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호의 오픈 스페이스] 예술정책은 현장으로부터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독립 큐레이터

문체부 산하기관장에 퇴직 관료 임명
중앙에서 지방 하달식 지원 되풀이
현장 전문가·행정 협치해 정책 마련을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모든 것이 본래의 위치로 하나씩 제 자리를 찾고 민생경제가 회복되기를 모든 국민이 학수고대하고 있다. 우선, 미디어를 대하는 태도가 사뭇 달라진 점이 주목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한 달을 맞아 지난 3일 국민과의 소통을 위한 자리를 국내외 언론들과 함께했는데, 지역 풀뿌리 언론까지 참여시키는 세심함이 인상 깊었다. 작은 목소리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는 점에서 반가운 기조다.


지난달 한 중앙 일간지에 ‘국립문화공간재단 설립, 대표에 블랙리스트 징계받은 전 문체부 관료’라는 제하의 기사가 실렸다. 이는 곧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해 일파만파 퍼졌다. 내용인즉슨,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대선 사이 권력 공백기에 올해 3월 발표한 ‘문화 한국 2035’의 정책들이 무리하게 강행·추진되었고,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산하기관장 인사를 비밀리에 단행했다는 것이다. 국립문화공간재단과 여러 산하 기관 대표에 문체부 퇴직 관료 임명을 강행한 게 대표적 사례로 거론됐다. 보도 이후 새 정부 출범을 무시한 채 이권 장악을 시도한 것 아니냐는 문화예술계의 우려가 쏟아졌다.

문체부의 국정기획위원회 업무 보고도 도마 위에 올랐다. 윤석열 정부 시절 추진해 오던 ‘문화 한국 2035’ 정책을 구체적 계획 없이 새 정부의 ‘5대 문화강국 계획(2025~2029)으로 들이밀다 반려되었다. 언론에 보도되자 장관은 사의를 표명하였고 대통령은 이를 반려한 상황이다. 지금의 문체부는 혼수상태나 마찬가지이다.

지금 총리를 비롯해 각 부처에는 새로운 수장들이 속속 배치되고 있다. 필자는 지난 지면을 통해 6·3 대선 과정에서 문화예술 정책이 빠져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새 정부에서 문화예술 분야의 수장은 관료나 정치인이 아닌 현장 전문가가 배치되어야 한다. 최근 입방아에 오르는 문체부의 관료적 카르텔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새 장관에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대수술을 단행할 적임자가 와야 하는 것이다.

새 정부는 지난겨울 광장에 모였던 민주주의의 열망과 감성을 기억할 것이다. 그 대표적인 현장이 문화예술이었다. 시민사회가 중심이 되는 문화강국을 구현하기 위한 첫 번째 실천은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다. 예술가와의 거버넌스가 없는 관료적 행정은 십여 년간 중앙에서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하달식 정책과 지원 체계를 관성처럼 되풀이해 왔다. 예술가들은 여전히 작두 타듯 지원서로 매년 시간을 채워가고 있다. 예술 현장은 더욱 다양해지고 문화 소비자는 늘어나는데, 지원 이후의 실질적 성과는 순환 구조를 마련하지 못한 채 일회성 행사로 소멸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현장 전문가 그룹과 행정이 협치해서 지속 가능한 정책들을 재정비해야 할 때다. 지방소멸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예술 생태계마저 바닥을 치고 있으니 이를 다시 정비하는 일은 절실하고 필요하다.

새 정부가 목표하는 문화 민주주의를 통한 문화강국이 중앙에서 내려보내면 각 지자체와 문화재단들이 수행하는 방식으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시대착오적이다. K컬처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의 시선을 사로잡는 대한민국의 위상이 이전과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류 열풍만 가지고 문화 강국이라 이름 붙일 수 있을까? 물론 국가주의의 관점에서 위상은 높아졌지만, 문화산업과 문화 생태계는 구분해서 살펴봐야 한다. 기초예술에 대한 사회적 인식, 예술가들의 보편적인 창작 활동에 대한 지원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이를 담보해 주는 장치는 국가가 마련해야 하고, 이는 법으로 보장되어야 마땅하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최근 ‘예술인 기본소득’에 대한 대통령의 언급이 나왔다는 사실은 반갑다. 예술인 기본소득은 이미 해외 선진국에서는 실행 중인 사례이다. 우리나라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기본소득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하고, 이와 함께 ‘왜 예술인을 대상으로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예술을 바라보는 비예술인의 시선을 개선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긴 호흡을 갖고 지속 가능한 제도로 법제화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는 예술인복지법 제2조 제2호에서 예술인 고용보험 가입 대상자를 ‘예술 활동을 업으로 하여 국가를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풍요롭게 만드는 데 공헌하는 사람’으로서 문화예술 분야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고 있다.

다층적인 시각에서 지원 조건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예술인 증명이라는 시스템 외 예술가라는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다층적 제도를 반영해야 한다. 늘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진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다. 지금도 예술인들은 사회 어디에선가 숨도 못 쉬며 자신의 예술세계와 마주하고 하루하루를 버텨가고 있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