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판사 그만두고 이야기꾼으로 살기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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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살 결심/문유석

저자를 알게 된 건 2018년에 방송된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였다. 의사, 판사 등 전문직 종사자가 소설, 시 같은 문학 작품을 쓰는 건 이전에도 여러 사례가 있어 특이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유석 판사는 자신이 출간한 소설이 드라마가 될 때 대본을 직접 쓰고 심지어 감독과 긴밀하게 교감하며 드라마 제작까지 돕는다는 걸 알고 나서 이건 확실히 차별화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현실적인 이유로 이야기꾼의 꿈을 포기하고 법관이 된다. 역설적이게도 법관의 삶이 작가의 길을 열어준다. 판사는 이 사회 구석구석의 수많은 ‘진짜 이야기’를 들여다보며 치밀하게 고민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저자 스스로 “세상에는 내가 상상조차 못한 끔찍한 빈곤과 폭력이 가득했다. 여러 날 잠 못 이루며 유무죄를 고민할 때는 정말이지 수명이 줄어드는 것 같았다”라고 토로한다.

평생 글 쓰는 판사로 사는 것이 소망이었지만, 저자는 결국 2020년 23년간의 법관 생활을 마무리한다. 2018년 양승태 사법부가 작성한 블랙리스트에 자신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고, 사법농단에 관한 보도를 연일 접하며 자신이 사랑했던 법원에서 일어난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법복을 벗고 프리랜서 작가로 전업하며 두 번째 삶을 시작했다. 이 책은 새 삶에서 당면한 시행착오와 고민을 풀어놓는다. 재테크, 건강 관리, 시간 관리 같은 일상적 문제에서 드라마작가라는 직업인으로서의 성장, 우리 삶의 바탕을 이루는 법과 민주주의의 작동까지 여러 영역을 넘나든다. ‘두 번째 삶은 첫 번째 삶에 충실할 때만이 도래한다’라는 저자의 결론은 정직한 깨달음인 것 같다. 문유석 지음/문학동네/244쪽/1만 7500원.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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