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외교의 맛과 향, 황남빵과 오감차가 빚은 K브랜드
박철호 한국관광공사 부울경지사 선임차장
2025년 APEC 정상회의는 경북 경주와 부산을 세계 외교의 무대로 끌어올린 역사적인 행사였다. 그 기간 세계의 시선은 영남권으로 향했고, 예상치 못한 주인공들이 등장했다. 경주의 ‘황남빵’과 부산의 ‘비비비당 오감차’다. 하나는 맛으로, 하나는 향으로 외교의 순간을 완성한 ‘두 개의 K브랜드’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선물을 받은 뒤 ‘맛있다’라고 언급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황남빵은 순식간에 외교의 상징이 되었다. 짧은 한마디가 지역의 전통빵을 세계적 브랜드로 바꿔 놓았다. 그 이후 황남빵 본점엔 긴 줄이 이어졌고, SNS에서는 ‘정상빵’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전통의 맛이 외교의 언어가 된 순간이었다.
또 부산의 대표 찻집 브랜드 비비비당은 지난 7월 경주 힐튼호텔에 입점하며 APEC 정상회의의 향기를 더한 또 하나의 주인공이 되었다.
지난달 29일, 미국 대통령의 객실에는 비비비당 경주 힐튼점이 준비한 오감차(五感茶)가 웰컴 티로 올랐다. 그는 “향이 깊고 부드럽다”고 평했다. 짧은 멘트 하나가 다시 한 번 한국의 다도 문화를 세계의 뉴스로 만들었다. 부산에서 태어난 브랜드가 경주 무대에서 한국의 향을 전한 것이다. 비비비당은 이후 ‘트럼프 찻상 세트’를 출시해, 그 외교의 순간을 관광 상품으로 확장했다. 외교의 찻잔이 관광의 체험으로 재탄생한 셈이다.
10월 24일부터 11월 1일까지 경주에서 관광 프로그램 운영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면서, 현장에서 느낀 건 단 하나였다. 외교의 장면은 사라지지만, 그 기억은 관광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황리단길과 불국사, 경주엑스포공원에 이어 부산의 누리마루 APEC하우스, 김해공항 내 미·중 정상회담장 ‘나래마루’까지. 영남권 전체가 ‘외교의 기억을 품은 관광지도’가 되고 있다. 이 공간들을 하나의 APEC 외교 루트로 연계한다면 ‘기억의 회의장’은 ‘체험의 관광길’로 새롭게 살아날 수 있다. 행사 기간 약 25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통역·교통·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헌신했다. 그들의 참여와 시민들의 협력이 있었기에 이번 APEC은 단순한 정상회담이 아니라 ‘경북과 부산이 함께 만든 문화외교의 장’이 될 수 있었다.
외교의 순간이 시민의 손끝에서 완성되었고, 그 경험은 앞으로 지역 관광의 품격을 높이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황남빵과 오감차, 맛과 향으로 전한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전통의 현대화’다. 두 브랜드 모두 지역의 문화와 미학, 환대를 담아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재해석했다. 이는 부산과 경북이 함께 만들 수 있는 새로운 관광 협력의 모델이기도 하다.
‘APEC맛과 향 시리즈’ 같은 공동 브랜딩을 추진한다면 영남권은 ‘외교의 도시이자, 미각의 도시’로 세계에 각인될 것이다. 2025년 APEC은 경북의 외교 무대이자 부산의 환대 무대였다. 황남빵의 맛과 오감차의 향이 만난 이 여정은 이제 ‘영남 관광의 이야기’로 다시 쓰이고 있다. 기억을 유산으로, 유산을 미래로, 그 여정의 시작은 여전히 따뜻한 황남빵의 달콤함과 비비비당 오감차의 향기 속에서 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