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신안 여객선 좌초… 해양 안전 불감증 도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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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사 운항 과실·항로 이탈이 주원인
느슨한 매뉴얼 등 구조적 허점 점검을

20일 오전 전남 신안군 장상면 인근 족도(무인도) 해상에서 퀸제누비아2호가 이초돼 있다. 퀸제누비아2호는 전날 족도에 좌초됐다가 신고 접수 6시간 만에 선사의 예인선으로 섬을 벗어났다. 승객 246명·승무원 21명 등 267명 전원 무사 구조됐으나 좌초 충격으로 일부가 경미한 통증을 호소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연합뉴스 20일 오전 전남 신안군 장상면 인근 족도(무인도) 해상에서 퀸제누비아2호가 이초돼 있다. 퀸제누비아2호는 전날 족도에 좌초됐다가 신고 접수 6시간 만에 선사의 예인선으로 섬을 벗어났다. 승객 246명·승무원 21명 등 267명 전원 무사 구조됐으나 좌초 충격으로 일부가 경미한 통증을 호소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연합뉴스

19일 저녁 전남 신안군 장산도 인근에서 발생한 대형 여객선 퀸제누비아2호 좌초 사고는 한국 해양 안전의 취약성을 다시 드러냈다. 20일 목표해양경찰서 등에 따르면, 해경 1차 조사 결과 수동으로 운항해야 하는 협수로 구간에서 항해사가 휴대전화를 보느라 수동 운항 대신 자동항법장치에 선박 조종을 맡겨 여객선과 무인도 간 충돌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자칫 대형 인명 사고로 이어질 뻔했으나 다행히 탑승객 267명 전원이 구조됐고 부상자 역시 대다수가 경상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사고 원인으로 드러난 운항 과실은 너무도 충격적이다. 기본조차 지켜지지 않은 채 안전이 방치됐기 때문이다. 2014년 세월호의 비극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사고가 발생한 신안군 장산도 인근 해상은 섬과 섬 사이를 통과해야 하는 협수로다. 이는 연안 여객선들이 빽빽하게 오가는 구간으로 자동항법보다 승무원의 주의 집중과 판단력이 요구되는 곳이다. 그런데도 항해사는 휴대전화로 뉴스를 검색하며 조타를 자동항법장치에 맡긴 채 방향 전환(변침) 시점을 놓쳤고, 선장 또한 조타실을 비운 정황이 확인됐다. 기본적인 조타 규칙조차 지켜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는 명백한 인재며, 해상 안전의 최전선에서 기본 의무를 저버린 중대한 직무 태만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수차례 강조된 ‘기본으로 돌아가기’가 말뿐이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안전관리 체계의 허점이다. 퀸제누비아2호는 2021년 취역 이후 인천∼제주 노선에서 엔진 결함 등 운항 장애를 여러 차례 겪은 바 있다. 이후 운영사가 바뀌고 목포∼제주로 이동했지만, 승무원 숙련도나 근무 체계, 비상 상황 대응 매뉴얼이 어느 수준까지 확보돼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초기 대응의 적절성도 따져봐야 한다. 선박 측 신고와 별도로 승객이 119 상황실에 먼저 연락한 사실은 사고 순간 승무원들의 대응 체계가 제대로 작동했는지 의문을 남긴다. 과거 해상 사고에서 초기 대응 지연이 참사를 불러왔음을 떠올리면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대목이다.

해경은 운항 과실이 확인된 만큼 관련자들을 형사처벌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관련자 처벌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협수로에서도 자동항법에 의존하는 관행, 항해사가 서슴없이 휴대전화를 볼 수 있는 근무 환경 등 구조적 허점이 있었는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선장의 조타실 이탈을 용인하는 분위기도 더는 방치할 수 없다. 전자기기 사용 규제 역시 재정비가 필요하다. 해상교통관제센터(VTS)의 관제 역량과 통보 체계에 빈틈은 없었는지도 함께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사고 이전의 철저한 예방이 해양 안전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여객선 운항에서 안전은 타협할 수 없는 원칙이다. 해상 교통이 국가 인프라로 자리 잡은 시대에 안전 불감증은 용납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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