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부 부산 시대’ 조선·해양플랜트까지 업무 넓혀야
커지는 ‘해수부 기능 강화’ 요구
“한진해운 파산 교훈 되새겨야”
조선·해운업계와 학계 등 주장
톱니바퀴처럼 긴밀한 두 산업
관련 사업 기반 부울경에 집중
하나의 정부 부처서 관할해야
“국제물류 산업도 관할” 목소리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을 계기로 조선·해운 업계와 학계에서 조선과 해운이 서로 톱니바퀴 물리듯 긴밀하게 엮인 산업이고, 단순한 제조업 관점으로 정책을 세워서는 안 될, 국가전략 산업인 만큼 하나의 정부 부처에서 관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요구는 관련 업계에서 더욱 강하다. 해운업계는 해수부가 부산 이전을 계기로 관할 업무 영역을 조선과 국제물류 등으로 넓혀 위상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한진해운 파산의 교훈을 새겨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8년 전 한진해운 파산 사례가 해수부 기능 강화 필요성을 증명한다는 의미다.
2010년대 정부는 조선산업을 키우기 위해 정책금융 투자를 늘렸다. 한진해운이나 현대상선도 선박 대형화 추세에 맞춰 큰 배를 새로 짓고 싶었지만 정책자금을 지원받을 조건에 못 미쳤다.
금융당국은 ‘IMF 사태’ 이후 장치산업에 가까운 해운업에도 제조업과 같은 ‘부채비율 200% 이하’ 잣대를 들이댔다. 2008년 이후 글로벌 경기 악화에 내몰린 국내 해운업계는 유동성 위기를 벗어나려고 우량 자산과 배를 내다파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생명선과도 같은 정책자금 수혜가 그림의 떡이었던 셈이다.
반면 혜택은 국적 선사와 경쟁하던 해외 선사들에게 돌아갔다. 해외 선사가 우리 금융기관의 저리 융자와 보증 지원을 받아 초대형 컨테이너선 수십 척을 지었다. 당시 국내 조선 3사는 대형 수주로 휘파람을 불었지만, 더 많은 화물을 더 적은 연료로 운송하는 해외 선사와의 경쟁에서 밀린 한진해운은 2017년 결국 파산에 이른다. 한진해운 파산은 ‘외눈박이’ 정부 정책이 다른 산업의 근간을 무너뜨린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된다.
반대로 일본은 1953년 ‘계획 조선 제도’를 시행해 해운산업 진흥과 선복량 확보를 위해 자국 선주에게 선박 건조 자금을 지원하면서 1980년대 해운, 조선, 조선기자재 등 관련 산업 전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섰다. 1990년대를 전후해 해운산업 전망과 수요에 대한 분석 없이 제조업 관점에서 과도한 구조조정을 하면서 전문 인력 양성 시스템이 무너지고 설계 기술자 이직 등으로 기술 전승의 맥이 끊겨 쇠락한 것이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한 나라 안에서 지은 배가 자국 해운과 물류 안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한진해운 파산의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수부 기능 강화는 국내 조선·해양플랜트와 기자재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지역 경제 활성화 모두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해수부가 부산 시대를 맞아 조선·해양플랜트 업무를 모두 관할해야 부울경에 거의 모든 기반을 둔 관련 산업이 본격적으로 발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울경은 국내 조선산업 사업체의 80%, 해양플랜트 사업체의 50% 이상이 모여 있는 산업 거점이다.
특히 부산에 오는 해수부가 이들 기능을 맡아야 현장 밀착형 신속 행정이 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해운 산업이 ‘탈탄소’ ‘디지털 전환’ 명제에 따라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고, 북극항로 상업 운항에 대비한 쇄빙·내빙 선박과 극지 운항 장비 수요에 발맞춰 관련 산업이 전환되고 있다는 점에서 해수부가 현장 행정에 더욱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국내 해운조선 산업 현재를 보면 해수부의 역할 강화는 더 필요해 보인다. 해수부에 따르면 기존 중유·경유 이외의 연료로 움직이는 친환경 선박 전환율이 지난해 기준 3.5% 수준에 그치고 있다. 관련 산업이 앞으로 갈 길이 멀다는 의미다.
윤병철 국가공무원노조 해수부지부장은 지난 21일 기자회견에서 “뱃값의 50%를 차지하는 항해 장비, 엔진 등의 고부가가치 기자재를 친환경·자율운항 등의 수요에 맞게 자체 개발·생산하는 체제로 전환해야 할 시기에 해수부가 부산으로 온다”며 “부울경을 국내 조선기자재 산업 전환의 전초기지로 만드는 전략 수립과 정책 실행의 주체는 해수부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물류 산업도 해수부가 관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지난해 연말 발간한 ‘국제물류기업 육성을 위한 법제 개선 방안 연구’ 보고서를 통해 해수부와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관세청, 농림축산식품부, 보건복지부 등에서 나눠 맡고 있는 물류 산업 기능 중 해상 운송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국제물류(99.7%)를 해수부가 관할하도록 조정하는 가칭 ‘국제물류기업 육성법’ 제정을 제안했다. 국토부가 맡는 국제물류주선업 등록·관리 권한을 해수부로 이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