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헌재, 야당의 무차별 탄핵 공세에 경종 울렸다
헌법재판소가 13일 최재해 감사원장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조상원 중앙지검 4차장, 최재훈 중앙지검 부장 등 검사 3명에 대한 탄핵심판에서 8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번 탄핵안은 지난해 12월 5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헌정사 최초로 감사원장을 탄핵심판정에 세운 사유는 대통령 집무실 및 관저 이전 감사를 부실하게 하고, 전현희 전 권익위원장을 표적 감사를 했다는 것 등이다. 검사 3명에 대해서는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을 부실하게 수사했다는 이유를 달았다. 탄핵소추안 의결로 직무가 정지됐던 이들은 98일 만에야 직무에 복귀했다. 헌법은 탄핵심판 대상이 된 공무원이 ‘그 직무 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를 탄핵 사유로 규정한다. 즉, 파면할 정도로 헌법과 법률을 중대하게 침해했을 경우에만 탄핵소추 대상이 된다. 물론 탄핵할 사안이라고 판단되면 소추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국회가 발의한 탄핵소추안은 29건에 이른다. 본회의에서 가결된 것은 총 13건이다. 하지만 8건이 기각됐고 헌재에서 인용된 사례는 없다. 최 원장과 검사 3명을 비롯해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과 이정섭 검사에 대한 예전 판결 등 6건도 전원일치로 기각됐다.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젠 과도한 탄핵 공세가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지 생각해볼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은 심우정 검찰총장 탄핵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최근 밝혔다. 현실화될 경우 30번째 발의로 기록된다. 이재명 대표는 최근 ‘줄탄핵’이라는 지적에 대해 “우리도 좋아서 했겠냐”며 “헌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이뤄진 것이다. 위헌 행위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추가 탄핵의 명분을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줄탄핵에 대한 부정 여론이 이어지자 나름의 방어논리를 펴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물론 국회의 탄핵소추권은 헌법이 부여한 권리임과 동시에 의무이기도 하다. 하지만 법리적으로 가능하더라도 도가 지나쳤다는 여론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8전 8패라는 헌재 결정이 이를 말해준다. 우리 사회는 탄핵심판 때마다 혼란과 갈등에 시달렸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 앞선 이번 헌재 결정을 두고도 여야는 또 날선 공방을 펼치고 있다. 국민의힘은 “탄핵 남발 행태는 본질을 벗어난 이재명 ‘방탄·보복 탄핵’이자 ‘정치 탄핵’이라는 비판이 나온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은 “중요한 것은 윤석열 선고 기일을 신속히 잡아 파면하는 것”이라고 맞받았다. 양분된 민심은 ‘심리적 내전’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차별적 탄핵소추가 국회 권위를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최후 수단으로 여겨지는 탄핵심판의 위상도 추락하고 있다. 국정 공백 등 국가적 손실도 막대하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탄핵심판 제도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사설] 본격화한 부산교육감 선거전 교육 혁신 경쟁해야
부산교육감 재선거 일정이 내달 2일로 확정되면서 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번 재선거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고일과의 연계로 선거일이 언제가 될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탄핵 선고일이 늦어지면서 결국 선거일이 이 날로 정해졌다. 이에 후보 등록은 13일과 14일 양일간 진행되면서 각 후보의 선거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선거 대진표도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후보 등록 첫날인 13일 진보 진영의 김석준 후보와 중도보수 진영의 최윤홍 후보가 부산시선거관리위원회에 후보로 등록했다. 중도보수 진영의 정승윤 후보도 오늘 중으로 등록을 마칠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의 교육을 이끌어갈 새 리더를 뽑는 중요한 시점이 다가온 것이다. 이번 재선거는 지난해 12월 하윤수 전 부산교육감의 당선 무효형이 확정되면서 치러지게 됐다. 공식 선거운동은 오는 20일부터 투표 전날인 4월 1일까지다. 선거일까지 남은 기간이 20일도 채 되지 않아 새로운 정책을 내놓고 알리기에는 부족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는 재선거로 유권자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낮은 가운데 진행된다는 점이 변수다. 교육감 선거는 대체로 낮은 투표율을 기록하는데 재선거 역시 저조한 투표율을 보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역대 교육감 선거처럼 선거 막바지에 후보들의 정책 공약보다는 단일화 여부나 정치적 성향이 더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런 형태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새 교육감 임기는 하 전 교육감의 잔여 임기인 2026년 6월 30일까지로 2년도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부산교육감은 부산 지역 유치원, 초·중·고교생의 교육 정책을 책임지는 매우 중요한 자리다. 또한 부산 시내 교육공무원의 인사와 연간 5조 원이 넘는 예산 집행 권한 등을 고려하면 사실상 ‘교육 소통령’을 뽑는 것과 다름없다. 유권자들이 교육감 후보의 정책을 면밀히 살펴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교육감 선거는 단순히 정치적 이념이나 세력 간의 대결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은 선거 기간 교육 정책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표를 얻기 위한 단기적인 공약을 넘어 실질적인 교육 혁신을 위한 경쟁이 펼쳐져야 한다. 부산의 교육 현황을 살펴보면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교육의 질 향상, 교육 격차 해소, 그리고 디지털 교육의 확대 등 미래를 대비하는 교육 개혁이 시급하다. 특히 교육 자원의 배분에서 지역 간 불균형이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다양한 학생들의 요구에 맞춘 교육 환경과 지역 특성을 반영한 교육 정책도 필요하다. 교육감 후보는 정치적 이념이나 갈등을 넘어 오롯이 부산 교육의 백년대계를 염두에 두고 비전과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교육감은 단순히 교육 행정의 수장이 아니라 부산의 미래를 책임질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이번 교육감 선거는 시민들이 부산 교육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기회다.
[사설] 대한항공 끝내 에어부산 분리매각 지역 염원 등 돌렸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에어부산 분리매각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지난 11일 열린 대한항공 본사에서 신규 기업 이미지(CI) 발표를 겸해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다. 조 회장이 공개석상에서 에어부산 분리매각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 회장의 발언은 에어부산을 가덕신공항 개항 시 신공항을 모항으로 운영할 거점 항공사로 보고, 에어부산 분리매각을 요구해 온 부산 지역 입장과는 정면 배치된다. 대한항공이 에어부산 분리매각에 대한 지역 염원을 깡그리 무시한 것이다. 지역의 입장에서는 ‘예고된 참사’다. 조 회장은 2019년 회장에 취임하자마자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중심이 된 경영권 분쟁에 휘말렸다. ‘형제의 난’ 와중에 KCGI·반도건설·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3자 연합)은 산업은행이 ‘조원태 경영권 지킴이’ 역할을 한다고 공격했다. 이때 정부, 대한항공, 산업은행이 내세웠던 명분이 지방 공항 LCC 허브 육성이었다. 대한항공은 2020년 11월 정부의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통합 발표 당시만 해도 통합 LCC 허브를 지역 공항으로 하겠다는 약속으로 부정적 여론을 진화했다. 그러나 조 회장은 2022년 통합 LCC 본사 소재지에 대해 “진에어를 브랜드로, 인천국제공항을 허브로 운항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경영권을 지킨 뒤 약속을 저버리는 ‘먹튀’ 행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 결합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는 국토부와 산업은행도 통합 LCC 본사 위치와 에어부산 분리 매각에 대해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다. 국토부는 2020년 LCC 통합 본사에 대해 “부산으로 가는 방향이 옳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국민의힘 곽규택 의원실에 제출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 관련 서면 답변서에서 ‘통합 LCC 본사 위치는 경영 상황에 따라 민간기업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산업은행 강석훈 회장도 지난해 6월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만난 자리에서 에어부산 분리매각에 부정적 입장을 밝혀 지역 여론에 찬물을 끼얹었다. ‘에어부산이 지역 대표 항공사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은행 차원에서 방안을 마련해 달라’는 요청에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답한 것이다. 조 회장이 에어부산 분리 매각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히면서 부산시와 지역 사회는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가덕신공항 조기 개통과 활성화를 위해서는 지역 거점 항공사가 필수적이다. 현실적으로 에어부산 분리매각이 어렵다면 통합 LCC를 부산으로 유치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진에어가 김포, 인천공항 기반의 투자를 계속하고 있어 이마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대한항공과 국토부, 산업은행은 지역의 에어부산 분리매각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면 당초의 통합 LCC 본사 부산 유치 약속을 반드시 이행해야 마땅하다.
혼밥과 겸상
“미쳤다!”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 마츠시게 유타카는 맛의 황홀을 느낄 때면 한국말로 너스레를 떤다. 한국에서 널리 알려진 ‘혼밥 아저씨 고로상’의 고독한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넷플릭스 신작 예능 ‘미친맛집’은 마츠시게와 가수 성시경의 한일 탐식 여행기다.마츠시게는 영화 제작에도 진출했다. 19일 개봉 예정인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는 궁극의 국물 요리를 찾으려다 조난을 당한 끝에 경남 거제에서 황태해장국을 만나는 고로가 주인공이다. 부산 출신의 배우 유재명이 출입국 관리소 직원으로 나와 고로의 고군분투를 돕는다. 옆에 앉아 입맛만 다셨지만, 어쨌든 고로 아저씨는 더이상 고독하지 않다.‘고독한 미식가’ 시절 고로에게는 밥 친구가 없었다. ‘나 홀로 먹기’를 신조로 삼은 까닭을 매회 도입부에서 되뇐다. ‘허기가 찾아오면,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먹고 싶은 것을 스스로에게 주는 행위가 현대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최고의 치유 행위!’ 내가 선택한, 나 자신이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1인 밥상에서 해방감까지 얻는다는 의미다. 다소 과해 보이지만, 이를 타인과의 관계 단절로 확장 해석할 필요는 없다.일본은 ‘나 홀로’ 밥상의 천국이지만 식문화가 혼밥 일색은 아니다. 일본 파견 근무 시절, 다양한 지위, 연령의 사람들과 식사, 회식, 가정집 초대 때 밥상머리를 마주했는데 겸상 문화는 한국과 다를 바 없었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식탁의 즐거움을 모르는 게 아니라 혼자 먹는 데 거리낌이 없는 정도의 차이다.사실 한국 밥상도 급격히 단출해지고 있어서 일본과 크게 다르지도 않다. 1인 가구 증가와 개인주의 문화로 홀로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2022년 ‘서울시 먹거리 통계’에 따르면 서울 시민은 주 5.1회나 ‘나 홀로’ 식사를 한다. 청년들을 위한 ‘함께 밥 먹기’ 이벤트까지 만들어지는 데서 혼밥의 일상화를 알 수 있다.‘혼밥의 고수’가 함께 먹는 걸 즐기는 모습이 처음엔 낯설었다. ‘고독한 고로상’ 캐릭터가 무뎌지는 게 아닐까. 하지만 솔직히 보기 좋다. 한일 양국 모두 넷플릭스 시청률이 높다고 한다. 밥상 공동체 전통과 ‘나 홀로’가 더 편해진 세태. 음식 앞에서는 동전의 양면일지 모른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먹었어도 밥상에서는 무언의 소통이 이뤄지기 마련이다. ‘나 홀로’ 잘 먹는 사람이 겸상의 풍성함도 즐길 줄 안다는 의미에서다.김승일 논설위원 do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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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교육감 선거에 대한 단상
아름다운 해변을 끼고 있는 부산은 외지인들이 보기엔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곳이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전한 금융 공공기관이나 해양수산 공공기관의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한결같이 부산에서의 삶에 만족하는 듯하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은 부산에 혼자 산다는 점이다. 아이들을 비롯한 배우자는 서울에 거주하고 있고, 본인만 부산에 내려와 있다. 물론 미취학 아동의 경우는 부산으로 데리고 오지만,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웬만해선 서울에 두고 온다. 아이들을 키우기엔 사교육뿐만 아니라 부산의 공교육도 믿음을 주지 못한다는 의미다. 비단 외지인들의 경우만 그런 것은 아니다.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는지 의구심이 든다. 단순히 ‘인 서울’ 명문대 입학생 수만을 따지는 게 아니다. 학력 신장만이 아니라 특기교육이나 인성교육 등 특색있는 교육이 필요한데, 그냥저냥 시간만 보내는 교육이 아닌가 하는 그런 의구심. 교육감은 지역의 ‘교육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중요한 자리다. 각 시도의 막대한 교육재정과 교육자치를 책임진다. 부산의 경우 연간 5조 원이 넘는 예산이 배정된다. 올해 부산시교육청의 예산은 5조 3351억 원에 달할 정도다. 교육감 선거는 교육의 자치 및 전문성 강화 등의 요구로 2006년 직선제가 도입됐다. 그전까지는 학교운영위원회가 투표하는 식의 여러 가지 간선제 방식이었으나 대표성이 떨어지고 조직선거나 금권선거 등의 비리에 취약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변화를 겪었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정당의 교육감 후보 추천은 금지됐다. 부산시교육감 선거는 2007년 2월 첫 직선제 선거가 치러졌다. 하지만 부산시장 선거와 구청장 선거 등 지방선거에서 함께 치러지는 교육감 선거는 상대적으로 유권자의 관심도가 떨어진다.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해 버린 50대 이상의 유권자, 아이가 없는 미혼의 유권자들에게는 마치 남의 일로 치부된다. 이 때문에 초기의 교육감 선거는 ‘로또 선거’ ‘깜깜이 선거’ ‘묻지마 선거’로 희화화되기도 했다. 후보가 난립하면서 공약이나 인물보다는 투표용지 기재 순서가 당선을 좌우했기 때문이다. 1번 혹은 2번 등 앞번호를 뽑은 후보가 전국적으로 교육감으로 당선되면서 번호 추첨만 잘하면 당선되는 로또 선거로 전락한 것.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이후 진영 간 단일화 바람이 불었다. 난립하던 후보는 보수 진영이나 진보 진영이라는 진영 깃발로 모이면서 이념 대결로 치달았다. 로또 선거는 사라졌지만,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정당의 교육감 후보 추천 금지라는 정당공천 배제 원칙은 사실상 유명무실화됐다. 보수와 진보 진영으로 나뉜 교육감 후보자들은 특정 정당의 상징색을 입고 다니거나 선거 현수막과 포스터 등에 활용하고 있다. 다음 달 2일 치러지는 부산시교육감 재선거도 예외 없다. 정책이나 인물 대결이 아니라 사실상 이념 대결로 굳어지고 있다. 정책이나 인물 검증은 뒷전이고 진영 간 단일화에 목매달고 있다. 지난 15일 정승윤 후보와 최윤홍 후보가 단일화에 전격 합의함으로써 이번 선거도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의 양자 대결로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여론조사 기간 등을 고려할 때 보수 단일화 결과는 오는 23일쯤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선거일인 다음 달 2일까지 열흘도 채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정책 검증이나 인물 검증의 기회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그동안 정책 홍보보다는 단일화에만 목맨 후보들은 교육감 선거를 정치인들의 선거와 다를 바가 없는 이념·진영 대결로 만든 책임이 있다. 2022년 6월 치러졌던 지방선거에서 부산시교육감 선거의 투표율은 49.1%였다. 지난해 10월 서울시교육감의 보궐선거 투표율이 겨우 23.48%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번 부산시교육감 재선거 투표율도 극히 저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 않아도 이념 대결로 치닫는 교육감 선거가 진영 간 조직 대결로 전개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그동안 매치업이 결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책과 인물 검증에 소홀히 했던 언론도 남은 기간 분발해야 한다. 날카로운 검증의 칼을 들이대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교육감 선거는 아이들이 창의적이고 시민적 소양이 있는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는지를 선택하는 문제다.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만을 목표로 삼는 선거로 보면 안 된다. 교육감 선거에 관심을 가져야만, 부산의 교육이 살아날 수 있고 부산의 미래가 희망적일 수 있다. 최세헌 편집국 부국장 cornie@busan.com
[오션 뷰] 우리가 새 배를 짓는 이유
최신예 여객선 ‘선플라워 쿠로시오호’가 운항 4년여 만인 2001년, 한국의 한 선사에 매각된다는 소식은 당시 일본에서 큰 뉴스거리였다. 이 배는 일본 국기와 태양을 상징하는 ‘해바라기’(선플라워)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당시 일본 선사의 자부심과 같았다. 일본의 전통 목욕 가운인 유카타만 입고도 선내를 돌아다닐 수 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편의성과 고급 취향이 잘 접목된 여객선으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그 배는 한일 양국이 함께 개최하는 2002년 FIFA월드컵을 앞두고 ‘팬스타 드림호’라는 선명으로 대한민국 깃발을 달고 일본 세토내해를 가로질렀고 지금도 그 기세를 이어가고 있다. 당시 그 배를 인수한 한국 기업은 당연히 팬스타다. 드림호는 지난 23년 동안 부산과 오사카를 무려 6600여 차례 운항하면서 155만여 명을 실어 날랐다. 주말에는 부산항 인근을 돌면서 불꽃놀이와 뷔페, 선상 포장마차를 즐길 수 있는 ‘부산항 원나잇 크루즈’로 변신하며 인기몰이했다. 4월 13일 새 여객선 ‘미라클호’ 운항 부산∼오사카 편도 2시간가량 단축 한일 수교 60년, 협력의 새로운 물결 선상 여행·크루즈 투어 확산 기대 그 배가 오는 4월 13일 새로운 크루즈 여객선 ‘팬스타 미라클호’로 대체된다. 길이 171m, 폭 25.4m의 새 선박은 객실 102개에 승객 355명, 승무원 46명이 탈 수 있다. 야외 수영장을 포함해 5성급 호텔 수준의 부대시설은 물론이고 웬만한 파도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 특수장치가 설치된다. 한일 항로의 선박 여행에 대한 고정관념이 크게 바뀔 것 같다. 새 선박의 교체 투입으로 부산∼오사카의 운항 시간도 편도 2시간가량이 단축된다. 미라클호는 부산 선사와 부산 조선소, 국내 선박 의장 기업, 그리고 국내 자본의 합작품이다. 특히 팬스타그룹과 대선조선, 두 향토 기업의 협력은 지역경제 발전을 위한 새로운 상생 모델로 주목받아 왔다. 일본과 중국에서는 미라클호의 취항에 진즉부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의 조선 강국이라고 해도 크루즈선 건조에서는 후발 주자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이제는 사정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부산∼오사카 항로는 팬스타그룹이 처음 개설한 ‘개척 항로’다. 부산항에서 출발하는 항로가 가장 가까운 대마도의 히타카츠항부터 같은 섬의 이즈하라항, 후쿠오카의 하카타항, 시모노세키항, 그리고 가장 먼 거리에 있는 오사카항까지 모두 다섯 갈래에 이르지만 대마도를 제외하면 한국 기업이 개척한 항로는 부산∼오사카가 유일하다. 미라클호가 취항하는 날, 오사카에서는 ‘오사카 엑스포’가 개막한다. 국제여객터미널에서 넘어지면 코 닿을 듯 가까운 인공 섬 ‘유메시마’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축제다. 미라클호로선 특별한 기회가 될 수 있다. 덧붙여 올해는 대한민국과 일본이 ‘수교 60년’을 맞는다. 1965년 새로운 미래를 꿈꾸며 수교를 맺은 지 벌써 한 갑자가 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환갑, 일본에서는 ‘칸레키(還曆)’라고 한다. 이른바 제2의 삶이 시작되는 만큼 새로운 기운이 필요할 테다. 그런 차원에서 지난달 남산서울타워와 도쿄타워에서 서로의 믿음을 보여주는 수교 60년 기념 조명 쇼는 의미가 컸다. 유럽의 솅겐조약처럼 여권 없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방안이 최근 정부 차원에서 모색된 것도 새로운 이해와 협력, 소통이 시원스레 시작될 것 같아서 훈훈하다. 그렇지 않아도 한일 양국은 함께 넘어야 할 험난한 파도가 많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은 대표적인 사례다. 원수라도 한배에 타면 공동운명체가 될 수 있다는 ‘오월동주’의 지혜를 두 나라 정치인이 함께 깨달으면 좋겠다. 과거의 잘못은 끊임없이 성찰해야겠지만 참회와 용서로 새로운 미래를 기약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팬스타 미라클호도 그런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 부산∼오사카 항로에 훈풍이 불어서 두 나라의 많은 시민이 대한해협과 세토 내해의 아름다움을 더 자주 함께 감상할 수 있으면 좋겠다. 부산∼오사카 항로가 시작되는 부산항국제여객부두는 부산역과 공중 보행로로 이어져 있다. 철도와 여객선이 이렇게 탯줄처럼 가깝게 연결된 교통 인프라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시원한 바다 풍광까지 곁들이면서 부산 최고의 명소로도 부족하지 않다. 해양수산부와 부산항만공사는 물론이고 부산시, 코레일도 한일 여객 항로에 더 큰 관심을 가져주길 기대해 보며, 우리가 새롭게 시도하는 이동 수단을 넘어서는 여행, 선상 활동이 목적이 되는 여행, 진정한 크루즈 투어의 확산을 기대해 본다. 두 나라 바닷물이 함께 흐르는 대한해협에서 새로운 미래를 논의하는 선상 포럼도 좋은 축제가 될 수 있다. 한일 수교 60년은 그런 축제를 기획하기에 너무 좋은 소재다. ‘새 배를 짓는 마음으로’ 앞날만 생각하면 풀 수 없는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김승일의 곰곰 생각] 트럼프 관세 전쟁, 공황의 그림자
“미국인들은 느려 터져서 생산성이 떨어져요.”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의 제너럴모터스(GM) 공장이 문을 닫자 대규모 실직 사태가 발생한다. 다행히 중국 푸바오그룹이 공장을 인수해 재고용하자 지역 사회는 활기를 되찾는다. 한데, 중국 관리자들은 미국인의 굼뜬 일머리에 속이 터진다. 반면 미국인들은 중국식 근면과 규율, 업무 강도, 그 결과인 높은 생산성에 충격을 받는다. 급기야 미국 직원들은 노조를 결성해 대항하려 한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아메리칸 팩토리’(American Factory·2019년)는 미국에 진출한 중국계 기업이 겪는 문화 충돌이 주제다. 이 다큐를 본 기업인이라면 미국 투자를 주저할 수밖에 없게 된다. 돈으로 건물을 짓고 장비는 들일 수 있으나 일하는 문화까지 살 수는 없다. ‘무역 전쟁은 좋은 것이고, 이기기 쉽다.’(Trade wars are good, and easy to win.) 2018년 3월 2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트윗은 관세 폭탄의 예고편이었다. 트럼프 1기 때는 중국만 두들겨 팼지만 2기에는 동맹국도 가차없다. 우아한 외교 수사는 사라지고 무쇠 주먹만 휘두르는 낯선 미국의 이면에는 제조업 붕괴가 있다. 1960년대 제조업은 국내 총생산(GDP)의 25%였는데 최근 11%로 떨어졌다. 생산력이 몰락하고 기생적 금융자본주의만 번성하는 이상한 나라가 됐다. 제조업 일자리 하나는 비제조업 분야에 3.4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 2000년 이후 제조업 일자리가 500만 개 이상 사라졌고 후방 효과로 비제조업 실업자까지 쏟아져 미국 사회가 입은 내상은 심각하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는 ‘미국인 다시 취업하기’ 캠페인인 셈이다. 트럼프 관세 전쟁의 본질은 ‘일자리 빼앗기’다. 밥그릇 앞에 이념도, 동맹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5일 의회에서 인도, 중국, 한국을 부당 관세 국가로 콕 집어 지목한 뒤 “우방이든 적국이든 똑같다”고 선언한 배경이다. 이날 연설의 핵심은 “미국으로 생산 기지를 옮기지 않으면 더 높은 관세를 매기겠다”였다. 반도체는 상징적인 사례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 대만과 한국이 반도체를 ‘훔쳐갔다’는 표현까지 썼다. 미국에서 탄생한 반도체가 일본을 거쳐 한국과 대만으로 옮아간 과정은 자연스럽다. 한국과 대만은 적정 임금에 24시간 공정을 지탱하는 노동력 공급이 가능했다. 미국에서 불가능해졌기에 아시아로 넘어온 것이다. 하지만 반도체가 전략 물자로 부상하자 ‘미국에서 태어난 기술이니 도로 내놔라’는 억지가 시작됐다. 실제 한국의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대만의 TSMC의 팔을 비틀어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게 해 놓고 정권이 바뀌자 약속했던 보조금은 안면몰수할 기색이다. 트럼프의 목표는 제조업 회생, 즉 일자리 창출이다. 그 수단이 관세다. 관세는 제품 가격에 흡수되어 미국 소비자에 전가된다. 캐나다가 미국의 25% 관세에 맞서 미국에 수출하는 전기에 25% 수출세를 부과한다고 엄포를 놓았는데, 이는 가구당 월 100달러(우리 돈 15만 원)의 생활비를 증가시킨다. 물가 앙등이 촉발한 경기 침체의 위기 경고가 미국 내에서도 나오는 이유다. 미국이 상호 관세를 부과하고 세계 각국이 맞대응하면 물가 앙등, 무역 감소, 경기 침체는 필연적이다.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를 넘어 대공황까지 우려한다. 1930년대 세계 경제를 붕괴시킨 대공황과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어서다. 당시 미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명목으로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제정해 최고 60% 관세를 매겼다. 다른 국가들이 보복 관세로 맞선 결과 세계 무역은 65% 감소했다. 10일 미국 주식 시장이 폭락했는데 이유는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경기 침체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우리가 엄청난 일을 하는 중인데, 과도기가 있을 것”이라고 한 것이 발단이었다. 경기 침체를 감수하겠다는 의지 표명이 불안 심리에 불을 질렀다. 트럼프의 관세 전쟁을 ‘거래의 기술’로만 이해하는 건 금물이다. 트럼프에 있어 ‘엄청난 일’은 산업 구조의 근본적 개혁이고 이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어서 관세 폭탄은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세계 각국은 트럼프 1기 때와 달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임기 4년의 트럼프가 무서워 미국에 공장을 지을 턱이 없다. 12일 유럽연합이 최대 50%의 보복 관세로 반격한 것은 준비된 선전 포고다. 글로벌 경기 침체는 불가피하고 벌써 대공황의 그림자까지 어른거린다. 내수 비중이 높으면 그나마 버티겠지만 수출 의존도가 높은 데다 대미 흑자가 큰 한국은 시계제로다. 트럼프의 호언장담과 달리 ‘무역 전쟁은 나쁘고 이기기도 쉽지 않다.’ 승자 없이 모두가 패자가 될 뿐인 이 무역 전쟁을 피할 길이 없는 처지가 참담하다. 한국은 최악 시나리오를 각오해야 한다.
[이은철의 정가 뒷담화] 행사가 뭐길래
정치인들에게 있어 지역 행사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홍보의 장이다. 이 자리에서의 말과 행동은 비용이 발생하는 광고 문자·전화보다 구전 효과가 탁월하기 때문이다. 이에 마이크를 둘러싸고 배석자 간 얼굴이 붉히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특히 최근 들어 손발을 맞춰야 하는 국회의원과 구청장간 갈등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실제로 지난주 부산 A구에서는 구청장이 국회의원보다 더 많은 시간 동안 발언하면서 참석자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 참석자에 따르면 이 구청장은 국회의원에 앞서 마이크를 잡고 30분가량 자신의 구정 활동과 관련한 PR을 쏟아냈다. 반면 국회의원 발언 시간은 6분 남짓이었다. 이에 해당 국회의원은 현장에서 바로 불쾌감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주변 참모들에게 간접적으로 구청장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표현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일 때문에 두 사람이 독대하기까지 했다는 후문이다. 또 다른 B구의 국회의원과 구청장의 불화설은 지역 정가에 파다한 소문이다. 한때는 영혼의 단짝이라고 불릴 정도로 남다른 호흡을 자랑했던 두 사람이지만 매 행사마다 국회의원 조연 역할만 맡으며 바람잡이로 전락한 구청장은 언젠가부터 동석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결국 국회의원의 호출, 구청장의 거부가 반복되며 두 사람의 관계는 멀어지기 시작했다. 다만 지방선거가 내년으로 다가오면서 지금은 잠시 봉합됐다는 게 B구 지역 상황에 밝은 한 인사의 설명이다. 이처럼 이들 2곳을 제외하고도 같은 정당의 국회의원과 구청장 간 불편한 동침이 이어지고 있는 부산의 기초단체는 또 있다. 대부분 지역 역점 사업의 치적을 둘러싼 갈등이 대다수다. 정부 부처를 상대로 한 국회의원의 압박이 주효했다는 주장과 구청에서 실무 작업을 철저히 한 덕분이라는 주장이 충돌하는 형태다.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는 게 정치의 원칙이기도 하지만 특히나 최근 이러한 기류가 다수 감지되는 것은 22대 총선을 거치며 새로 지역구를 맡은 현역들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된 지역들 중 일부는 현역 교체가 이뤄지지 않기도 했지만 파열음이 곳곳에서 제기되면서 1년 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서 부산의 경우 대규모 교체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한다. 일부 구청장들이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도 이같은 해석에 무게를 싣는다. 지역 발전에 집중해도 모자랄 시기에 국회의원과 구청장이 기싸움을 벌이면서 주민들은 실소를 금치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탄핵으로 멈춘 상황에 지역에서는 같은 정당 소속인 두 사람이 싸우는 불상사가 벌어지고 있다는 게 지역 소멸 위기의 한가운데 있는 부산시민으로서 개탄스러울 뿐이다.
[정훈의 생각의 빛] 부산항 북항 문학 르네상스를 꿈꾸며
올해 5월 7일은 1985년 ‘5·7문학협의회’가 결성된 지 40주년을 맞는 날이다. 군사독재와 반민주주의의 폭거가 횡행하던 때, 요산 김정한(1908~1996) 선생을 비롯한 소설가와 시인 및 문학평론가 등 일군의 문인들이 문학인의 결속과 협의체의 필요에 따라 중구 동광동의 한 식당에 모여 5·7문학협의회를 결성하게 된 것이다. 이 협의회는 1987년 11월 ‘부산민족문학인협의회’로 확대 재편되어 지금의 (사)한국작가회의 부산지회, 즉 ‘부산작가회의’의 전신이 되었다. 부산작가회의는 그간 부산민예총 등 타 기관의 공간 일부를 빌려 오랜 시간 더부살이를 해오다 지난해 연말 동광동 인쇄 골목 쪽 비어있던 사무실을 임대받아 독립적인 공간을 마련하게 되었다. 지역의 문학단체를 대표하는 부산작가회의의 독립적인 공간이 5·7문학협의회가 결성되고 무려 40년이 지난 시점에야 안착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많은 생각을 불러온다. 단체의 공간 마련이 비용이나 예산이 비로소 확보되어 이루어졌다는 점은 중요하지 않다. 40년 전 중구 한복판에서 결성된 문학인의 뜻과 의지가 시간이 흘러 구성원이 확대되고 다양한 창작 세계를 펼쳐왔던 이력의 공간적 구심점이 다시 원도심으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중구 일대는 작가 모인 작품 집필 공간 부산작가회의·소설가협회도 둥지 틀어 새 시대 이끄는 ‘원도심 창작 산실’ 기대 최근에는 부산소설가협회 사무실도 중앙동 부산우체국 뒤편 골목에 자리 잡은 건물에 들어서기도 했다. 인쇄소와 출판사가 즐비해 1980~1990년대 당시 문학인의 교류가 활발했지만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문화공간과 구성원 및 단체의 이전과 분산의 흐름에 따라 침체의 늪에 빠졌던 ‘원도심 문학’이 이제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는 형국이다. 아울러 그동안 숱한 예술인들의 ‘문화사랑방’ 구실을 했던 ‘양산박’이나 ‘강나루’ 등의 주점이 사라지면서 오갈 데 마땅치 않은 작가들이 각종 창작프로그램이나 북콘서트를 비롯한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는 장소가 확장됨에 따라 삼삼오오 이곳 중구 일원으로 모여들고 있다. 부산 중구, 특히 동광동과 중앙동 일대는 한국 근·현대사의 오욕과 영광을 아우르는 장소였다. 동광동은 1678년부터 1876년 부산포 개항까지 지금의 용두산 일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초량왜관의 동관(東館)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동관’과 인근 ‘광복동’의 첫 글자를 따 지은 행정구역이다. 중앙동은 1900년대 초부터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북항 매축공사에 따라 바다를 매립, 지금의 중앙대로와 충장로 일대가 새롭게 형성되면서 기존의 일부 지역에 편입된 곳이기도 하다. 일제의 식민지 경영과 대륙 침탈을 위한 발판으로 건설한 1부두와 부산역 등의 육·해상 교통 플랫폼을 끼고 있어서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수많은 사람과 문화가 유입된 곳이기도 하다. 한때 한국 패션 1번가로 명성이 높았던 광복동, 한국에서 가장 큰 어패류처리조합인 자갈치시장이 있는 남포동, 한국 최초로 조성된 공설시장인 부평깡통시장이 있는 부평동, 한국 최대 규모의 책방골목이 있는 보수동 등 이곳 중구는 부산에 한정되지 않고 한국 전체로 봐도 손색없는 근·현대사와 문화의 ‘성지(聖地)’ 중 하나이다. 여기에 부산항 북항을 끼고 있는 동광동과 중앙동 일대에 속속 둥지를 틀면서 자리를 잡고 있는 문학단체와 작가들이 가세해 바야흐로 부산 문학이 제2의 르네상스를 꿈꾸기 위한 기반과 여건이 얼추 마련되었다. 2017년경에는 다른 구(區)보다 뒤늦은 감이 없지 않았지만, 중구 일원에 터를 둔 문학인들의 조직인 부산중구문인협회가 조직되어 지난해 제1회 용두산문학상을 제정하여 한평생 중구민으로서 창작 활동을 했던 아동문학가 강기홍 선생을 수상자로 선정하기도 하였다. 1979년 10월 부마항쟁의 함성이 1987년 6월의 항쟁으로 되살아나 광복동과 남포동 그리고 중앙동의 거리에서 불꽃처럼 피어올랐던 땅이기도 하다. 비록 17세기 초량왜관 조성으로 근대적인 의미의 시가(市街)가 형성되었지만, 이후 세계사적인 격동과 전쟁 및 산업화·근대화를 지나면서 이 나라 산업과 문화의 조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곳이다. 자갈치시장과 공동어시장을 중심으로 한 남항 일대와 임시수도기념관이 자리한 서구 부민동의 독특한 역사·문화적인 공간, 그리고 부산근현대역사관과 백산기념관을 품은 대청로를 가로지르면서 웅크리고 있는 형형색색의 글감들이 작가의 펜이 스치기를 기다리고 있다. 부산항 북항 일대에 오래전부터 작가들이 살면서 작품을 생산해 냈다. 삶의 터전으로서 주거 공간의 시간을 지나 지금은 ‘기획된’ 행위로써 작가들이 속속 모이는 공간의 시간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어두운 시간 속에서 운명처럼 글을 써야 했던 지난 세대의 작가정신을 망각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예술 형식과 내용을 불러내는 작업이 북항 일대에 번지기를 기대한다.
[공감] 골목을 걷다
오래된 골목 앞에 서면 비단 나만 그러할까. 이웃집 담장이 다닥다닥 어깨를 겯고 당목 이불 홑청이 햇살을 되쏘던 곳, 녹슨 대문 앞에 ‘개조심’이란 팻말이 문패같이 걸렸고, ‘셋방 있씀’처럼 맞춤법 한두 군데 틀린 광고지가 담벼락에 붙어있던 곳, 덜 마른 보릿대에 보리까락을 섞어 태운 모깃불 연기가 초저녁달을 향해 사라지던 곳, 큰소리로 순덕, 말남, 금자를 부르면 땟국물 절은 옷소매를 걷으며 맨발로 뛰쳐나올 것만 같은 곳. 옛 골목들은 언제나 휘황 다단한 현대의 삶도 한갓되이 무화시켜버린다. 오늘은 꽃구경 대신 골목을 걷기로 한다. 이왕 걷는 길은 낡고 한적하면 좋겠다. 빈 의자가 보이면 잠시 앉아도 되고, 낯선 집 처마 밑의 제비집 사진을 찍어도 나무라지 않는 인심이 있고, 창문 사이로 흘러나오는 유행가 몇 소절쯤 귀동냥으로 들을 수도 있으니까. 어디서 날아온 씨앗들이 잎을 틔웠는지 모르지만 냉이꽃 더미에 실핏줄 같은 거미줄이 엉켜 있고, 길고양이 한 마리쯤은 돌옹벽 아래에 널브러져 오수를 즐기며, 털빛 빤지르르한 검둥이도 남의 집 문간에 오줌을 갈기고 도망을 가야 제법 골목답다. 휘어져 여유롭고 느려서 편안 막다른 골목 앞에서 울어본 사람 굴곡진 삶을 살아온 사람을 닮은 길 구불구불 곡선 길을 뒤돌아보니 골목길 벗어나던 한때의 내가 있다 주례동 뒷골목에 하늘처럼 높고 용 같은 기상을 의미하는 하늘미릇길이 있다. 지하철역으로는 냉정역 2번 출구와 가깝고 위로는 동서고가가 우뚝하며 주변에는 위풍당당한 고층 아파트가 솟았다. 그 현대식 건물 아래 옛 마을이 납작 엎드린 채 골목을 거느리고 있다. 물줄기가 흘렀을 법한 움푹 꺼진 땅에도 골 따라 축대를 세우고 지붕을 올렸다. 하천을 그대로 남긴 채 한쪽 옆으로 옹벽을 쌓고 다다닥 들어선 집들은 마치 현대판 수상가옥처럼 보인다. 젊은 사람들은 아파트로 떠나고 토박이 노인들만 남았으리라고 생각한 것은 편견일까. 헤드셋을 머리에 얹은 소년이 쪽문을 열고 나온다. 낯선 이방인의 호기심도 이미 익숙해졌다는 눈빛이다. 엉킨 전선이 머리 위로 지나가고 담장 위로 널린 빨래들이 주인을 대신해 봄바람에 펄럭인다. 어떤 집은 얼룩진 석벽 중간에 작은 화분으로 눈가림을 해두었고 어떤 집은 활짝 열어 빈속을 드러내었다. 고만고만한 담벼락 앞에도 흙 채운 붉은 고무통이 즐비하다. 쪽파와 상추와 봄동배추가 동백 화분 사이로 키를 키웠다. 귀한 생명들이다. 뿌리 내린 곳에서는 기꺼이 버티고 살아내야 하리라. 골목이라고 모두 퀴퀴하고 암울하기만 할까. 현대 골목은 급격하게 변신하고 있다. 무채색 벽들은 연두 초록 분홍 노랑 파란색으로 각자의 색깔을 내고, 구도심의 골목은 역사와 문화를 재생시키고 스토리를 입히며 각종 페스티벌과 야행 축제를 개최한다. 예쁜 카페들이 문을 열고 아담하고 소박한 빵집과 밥집과 책방과 옷집도 감성을 더하니 화려한 골목길은 입소문을 통해 빠르게 번져간다. 부산만 하더라도 해리단길, 청리단길, 전리단길, 망리단길, 덕리단길 등이 핫 플레이스라는 명칭을 얻어 골목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그러나 여전히 삶을 가꾸고 생을 지켜내는 골목도 남아 있다. 집이 안이고 골목이 바깥이라는 사실을 무너뜨리게 만드는 길. 돗자리 하나만 깔면 골목 거실이라 이름 붙여도 좋을 온기가 남은 곳. 이곳도 어떤 이에게는 가슴 뛰던 옛사랑의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길을 벗어나면 반듯한 도로가 나오겠지만, 태생이 깡촌이라 그런지 나는 후미지고 구부러지고 옆구리가 울퉁불퉁 불거져 나온 좁은 골목길이 좋다. 휘어져 여유롭고 느려서 편안하다. 무엇보다 막다른 골목 앞에서 울어본 사람들과 골목길처럼 굴곡진 삶을 살아온 자들을 닮은 길이니까. 구불구불 곡선의 길을 뒤돌아본다. 어둑한 골목길을 총총 벗어나던 한때의 내가 서 있다.
부산교육감 보수 단일화… 돌고 돌아 ‘양자 대결’
尹 탄핵심판 운명의 한 주
“운전면허 반납하면 현금”
부산, 국내 조선 연구개발 허브로 뜬다
보수 진영, 공멸 우려에 단일화 합의는 했으나…
의료 공백에 재난기금 114억 투입한 부산시 "바람직하지 않다"
여야 "탄핵심판 결정 승복" 한목소리… 불리한 결론도 수용?
“尹보다 韓 총리 탄핵심판이 우선” PK 국힘 헌재 압박 공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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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로 폐업했던 김해공항 리무진, 올 상반기 재개 수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