학습의 최적지로 한국 제조업을 지목한 것이다. 한때 국가 위기의 대상으로 지목되던 우리 제조업이 화려한 부활 기회를 맞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제조업 중심인 부산·울산·경남 기업에도 호재가 아닐 수 없다.
이번 CES는 AI 혁신 흐름에서 이탈하지 않으려는 국내 제조 기업들이 고민해 온 결과물을 풀어놓은 장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구, 뷰티, 장난감, 주방기기 등 그동안 AI와 거리가 멀 것 같던 소비재 기업들에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새삼 확인됐다. AI 기반 분석 기술을 중심으로 맞춤형 케어 설루션을 선보인 화장품기업 아모레퍼시픽이나 전자 피부(e-skin) 기반 기술로 단순 미용을 넘어 새로운 영역 확장에 나선 한국콜마 같은 기업의 행보는 이른바 ‘B뷰티’ 산업을 꿈꾸는 지역 화장품 업계도 눈여겨봐야할 움직임이다.
‘제조업 르네상스’가 예고된 상황에서 다시 우리 제조업, 특히 부울경은 어떤 준비를 해왔느냐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부울경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CES에도 지역 혁신기업들과 손잡고 별도 전시관을 마련했다. 부산은 전년보다 확대된 30개 전시부스를 갖춘 통합부산관을 갖추고 박형준 부산시장이 직접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건너가 참여 기업들의 글로벌 진출을 지원했다. 부울경의 여러 기업이 올해의 최고혁신상 또는 혁신상을 수상하는 성과도 냈다.
문제는 CES의 화려한 쇼 뒤에 가려진 부울경 제조기업들의 곤궁한 처지다. 국내 대·중견기업은 인력과 자금을 바탕으로 글로벌 기업들과의 연합이나 새로운 변화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반면 대다수 중소기업들에 AI 전환은 ‘필요는 알지만 시작할 엄두를 못 내는 일’이다. 정부 지원을 받거나 간혹 운이 좋아 대기업 낙점을 받은 경우에만 AI 전환이 이뤄지고 있을 뿐이다.
이참에 몇몇 기업 지원기관과 단체에 지역 기업 AI 전환 상황을 문의했더니 개별 기업의 AI 도입 여부는 통계가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국내 중소기업의 스마트 공장 도입은 적극적인 정부 지원으로 가속화하고 있지만 상당수가 고도화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경남과 부산은 스마트 공장 구축이 빠른 편이지만 AI를 실행할 ‘고도화 단계’에 이른 경우는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들 기업은 인공지능을 학습시킬 데이터와 전문 인력, 인프라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만이 가진 자산인 다양한 제조 기업 현장을 찾아 먼저 다가서는 이때, 산업 현장에서의 부족함을 채울 주체는 국가 말고는 없어 보인다. 제조업 현장에서 생산되는 데이터를 모으고 이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는 공동 제조 AI 인프라를 구축하고, 대기업이 확보한 AI 노하우가 중소기업으로 흐르는 통로를 내는 일들이 국가 차원에서 진행돼야 한다.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른 만큼 일상과 전 영역의 산업 현장에서 AI 기술을 얼마나 빨리 수용하고 실질적인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느냐도 관건이다. 제조업 르네상스는 결국 현장의 작은 변화까지 이끌어내야 현실이 된다.
김영한 기자 kim0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