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음악이 인간의 상처를 기억하는 방식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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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애도하는 음악>
제러미 아이클러 지음


신간 <애도하는 음악> 표지. 뮤진트리 제공 신간 <애도하는 음악> 표지. 뮤진트리 제공

‘음악이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이라는 부제가 붙은 <애도하는 음악>의 중심에는 네 명의 음악가가 있다. 쇼스타코비치, 쇤베르크, 슈트라우스, 브리튼이다. 역사학자이자 음악비평가인 제러미 아이클러는 고전에서 현대에 이르는 수백 년의 음악사를 가로지르며, 음악이 인간의 상처를 기억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저자는 단순한 음악 비평을 내놓는 대신 역사의 상흔과 인간의 감정, 예술의 윤리를 함께 풀어낸다.

‘예술은 인간의 비극을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쇼스타코비치는 침묵으로, 쇤베르크는 불협화음으로, 슈트라우스는 고전의 잔향으로, 브리튼은 화해의 합창으로 답한다.

소련 스탈린 체제 아래서 살아야 했던 쇼스타코비치는 예술이 감시와 공포 속에서도 어떻게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인물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쇤베르크는 불협화음과 12음 기법의 창시자로, 음악사의 혁명적 전환점을 만들었다. 히틀러의 유대인 탄압이 시작되면서 미국으로 망명했고, 그 경험은 음악 안에서 하나의 조성, 즉 질서가 무너지는 감각으로 표현된다. 슈트라우스는 나치 시대를 통과하며 복잡한 평가를 남긴 인물이다. 체제와 일정한 타협을 했지만, 인간 존엄과 예술의 순수성을 잃지 않으려 했다. 그의 후기 걸작 ‘메타모르포젠’은 나치 패망 직후 폐허가 된 독일 문화에 대한 애도이자 참회로 읽힌다. 영국 브리튼은 전쟁 세대를 대표하는 평화주의자다. 그의 대표작 ‘전쟁 레퀴엠’은 죽은 자와 산 자, 적과 아군이 함께 부르는 화해의 합창이다. 제러미 아이클러 지음·장호연 옮김/뮤진트리/492쪽/2만 9000원.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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