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HMM 이전 위한 '해운도시 조성·발전 특별법' 필요하다
해양수산부가 부산 이전 청사 입지를 부산 동구로 확정짓고 연내 업무 개시 목표로 속도전에 들어갔다. 어렵게 성사된 해수부 이전 효과가 극대화되려면 관련 기업·공공기관의 집적 필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북극항로 개척으로 해양 물류의 신기원을 개척하겠다는 비전 실현에 있어 가장 주목되는 것이 국내 최대 해운선사 HMM이 해수부를 따라 본사를 옮기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때 부산 이전을 공약했고, 전재수 해수부 장관 후보자 또한 14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해운기업 유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금부터 법적 근거를 만들고, 정치적 추진 동력을 쌓아야 체계적이고 차질 없이 해양강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 부산시와 해수부는 해운업 재건의 상징인 HMM 본사를 부산으로 옮겨 글로벌 해양수도의 대표 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전략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HMM 노조는 “상장사의 자율성과 독립성 훼손”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 등 정부 측 지분이 70%가 넘는다 해도 힘으로 밀어붙일 수만은 없다. 부산시민들은 산업은행 부산 이전이 국회와 노조의 벽에 부딪혔던 경험이 쓰라리다. 따라서 단순한 기업 하나 유치하는 수준을 넘어 글로벌 해운도시 육성을 목표로 하는 특별법을 통해 설득하고 참여를 유도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지역뿐만 아니라 기업에게도 기회가 열리는 비전이 제시돼야 한다. 해수부 이전 확정 이후 공공기관과 해운기업의 동반 이전으로 시너지를 낼 필요성이 줄곧 제기됐지만 법제화 논의는 더디다. 부산상의가 14일 ‘해운도시 조성 및 발전에 관한 특별법’ 필요성을 제기한 것은 이 국면에서 대단히 시의적절하다. 특별법 없이 해수부만 옮긴 채로 시간을 끌면 공공기관과 기업의 이전은 차일피일이 될 우려도 있다. 최악의 경우 해수부 주소만 바뀐 채로 핵심 인력과 기능은 여전히 서울에 머무는 ‘무늬만 이전’에 그칠 수도 있다. 글로벌 해운산업의 허브로서 부산의 위상 확보는 법·제도적 지원 없이 이뤄지기 어렵다. 해사법원, 선주협회, 해양보험사 유치 연계도 법적 뒷받침이 필수다. 이재명 대통령이 18일 부산에서 ‘타운홀 미팅’을 갖는다. 해수부 등의 이전, 북극항로 개척이 주요 의제다. 그중 HMM 이전은 단순히 하나의 기업이 지리적인 이동을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해양강국 도약과 부산의 글로벌 해양수도 비전 실현을 위한 전환점이 될 수 있어서다. 그러려면 큰 틀에서 해운도시를 키우는 내용을 반영한 법제화는 불가피하다. 각종 행정특례, 세제 혜택, 이전 비용 및 연구·개발(R&D) 지원, 특별 해양금융지원 프로그램 등의 지원책과 함께 해사법원 설립 근거가 담겨야 한다. 해운도시 특별법은 국가균형발전 실현과 해양강국으로 가는 동력을 위해 필수적이다. 대통령의 전향적인 지지·지원이 필요하다.
[사설] 국토부 장관 지명자 가덕신공항 조기 착공부터 해결해야
이재명 정부 내각의 마지막 퍼즐로 꼽혔던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 장관에 더불어민주당 3선 김윤덕 의원이 지명되자 동남권 지역에서는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대통령실이 김 의원의 국토부 장관 인선 배경으로 지역균형 발전에 대한 김 의원의 의지를 거듭 강조해서다. 김 의원은 전북 전주갑 출마 당시에도 혁신도시와 광역교통망 등 지역균형 발전 마중물이 될 공약을 많이 내걸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동남권은 새 국토부 장관이 동남권의 미래를 위한 중요 인프라임에도 사업이 답보상태를 거듭하고 있는 가덕신공항 문제를 제일선에 놓고 적극 해결에 나서달라는 주문을 하고 있다. 가덕신공항 건설 사업은 국토부가 발주한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사업자로 계약을 맺은 현대건설 측이 알 수 없는 이유로 7년으로 확정된 공기를 2년 더 늘리지 않으면 사업을 할 수 없다며 포기한 상태다. 현대건설은 이 같은 몽니를 부리고도 부산지역에서 각종 대형사업에 참여하겠다는 파렴치한 행태를 보여 지역의 비판을 한몸에 받고 있는 중이다. 현재 올스톱된 가덕신공항 건설은 올해 안에 사업이 새로 재추진되고 기존 확정된 7년의 공기를 적용해도 2032년에야 겨우 마무리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재입찰을 실시해 공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지역 여론이 들끓고 있다. 다행히 김윤덕 국토부 장관 지명자는 최근 국토부·건설사 등과 간담회를 열며 가덕신공항의 재입찰 조건 저울질에 나서고 있다. 현대건설의 몽니가 현실화할 때까지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던 부산시도 새 국토부 장관 취임 직후 가덕신공항 재입찰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지명자 측과 행보를 맞추고 나섰다는 소식이다. 문제는 기존에 확정된 7년의 공기가 더 늘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다. 공기 연장 운운하며 사업을 지연시킨 현대건설에 대한 지역의 비판이 고조되면서 공기 연장 가능성은 낮아졌다는 분석이 우세하지만 계약 당시 확정된 공기마저 뒤집은 전례에 비춰본다면 마음을 놓을 순 없는 일이다. 가덕신공항 건설 사업이 지역균형 발전의 지렛대가 될 동남권의 핵심 사업임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사업은 지역균형 발전을 위한 사업이기 이전에 기존 공항 안전과 수용력 등의 한계로 인한 정부 공항 정책에 따라 국책사업으로 진행되는 사업이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정권에 따라 시혜성으로 지역에 인프라 하나를 지어주는 그런 사업이 아니라는 뜻이다. 정책 시급성에 따라 진행되는 사업이기에 더 이상 지체되어선 곤란한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초대 국토부 장관이 가덕신공항 조기 착공과 공기 단축 등을 최우선 과제로 두어야 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그 사업의 순조로운 진척이 이재명 정부의 지역균형 발전 철학을 두드러지게 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더더욱 그래야 할 터이다.
[사설] 장관 후보 눈덩이 의혹에도 '전원 통과' 외치는 여당 오만
이재명 정부의 첫 내각 인사청문회가 이번 주 본격화한다. 오늘부터 닷새간 17명의 장관급 후보자가 잇달아 검증대에 오른다. 그야말로 ‘슈퍼위크’다. 여성가족부, 교육부, 통일부 등 주요 부처 수장을 포함해 이재명 정부의 국정 철학과 리더십을 가늠할 첫 시험대라 할 수 있다. 여권은 “단 한 명의 낙마도 없다”는 방침에 따라 방어에 나섰지만, 야당은 강선우 여성가족부 후보자와 이진숙 교육부 후보자를 정조준하며 강도 높은 송곳 검증을 벼르고 있다. 하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각종 의혹 앞에서도 사과보다 엄호에만 몰두하는 여당의 태도는 유감스럽다. 지금 필요한 건 국민 눈높이에 맞춘 철저한 검증이다. 이번 청문회 대상자 중 일부는 이미 ‘낙마 대상’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가장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은 단연 강 여가부 장관 후보자와 이 교육부 장관 후보자다. 강 후보자는 국회의원 시절 5년간 무려 46차례나 보좌진을 교체하고 자택 쓰레기 처리나 변기 수리 같은 사적인 업무까지 지시했다는 ‘갑질’ 의혹에 휩싸여 있다. 이 후보자는 충남대 재직 시절 제자의 논문을 대필·표절했다는 의혹에 더해 자녀의 불법 조기 유학, 논문 쪼개기 게재 논란 등으로 도덕성과 공직 윤리에 심각한 의문을 낳고 있다. 두 후보 모두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공직자 자격이 의심되는 인물은 청문회에서 엄정히 걸러내야 한다. 이 외에도 정동영 통일부 후보자의 농지법 위반 의혹, 윤호중 행정안전부 후보자의 음주운전 전과 등 줄줄이 도마에 오른 상태다. 전체 후보자 면면을 보면 크고 작은 도덕성 논란에 휘말린 인물이 적지 않다. 무결점 후보자는 찾아보기 어렵고 일부는 국민 눈높이에 한참 못 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런데도 여권은 사실상 ‘버티기 인사’로 일관하며 실망을 더하고 있다. 특히 여당은 전원 통과를 기정사실화하는가 하면, 내부에서는 “소명이 안 되면 더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옴에도 이를 원론적 입장이라며 일축하고 있다. 겉으론 단호한 엄호를 외치고 속으론 여론의 추이를 살피는 이중적 태도로는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민의힘이 제기한 자료 미제출, 증인 배제 등 이른바 ‘맹탕 청문회’ 우려다. “청문회에서 해명하겠다”던 후보자들이 핵심 자료 없이 증인도 부르지 않고 또다시 책임을 회피한다면 청문회 제도는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국민은 고위공직을 맡은 사회지도층이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불법 아니다”, “남들도 그랬다”는 말만 반복하는 데 깊은 허탈감과 분노를 느낀다. 이런 일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 이재명 정부 내각 출발선에서 여당은 때론 야당 비판을 정쟁으로만 치부하지 말고 귀 기울일 줄도 알아야 한다. 그 시작이 청문회다. 대통령이 국민과 야당의 우려를 무시하고 인사를 강행한다면 책임은 결국 대통령에게 돌아갈 것이다.
우방과 호구 사이
관세전쟁을 선포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세계 각국에 ‘행운(?)의 편지’가 날아들고 있다. 오는 8월 1일부터 미국에 수입되는 상품에 붙일 관세를 통보하는데, 이미 25% 통보를 받은 한국과 일본에 이어 이번 주초에는 전통적 우방인 유럽연합(EU)과 멕시코에 30%, 캐나다에는 35%를 통보했다. 145%를 선포했다가 30%로 낮춰준 ‘가상 적국’ 중국과 같거나 더 많은 세율이다.경찰국가 지위를 내려놓고, 자국 제조업과 일자리 만들기에 전력하겠다고 선언한 트럼프의 협상 전략이지만, 미국을 동맹·우방으로 여기고 의지해온 교역국들은 혼란스럽다. 바야흐로 각자도생 시대다.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국가들은 국방비를 국가 예산 5% 수준으로 올리라는 트럼프 요구에 국방 예산을 지금보다 2~3배 더 써야 하는 처지다. 4년째 이어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공급망에 차질이 생기면서 성장률이 정체한 유럽 국가들로서는 관세에다 국방비까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심정일 터. 오죽하면 아시아의 ‘맹방’으로 불린 일본의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기존 24%에서 1% 오른 관세를 통보받고 “깔보는데 참을 수 있냐”며 발끈했을까. 하지만 이익에 따라 언제든지 관계가 재설정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이런 관점에서 최근 영남권 민심의 변화도 흥미롭다.지난 13일 발표된 리얼미터의 7월 2주차 정당지지도 조사 결과 부울경에서 더불어민주당은 50.4%, 국민의힘은 35.6% 지지율을 보였다. 대구 경북에서는 민주당 52.3% 국민의힘 31.8%로 오히려 더 벌어졌다. 6·3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가 더 많은 표를 가져간 영남이 한달여 만에 돌변했다.영남은 보수 정치권으로부터 ‘텃밭’으로 불렸지만, 유권자를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존재로 보는 것 같아서, 정치인들이 평소엔 나몰라라 하다가 선거때 밭에 들러 표만 잘 거둬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불편했다. 그럼에도 실제론 정당만 보고 표를 주는 사례가 오래 반복되었다. 어쩌면 일부 유권자들의 무비판적 맹종, 또는 ‘미워도 다시 한 번’이 정치인들로 하여금 이 지역 유권자를 언제든 표를 긁어모을 수 있는 ‘호구’로 여기게 만든 것 아닐까.그런 점에서 요즘 영남권 민심의 변화는 효능감에는 지지로, 실망감에는 회초리로 성과에 맞게 대응하는 능동적 유권자로 바뀌어가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정치권의 건전한 경쟁과 혁신, 지역 발전도 이런 능동적 유권자로부터 비롯될 것이다.
논설주간/이사
강윤경
논설위원/대기자
강병균
논설위원
김승일
정달식
이상윤
김상훈
천영철
[천영철의 사리분별] 대한민국 미래 동력 북극항로와 부울경 메가시티
인류 문명사를 뒤흔들 새로운 길이 열린다. 심지어 이 길은 부산·울산·경남을 경유해 지나간다. 부울경이 지구촌 누구나 부러워하는 ‘글로벌 초역세권’이자 아시아의 관문으로 발돋움할 절호의 기회를 맞은 것이다. 이 길은 부울경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살릴 미래 동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어마어마한 ‘복권’에 당첨된 부울경은 아직까지 이 길의 가치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듯하다. 이 길은 북극항로를 말한다. 북극항로는 반갑지만 슬픈 길이다. 얼어붙은 북극해가 지구온난화로 녹으면서 비로소 상업적 선박 운항을 꿈꿀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유럽과 아시아를 최단 거리로 연결하는 새로운 글로벌 해상 루트인 북극항로는 시베리아 북쪽 연안을 경유하는 북동항로, 캐나다 영역의 북부 북극해를 통과하는 북서항로, 아직까지 얼어붙어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없는 북극점 횡단 항로 등의 세 코스로 나눌 수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길은 북동항로다. 북동항로는 유럽 발트해에서 노르웨이 북구를 거쳐 러시아 북극 연안을 따라 항해한 뒤 동시베리아와 베링해협을 지나 한반도 동해로 진입, 한국, 일본, 중국 등 동북아시아로 연결된다. 북극항로가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유럽에서 일본과 중국, 한국 등 아시아로 오가는 선박들이 부울경 항만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동안 지구촌은 유럽~아시아 물류 운송을 위해 말라카해협과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항로를 수백 년 동안 이용했다. 하지만 북극항로가 상용화되면 사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북극항로는 1만 2700km로 2만 1000km에 달하는 기존 항로보다 훨씬 짧다. 운송 시간뿐만 아니라 연료비 등 물류 수송 비용이 대폭 줄어든다. 북극항로는 아직까지 활짝 열리지 않았다. 현재 하절기 5개월 정도만 운항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10여 년 후에는 연중 운항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쟁국인 중국과 일본 등은 이미 치열한 준비에 나서고 있다. 중국은 북극항로를 ‘빙상 실크로드’로 명명하고 인프라 확충을 추진 중이다. 일본은 홋카이도를 북극항로의 중간 거점이자 환적 허브로 만드는 대대적인 육성 정책에 나서고 있다. 북극항로에 필요한 쇄빙선 경쟁도 치열하다. 노르웨이, 핀란드, 러시아 등은 쇄빙과 운항을 동시에 하는 선단을 꾸리는 등 북극항로 활용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북극항로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강조한 데 이어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등을 시작으로 북극항로 대비 전략을 본격 추진한 것은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조금 더 속도를 내야 한다. 해수부가 북극항로 태스크포스를 꾸리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범 정부 차원의 정밀한 협업이 시급하다. 부산항을 거점항구로 육성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하는 관련 특별법 등 제도적 정비도 서둘러야 한다. 더욱이 북동항로는 국제법상 공해이지만 유빙과 빙산 때문에 러시아의 에스코트를 받아야 통행할 수 있다. 정부 차원에서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에 나서는 등의 장기 전략이 뒤따라야 한다. 부울경도 북극항로 시대를 본격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북극항로 거점항구는 단순히 화물만 오고 가는 장소가 아니다. 물류 환적과 생산, 재가공, 금융거래 등을 할 수 있는 배후단지 인프라를 공동으로 구축해야 한다. 부울경 전체를 첨단산업기술 클러스트화하는 것도 시급하다. 부산항뿐만 아니라 울산신항도 거점항구에 포함시켜 역할을 배분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우물쭈물하다가는 일본과 중국에 밀려 천재일우의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할 우려가 크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부울경을 아우르는 초광역 메가시티를 만드는 것이다. 부울경 메가시티는 망국적인 수도권 일극주의를 없애고 새로운 국가 동력을 만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부울경은 각 정당과 지역의 이해관계 때문에 그동안 메가시티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했다. 부울경 초광역경제동맹을 출범했으나 경제 협력으로는 메가시티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 더욱이 행정통합 논의엔 부산과 경남만 참여한 데다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부울경은 메가시티화 논의를 활성화하고 관련 특별법을 추진해야 한다. 이젠 시간이 없다. 부울경 광역단체장들은 메가시티화가 이제 더 이상 선택 사항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부울경이 메가시티라는 큰 날개를 활짝 펼칠 때 북극항로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새로운 산업 문명의 중심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북극항로라는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을 앞둔 지금, 정부와 부울경의 빈틈없는 대응 전략 수립과 추진을 기대한다.
[문우석의 기후 인사이트] 다른 목소리 어우러지는 만남, 융합의 시작
다른 나라에서 학위를 받으며 가장 먼저 마주한 어려움 중 하나는, 낯선 문화를 단순히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몸에 밴 생활방식과는 사뭇 다른 문화 속에서 예상치 못한 순간마다 작은 충돌이 일어났다. 공부에만 집중하면 될 줄 알았던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매일 오후 3시가 되면 전공을 가리지 않고 학생과 교수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건물 중앙의 넓은 공간에 모여 티타임을 가졌다. 커피나 차, 간단한 다과를 곁들이며 담소를 나누는 이 시간은 영어가 익숙하지 않았던 내게 낯설고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티타임은 다양한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서로의 연구를 이야기하며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뜻밖의 소통의 장이 되어주었다. 이 시절, 내가 소속해 있던 연구실 건물에는 기후 과학자뿐 아니라 지진, 암석, 공룡 화석을 연구하는 사람들, 때로는 이론 물리학자들까지 찾아오곤 했다. 시간이 흘러 다른 연구자들과 대화가 익숙해졌고, 그들과 대화하며 같은 주제도 전혀 다른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연하게 여겼던 개념이 낯설고 비논리적으로 느껴졌지만 그 과정에서 새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들도 생겨났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며 나의 ‘상식’이란 것이 얼마나 상대적인 것인지도 알게 되었고, 내 전공을 명확하고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법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와 보니, 내가 하는 전공에 대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느꼈다. 공식적인 학회 발표나 기관이 주최하는 워크숍과 같은 자리를 제외하면, 내가 하고 있는 전문적인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일은 많이 없었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관심사가 아닌 주제를 굳이 꺼내는 일이 오히려 배려심 없는 행동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러한 경향은 협업을 기본 조건으로 하는 연구 제안서를 작성할 때도 드러났다. 여러 연구 책임자들의 협력이 필수적인 과제의 경우, 의견을 활발히 교환하기보다는 전체 일을 합리적으로 나누고, 각자의 전문 분야를 믿고 맡기는 방식으로 일이 진행되었다. 이는 각 분야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문화로 이해되기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분업의 결과를 단순히 합쳐 만든 결과물은, 때때로 예상보다 덜 유기적이고 상호 연결성이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최근 한국에서도 ‘융합’이라는 단어가 과학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전문성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하되 서로의 관점을 이해하고 질문을 주고받는 문화가 조금 더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돌이켜보면, 티타임은 어쩌면 이런 대화와 이해의 시간을 가능하게 하는 여러 자연스러운 방법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매일 이어지는 편안한 만남은 공감과 신뢰를 쌓는 기반이 되었고, 연구에 대한 정보와 관점을 나누는 소중한 공간이 되었다. 단순한 사교의 장을 넘어, 융합적인 연구의 씨앗이 자라는 소통의 공간이었던 셈이다. 새 정부 아래 한국에서도 기후 위기와 경제 위기 같은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융합 정책이 시도되고 있다. 예를 들어 ‘기후에너지부’의 신설은 신재생에너지와 기후변화라는 서로 다른 분야를 하나로 묶으려는 의미 있는 과제로 읽힌다. 그러나 조직을 단지 합친다고 해서 진정한 융합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서로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낯선 언어와 사고를 이해하려는 태도, 그리고 그 차이를 기꺼이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될 때, 비로소 융합은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연구실의 작은 티타임이 보여주었듯이, 융합은 거창한 제도보다는 일상의 작은 대화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이뤄진 많은 과학의 혁신은 서로 다른 분야 간의 융합에서 비롯되었다. 가령,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는 리만 기하학이, 맨틀 대류 이론에는 유체역학이, 기후변동 연구에는 통계물리학의 브라운 운동 개념이 적용되었다. 이처럼 하나의 분야를 깊이 파고드는 탐구 못지않게, 이질적인 학문 간의 연결과 교차는 새로운 통찰을 가능하게 해왔다. 새롭게 신설되는 기후에너지부는 기후 연구와 에너지 연구라는 서로 다른 분야가 만나는 융합의 장이 될 것이다. 융합은 결국 사람이 만드는 일이다. 융합의 출발점은 타인의 일을 내 일처럼 듣고, 그 문제를 함께 고민해 보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 필자가 처음 어색하고 낯설게 경험했던 티타임의 일상적인 대화가 떠오른다. 별다를 것 없던 그 시간이야말로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이해를 넓히는 진짜 융합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도, 그런 자연스러움 속에서 조금 더 자주 마주 앉고, 서로를 향해 열린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었으면 한다.
[데스크 칼럼] 다음은 동남권 순환 광역철도다
765만 명 주민들이 살고 있는 부울경에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사업 무산 소문까지 나돌았던 부울경 광역철도 건설사업이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 조사(이하 예타)를 통과해서다. 예타 통과는 정부가 이 사업의 필요성을 인정·승인한 것으로, 앞으로 기본계획 등 후속 절차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는 의미다. 부울경 광역철도는 부산도시철도 1호선 노포역~양산 웅상출장소~KTX 울산역을 잇는 총연장 47.4km를 단선으로 건설하는 사업이다. 11개 정거장에 하루 35회 경전철이 운행된다. 사업비는 2조 5475억 원이다. 이 철도가 개통되면 부산 노포에서 양산 웅상까지 10분, 울산 KTX역까지 45분대로 이동할 수 있어 부울경 지역을 1시간 생활권으로 묶을 수 있게 된다. 부울경 광역철도 예타 통과는 순탄치 않았다. 이 철도의 예타 결과 발표는 지난해 6월이었다. 그런데 같은 해 9월로, 다시 12월로, 올해 상반기로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법정시한(6월 말)인 2년을 넘겼다. 결과가 늦어지면서 ‘노선 단축’, ‘단선 건설’, ‘사업 무산’ 등 온갖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나 6월 장미대선에서 수도권 집중 현상과 지방 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5극 3특’ 체제로의 전환을 공약한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되고, 취임 후 “부산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며 현안 해결에 집중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경제성은 부족하지만 예타 통과 가능성’이 점쳐졌고, 현실화했다. 실제 예타 통과 과정에 지역 균형발전 가치 등의 정책적 배려가 기준(0.5)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2021년 시행한 ‘사전 타당성조사(사타)’에서 B/C가 0.66으로 나왔다. 기재부 예타는 사타보다 경제성을 더 엄격하게 보기 때문에 B/C는 사타보다 훨씬 낮게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부울경 1시간 생활권 조성과 초광역경제권 구상의 핵심 인프라에 동남권 순환 광역철도가 남아 있고, 이 철도 역시 예타 통과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부울경 광역철도처럼 정책적 배려(?)를 기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KTX 울산역~양산 상·하북~김해 진영을 잇는 총연장 51.4km의 동남권 광역철도도 지난해 기재부 예타에 선정돼 용역이 진행 중이다. 사타에서 B/C가 0.7을 넘겼지만, 예타 결과 발표가 늦어지면서 사업 무산 소문까지 나돌았던 부울경 광역철도와 비슷한 길을 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문에 부울경 지자체와 정치권이 예타 통과를 위해 경제성 높이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양산시와 윤영석 국회의원도 이 철도를 이용해 울산에서 가덕신공항까지 가도록 노선 변경을 추진하고 있지만, 사실상 예타 통과는 녹록지 않다. 윤영석 의원은 동남권 광역철도 예타 면제 등을 포함한 ‘동남권 광역철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까지 발의했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김태호 국회의원이 최근 발의한 ‘국가재정법 개정법률안’이 주목을 끈다. 이 법안은 지방 균형발전을 위한 초광역권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대해 예타 때 ‘지역 균형발전 가중치’를 부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김 의원은 “국가균형발전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이며, 초광역권 SOC 사업은 그 핵심 열쇠”라며 “개정안을 통해 초광역 사업들이 균형발전과 정책적 가치에 따라 추진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원 역시 부울경 광역철도 예타 면제 등을 위한 특별법을 발의했지만, 국회를 넘지 못한 데다 개별 사안마다 예타 면제 등을 담은 특별법 발의도 쉽지 않은 만큼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국가재정법 개정’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부울경 지자체와 정치권은 협력을 통해 가덕신공항이나 부울경 광역철도 등의 국책사업을 끌어냈듯이 부울경 1시간 생활권 조성에 필수 인프라인 동남권 광역철도의 예타 통과 또는 면제, 김 의원의 ‘국가재정법 개정법률안’ 통과를 위해 다시 한번 총력전을 펴야 할 것이다. 어렵게 통과한 부울경 광역철도 조기 착공이나 예산 확보 등의 후속 절차도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대선 과정에서 전국을 5개 초광역권(극)과 3개의 특별권(특)으로 나눠 고른 성장을 유도하겠다는 ‘5극 3특’ 실현을 위해서 지역 공약을 반드시 정부 계획에 반영해 ‘구호’가 아닌 ‘실천하는 대통령’으로 기억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태권 동부경남울산본부장 ktg660@busan.com
[노트북 단상] 전쟁은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다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6일 캐나다에서 열린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서 계획보다 일찍 귀국한 뒤, 지난달 22일 이란 핵시설을 공격하기까지 1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펼쳐진 현실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중동 상황’을 이유로 캐나다에서 급거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이른 귀국은 이스라엘과 이란의 휴전 협상 때문”이라는 발언이 알려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더 큰 일이 있다”며 발끈했다. 그 뒤는 모두가 알게 됐듯, 트럼프 대통령은 B-2 폭격기를 동원해 이란 핵시설에 벙커버스터 폭탄을 투하하는 결정을 내렸다. 앞서 이스라엘은 핵 위협을 원천 차단한다는 이유로 이란을 선제공격했다. 이에 이란이 미사일과 드론을 동원해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최강 미사일 방공망 ‘아이언돔’을 무력화하면서 ‘확전’으로 나아가는 상황이었다. 이때 트럼프 대통령은 이례적인 결정을 내린다. 이란 핵시설 타격이다.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미국이 꺼려온 타국 전쟁에 개입하는 일이었다. 특히 벙커버스터 투하는 이스라엘이 미국에 꾸준히 요청해 온 사항이었는데,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 카드를 썼다. 이 모든 과정은 마치 엔터테인먼트처럼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벙커버스터가 이란 지하 핵시설에 떨어지는 영상은 현실인지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한 장면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벙커버스터 투하 결정 시점부터, B-2 폭격기가 미국 어디에서 벙커버스터를 싣고 출발해 어떤 과정으로 투하됐는지 자세하게 보도했다. B-2 폭격기에 탄 조종사 2명의 준비 과정을 전직 조종사 인터뷰를 통해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기사도 있었다. 우리나라 언론들도 외신 기사를 바탕으로 화려한 그래픽을 동원해 벙커버스터 투하 과정을 보도했다. 일련의 기사를 읽으면서 씁쓸함이 커졌다. 세부 정보를 자세히 알면 알수록 전쟁이 실제 사람이 죽고, 유족이 생기는 슬픈 일이 아니라 버튼 하나만 누르면 폭탄이 떨어지고 목표물이 파괴되는 엔터테인먼트 같아서 소름이 돋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는 드론 폭탄만 해도 현실이라기보다 게임 속 한 장면 같아서 위화감을 느꼈었는데, 그 감각이 되살아났다. 최근 아주 오랜만에 찾은 극장에서 본 ‘미션 임파서블’ 마지막 시리즈가 시시하게 느껴졌던 건 이런 현실 때문이지 싶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영화답게 톰 크루즈 특유의 맨몸 액션이 이번에도 등장했다. 톰 크루즈가 맨손으로 경비행기에 매달려도, 실제 미사일이 떨어지는 현실만큼 실감이 나지는 않았다. 전쟁은 엔터테인먼트가 아닌데 영화를 뛰어넘는 현실에 착잡해졌다. 가자 지구에서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13일(현지 시간)에도 단지 배급소에 물을 길으러 갔을 뿐인 팔레스타인 어린이 6명이 이스라엘의 미사일 공격으로 숨졌다. 이스라엘군은 미사일 오작동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미 스러진 목숨 앞에서 비겁한 변명으로 들린다. 전쟁은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다.
[중앙로365] 닫히는 청와대, 열리는 도모헌
2025년 8월, 청와대가 다시 문을 닫는다.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개방된 청와대는 3년 만에 다시 대통령 집무실로 복귀할 준비에 들어가는 것이다. 259억 원의 예산이 확보되었고, 14일부로 전체 개방이 종료되며 내달 1일부터는 일반 시민의 출입이 전면 중단된다. ‘국민에게 돌려준 청와대’는 다시 ‘권력의 중심’으로 회귀하는 셈이다. 이번 청와대 복귀는 단순한 공간 이동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권력과 시민의 거리, 정치와 공간의 관계, 관광과 정체성의 문제를 함께 안고 있는 중대한 전환이다. 윤석열 정부는 ‘탈권위’와 ‘소통’을 기치로 청와대를 개방했지만, 용산 대통령실은 업무 동선의 비효율, 보안 취약, 주민 불편 등의 문제를 노출했다. 이에 이재명 정부는 다시 청와대로 복귀하려 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권위의 상징’을 다시 열어둘 수 있느냐는 논의가 시작됐다. 대통령 집무 공간 회귀하는 청와대 서울 중심 정치 관광 콘텐츠의 퇴조 반면 부산시장 관사 작년 전면 개방 부산 콘텐츠가 주목받을 기회 부각 폐쇄와 개방 사이 공간 주인 물어야 도시 가치 담는 공간 구현 가능해져 청와대 개방은 상징적이면서도 실질적인 시민 참여의 경험이었다. 경복궁과 북악산을 잇는 도심 관광축의 핵심으로 기능했고, 하루 수만 명의 내외국인이 이곳을 방문하며 서울 관광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올랐다. 관광객들은 단지 사진을 찍는 것을 넘어, “대통령이 일하던 곳을 내가 걷고 있다”는 상징적 체험을 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전직 대통령의 집무 공간이나 관저를 박물관 혹은 관광지로 활용하는 사례는 많지만, 현직 대통령의 거주 및 집무 공간이 이렇게 전면적으로 개방된 사례는 매우 드물다. 이러한 전례 없는 개방은 서울 관광의 질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로 기록됐으나 이 공간은 다시 봉인된다. 봉인 후에는 보안 강화와 행정 효율성이 우선되며, 관람 기능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서울 도심 관광의 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청와대 개방이 가져온 시민 경험은 단절되고, 정치 공간의 폐쇄성은 부활할 가능성이 크다. 비슷한 시기, 부산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나고 있다. 한때 대통령 별장으로 사용되었고, 이후 부산시장 관사로 쓰이던 공간이 시민에게 전면 개방됐다. 광안대교 앞 황령산 자락에 위치한 이 공간은 지난해 리모델링을 마치고, ‘도모헌’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본관과 야외 정원, 공유 오피스, 시민 강연장, 카페 등으로 구성된 이 장소는 이제 더 이상 권력의 공간이 아니다. 시민의 회복과 소통, 창작과 휴식의 공간이다. 그동안 ‘지방 청와대’라 불리며 권위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곳이 문화예술과 여가, 휴식의 복합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청와대가 닫히고, 부산시장 별장이 열리는 이 장면은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한다. 지방도 권력의 공간을 시민의 공간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실천의 사례이자, 공공공간의 민주화를 상징하는 움직임이다. 그리고 이는 관광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부산은 이 공간을 단지 시민 편의시설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정체성과 관광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한때 대통령이 머물렀던 공간’, ‘지방 청와대’라는 역사적 스토리는 정치사와 문화관광을 결합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다. 여기에 피란수도 부산의 역사, 부마민주항쟁, 임시수도청사와 민주공원 등과 연계하면 정치·역사·시민성 중심의 스토리텔링 관광이 가능하다. 이는 단지 과거를 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도시 이미지와 시민 정체성을 함께 설계하는 일이기도 하다. 청와대 개방이 종료되면서 서울 중심의 정치 관광 콘텐츠는 자연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는 오히려 지방 도시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수도권 중심의 문화자원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지역 고유의 역사적·정치적 콘텐츠가 관광 시장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부산은 피란수도라는 유일무이한 정체성을 가진 도시이자, 산업화와 민주화의 상징이 혼재하는 곳이다. 이러한 복합적 역사성과 공간성을 어떻게 체계화하고 콘텐츠화하느냐에 따라 부산은 ‘열린 도시’, ‘시민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더욱 굳힐 수 있다. 이제는 공간을 단지 건물의 용도가 아니라, 기억의 장소, 체험의 현장, 민주주의의 물리적 구현 공간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청와대든 부산시장 별장이든, 더 이상 권력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라 시민과 소통하고, 도시의 가치를 담아내는 공간으로 나아가야 한다. 도시는 권력의 방식에 따라 닫히거나, 시민의 방식에 따라 열릴 수 있다. 부산이 선택한 ‘개방’의 방식은 단지 정치적 상징을 넘어서, 관광, 문화, 교육, 도시 브랜딩까지 연결되는 포괄적 가치 창출의 기회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공간의 주인이 누구인지, 그리고 공간을 통해 어떤 미래를 만들고 싶은지를 다시 물어야 할 때다. 청와대는 닫히지만, 부산은 열리고 있다. 그리고 그 열린 문은 시민을 위한 문이며, 미래를 향한 문이어야 할 것이다.
[편집국에서] 여가부 잔혹사를 끝내자
얼마 전 부산시립박물관에서 ‘큰별쌤’으로 유명한 최태성 역사 강사를 만났다. 최 강사는 광복 80주년 기획전이 진행 중인 부산 박물관에 특강하기 위해 찾았다. 박물관 대강당이 가득 찰 만큼 사람이 많이 왔고, 최 강사는 ‘그날을 만든 사람들-부산의 독립운동가’라는 제목의 강의를 할 예정이었다. 강당에 들어서니 대형 화면에 ‘위대한 사랑의 역사’라는 큰 글씨가 적힌 영상이 비치고 있다. 최 강사는 “오늘 저는 위대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라는 말로 강의를 시작했다. 알려지지 않은 부산의 독립운동 이야기를 한다고 들었는데 뜬금없이 무슨 사랑 타령인가 싶었다. 그런데 정말로 최 강사는 1시간 30분 동안 뜨거운 사랑 이야기를 전했다. 독립운동가들은 거사에 나가기 전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기록이다. 영화 ‘밀정’에서 이정재 배우는 독립운동가에서 친일파로 변절한 인물을 연기한다. 독립운동 동지가 변절의 이유를 묻자 “독립이 될 줄 몰랐다”라고 답한다. 실제로 당시 많은 지식인, 지도자가 독립은 포기하고 일제와 타협해 조금 더 편하게 사는 길을 찾자고 주장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독립운동가는 죽음을 각오하고 거사에 참여했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은 독립된 세상을 누릴 수 없다는 걸 이미 알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망설이지 않고 폭탄과 함께 뛰어들었고, 살아서 일제 경찰에 붙잡혀도 타협 없이 죽음을 택했다. 그 마음은 조국과 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었다. 후손들은 독립된 나라에서 자유롭게 살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앞서 싸운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사실 독립운동뿐만 아니라 현재 민주주의 역시 앞서 싸운 이들의 피와 땀으로 완성된 것이다. 최 강사의 이야기가 떠오른 건 여성가족부의 탄생 상황을 회상하다가 독립운동가들의 위대한 사랑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95년 부산일보에 입사해 처음 맡은 분야가 ‘여성·가족’이었다. 30년 전 ‘여성·가족’ 기사는 대체로 ‘슬기로운 주부 생활’에 관한 내용이었다. 가족 돌봄과 알뜰한 살림은 주부의 일이고, 그들의 희생과 봉사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것이었다. 같은 직종, 비슷한 경력에도 남성 직원이 여성보다 승진, 연봉에서 유리했던 차별 상황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결국 돌봄, 젠더 폭력, 차별 등을 전문적으로 고민하고 정책을 펼칠 독립 부처를 요구하게 되었다. 당시 인권 운동, 여성 운동, 시민 운동을 하는 이들이 모여 여성부 설립을 위해 국민 서명을 받았고 집회도 열었다. 정부 관계자를 만나 설득하기도 했다. 어려움이 많았고 몇 년의 시간이 걸렸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겠다며 선배들은 광장에서 몸과 마음을 다쳐 가며 싸웠다. 그렇게 2001년에야 여성부가 출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성부는 정권마다 위상이 크게 출렁였다. 남성 표심을 잡기 위해 ‘여가부 폐지’를 선거 공약으로 들고 나온 윤석열 정부 때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반대에 부딪혀 부서를 폐지하진 못했어도, 16개월째 장관을 공석으로 두며 여가부는 사실상 ‘식물 부서’로 전락했다. 그렇다고 윤 정부 3년간 남성의 삶은 더 나아졌는가. 그렇지도 않다. 청년층의 고립, 구조적 차별은 심해졌고 ‘남성다움’에 대한 사회적 압박도 여전히 크다. 모든 국민이 보는 대통령 후보 토론회에서 버젓이 여성 신체에 대한 성희롱 발언을 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그 후보를 국회의원에서 제명시키자는 청원이 60만 명을 넘을 정도로 많은 국민이 분노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후보가 그 발언이 성폭력이라는 걸 사전에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는 점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여성가족부를 확대 개편하겠다고 말했다. 성평등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된 문제이다. 성평등가족부로 확대해 차별과 혐오, 고립과 폭력을 걷어내고, 다양성과 돌봄, 공동체를 회복하는 국가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 국가 소멸 위기에서 출생은 한 가족의 문제를 넘어 사회가 돌봐야 할 일상의 단위라는 인식도 필요하다. 정권 변화에 따라 예산도 인원도 정책 방향마저 흔들리던 여가부 잔혹사는 이제 끝나야 한다. 다시 한 번 지극한 사랑을 바탕으로, 모든 국민이 공정과 평등을 누리는 세상을 열어 보자.
‘아프면 서울행’ 가속… 부산 환자 매일 156명 서울로
해수부 부산 이전 청사 새 단장 속도 낸다
청문회 위증 의혹까지 ‘사면초가’ 강선우, 1호 낙마?… 이틀째 청문도 여야 충돌
“귀국 도중 통한의 죽음… 역사에 새겨 기억하겠습니다”
해수부 유치 불발됐지만… BIFC 3단계 분양 박차
콘센트에 '붙이는 소화기'…"이젠 전기도 정기점검 해야"
“튀겨 먹으려고요”… 삼락생태공원서 매미 유충 채집하는 외국인 ‘생태계 훼손 논란’
부산시의회, 가덕신공항 포기 현대건설 공공 입찰 제한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