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경 칼럼] 이재명 대통령의 콘크리트 인사론
논설주간
역대 정권들 코드 인사로 폭망
‘고소영’ ‘캠코더’ ‘서오남’…
정치적 편향성 강화 경쟁력 추락
이재명 정부 초기 진용 구성 막바지
탕평책 통한 공존과 실용 강조 불구
수도권 편향 균형발전 우려 여전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통치 스타일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게 인사다. 대통령이 모든 국정 현안을 직접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널리 인재를 구하고 적재적소에 등용함으로써 자신의 국정 철학을 구현해야 한다. 그래서 인사가 만사다. 인사가 곧 메시지고 대통령은 인사를 통해 국민과 소통한다. 인사의 성패가 정권의 명운을 가르는 이유다.
유독 인사의 중요성을 강조한 인물이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대통령의 능력은 유능한 인재를 발탁해 국정 현안을 해결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보안에도 철저했다. 낙점한 인물도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면 단칼에 잘랐다. 이런 그의 인사 스타일을 상징하는 말이 “깜짝 놀랐제?”다. 취임 직후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군 수뇌부 인사를 전격 단행하며 했다는 말이다. 철저한 보안 속에 군내 사조직 ‘하나회’ 척결을 시작했고 문민정부 정체성을 그렇게 세상에 알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탕평 인사로 그의 집권에 대한 불안한 시선을 불식시켰다.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비서실장에 노태우 정부 인사였던 김중권 전 의원을 앉혔다. 경제부총리에 상대 캠프 전력의 이헌재 전 금융감독위원장을 중용해 외환 위기를 돌파했다. 훗날 이 전 부총리는 자서전에 “DJ는 나를 동지가 아니라 기술자로 발탁했다”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 YS와 DJ도 초심을 잃고 민주화 투쟁을 함께한 가신들을 능력과 무관하게 중용하다 화를 자초했다. DJ는 정권 말기 소위 ‘DJ 수첩’에 적혀 있는 사람만 대거 중용하면서 비선 라인 개입 논란에 시달렸다. 널리 인재를 구해야 하는데 측근과 비선의 유혹을 떨치지 못한 것이다.
참여정부에 이르면 아예 ‘코드 인사’가 상용어가 된다. 코드 인사는 정권의 정치적 편향성을 강화하고 다양성에 기반한 합리적 의사결정구조를 왜곡해 국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 역대 정권의 코드 인사를 둘러싼 조어들은 결국 정실 인사를 통해 어떻게 민심과 멀어졌는지 말해준다. 이명박 정부의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문재인 정부의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윤석열 정부의 ‘서오남’(서울대·50대·남성)이 대표적이다.
이재명 정부의 초기 진용이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대통령실 주요 인사는 마무리됐고 국무총리 임명을 포함해 국토교통부·문화체육관광부를 제외한 17개 부처 장관 인선이 마무리됐다. 민정수석의 낙마와 국무총리 부실 검증, 일부 장관 후보자의 의혹이 불거지고 있음에도 지금까지의 여론은 대체로 호의적이다.
전직 대통령의 추락과 국민의힘의 지리멸렬에 따른 반사 효과도 있겠지만 ‘실용’을 앞세운 이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에 연유하는 바가 적지 않다. 내각에 경험 많은 현직 의원을 포진시키고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을 노동부 장관에 앉히면서도 대기업 출신을 장관에 등용해 균형을 맞춘다. 외교 라인에도 ‘자주파’와 ‘동맹파’가 공존하고 법무부 장관과 민정수석 인사도 안정 속 개혁이라는 실리를 챙긴다.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서는 “국민 눈높이나 야당, 우리 지지층 안의 기대치에 좀 못미치는 측면도 있다”며 먼저 몸을 낮춘다. 그러면서 “색깔이 맞는, 즉 한쪽 편에 맞는 사람만 쓰면 좀 더 편안하고 속도도 나겠지만 같은 쪽 색깔만 쭉 쓰면 위험하다”면서 콘크리트 인사론을 꺼내 든다. 물과 모래 자갈 시멘트가 골고루 잘 섞여야 콘크리트가 더 단단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역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새 정부 진용이 콘크리트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수도권 정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경북 안동 출신이지만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은 수도권이다. 서울을 지역구로 둔 국무총리를 포함해 내각에 진입한 8명의 현역 의원 중 6명이 수도권이다. 대통령실 참모는 물론이고 여당 지도부도 수도권 일색이다.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전재수 의원이나 지방시대위원장을 맡은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정도가 부울경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새 정부 진용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커 보이지는 않는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수도권을 싹쓸이한 영향이 크겠지만 수도권 중심의 맨 파워로 균형발전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균형발전을 중요한 국정 과제로 여러 번 언급했지만, 경험이 사람 의식의 많은 부분을 결정하기 마련이다. 수도권 지옥철에서 인파에 부대끼며 지역 소멸을 체감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구조물을 부실하게 하는 것이 수도권 일극주의다. 사상누각이 무너지듯이 대한민국 미래를 위태롭게 하는 일이다. 인사에서부터 이런 고민이 담겨야 하지 않았을까.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