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 떠는 산청군 "장마 다가오는데 나무는 다 타버렸고..."
화재 현장 아래 주택·농장 위치
나무·풀 등 전소…산사태 우려 ↑
장마 앞두고 걱정…복구 불투명
경남 산청군 지리산 자락을 휩쓸고 간 산불이 진화됐지만, 토양을 지탱하던 산중턱의 숲이 모조리 불에 타면서 산사태 위험이 커지고 있다.
특히 산청군의 경우 산 바로 아래에 주택과 농장 등이 밀집해 있어 대책이 시급하지만 당장 예산도, 인력도 지원되지 않아 주민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처지다.
6일 경남도와 산림청 등에 따르면 산청·하동 산불로 소실된 산림은 축구장 2600여 개 크기인 1858ha로 추정된다.
주불이 잡히면서 대다수 이재민은 집으로 돌아갔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여전히 불안감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들 이재민을 잠 못 들게 하는 건 산불이 아니라 산사태다.
이번 산불의 주요 피해 지역인 산청군 시천면과 삼장면은 산을 끼고 형성된 산촌이다. 주택 대부분이 경사지 아래 세워져 있고, 그 위로 산중턱에 과수원이나 농장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 산들은 주로 경사가 급하고 바위가 많아 ‘악산(험한 산)’으로 불린다.
그러나 그동안 경사가 급한 산중턱의 흙과 흙과 돌을 잡아주는 나무와 풀이 모두 불에 타버렸다. 그 아래 살고 있는 마을과 농장에서는 집중호우가 쏟아지면 산사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반쯤 불에 탄 나무가 아직 벌목되지 않고 그대로 산에 남겨져 있는데 이 역시도 부서지면서 민가나 농장을 덮칠 우려도 있다.
시천면에서 감 농사를 짓고 있는 이재순 씨는 “산불 이후 농장에 돌들이 많이 내려오고 있다. 산 중턱에 불이 나 흙이나 돌을 잡아주던 나무나 풀들이 모두 사라졌다. 지금 보면 흙과 바위만 보이는데 당장이라도 산사태가 날 것 같다. 불에 탄 나무도 부서질까 무섭다”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지난 2000년 동해안 산불 피해지를 대상으로 시계열적(일정 시간 간격으로 배치된 데이터) 토사량을 측정한 결과, 산불 발생 후 2년이 경과된 시점에서도 1275g/㎡ 이상 유출됐다. 이는 일반 산림에 비해 3~4배 높은 수치다.
실제 2001년부터 2020년까지 20년간 전국적으로 일어난 산사태는 1만 614건이었는데, 이 중 9.1%인 962건이 산불 피해 지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 걱정스러운 부분은 장마철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산사태는 지형적인 문제로 그냥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비로 인해 발생한다. 산불 피해 지역은 토양의 물리적 성질이 약해져 빗물이 흙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지표면으로 빠르게 흘러 많은 양의 흙을 쓸고 내려가게 된다.
죽은 나무뿌리가 토양을 붙잡고 있는 힘이 떨어진 상태에서 집중호우가 쏟아지면 더 쉽게 무너져 내리게 되는데, 대형산불 지역일수록 산사태에 더 취약한 이유다.
국립산림과학원 이기환 산사태연구과 박사는 “산불 이후 산사태 발생 가능성은 지형이나 강우량에 따라 2배에서 수백 배까지 변동 폭이 큰 편이다. 산불 현장이 악산이고 집중호우가 온다면 위험성이 높다. 현재 정부와 유관기관에서 피해 조사를 하고 있는데 이번 산불 피해 면적이 워낙 크다 보니까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최대한 빨리 산사태 대비에 나서야 하지만 당장 나무를 심기는 어렵다. 산불이 나면 땅속의 유기물까지 사라지기 때문에 심어봐야 나무가 죽거나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게다가 불탄 나무에 대한 벌채가 먼저 이뤄져야 하는데, 산청군은 빨라도 내년쯤에야 조림 사업이 시작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급한대로 나무를 대신해 사방 구조물이나 옹벽, 낙석 방지망 등을 설치해 산사태에 대비하지만 당장 예산 확보가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현재 한국치산기술협회에서 산사태 위험 지역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고, 이 조사가 끝나야 국비를 확보할 수 있다. 예산이 확보되더라도 이후 설계를 마치고 공사까지 진행되는데, 장마철 이전까지 공사를 마치는 건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산청군 관계자는 “산불 피해 지역은 곧바로 나무를 심기 힘들다. 2023년 대형 산불이 났던 합천군도 1년 후쯤 조림 사업이 이뤄졌다. 또한, 예산 사정이나 행정 절차가 있어서 우기 전에 사업이 시행될지 모르겠다. 일단 되는 대로 최대한 응급 복구를 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