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국정감사, 실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김소연 법무법인 예주 대표변호사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올해 국회 국정감사가 막을 내렸다. 헌법과 국회법이 보장한 이 제도는 행정부를 감시하고 국민의 세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를 점검하기 위한, 입법부의 가장 본질적인 권한이다. 국정감사에 무슨 큰 기대를 거냐고 냉소적일지 모르지만, 돌이켜보면 국정감사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는 성과를 만들어낸 적도 있었다. 4대강 사업의 예산 낭비, 공공기관 채용 비리, 가습기 살균제 사건, LH 직원의 내부 정보 이용 문제 등은 국감 질의를 통해 세상에 드러났고, 이후 제도 개선으로 이어졌다. 국감이 본래 취지대로 작동했을 때, 국가의 부패를 막고 행정을 바로 세우는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올해 국정감사는 그 의미를 잃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시민단체 국정감사 NGO 모니터단은 이번 국감을 두고 “역대 최악의 권력분립 파괴 국감”이라며 F학점을 매겼다. 재작년 C, 지난해 D학점에서 올해는 한 단계 더 떨어진 셈이다. 이는 단순한 평가 절하가 아니라, 해마다 악화되는 국감의 자화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국감 첫날부터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부적절한 질의와 조롱성 발언이 오간 장면이 논란이 되었고, 여야 의원들은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의 출석 문제를 놓고 막말을 주고받았다. 심지어 최민희 위원장이 자녀 결혼식을 국회에서 올리고 축의금을 받은 일이 쟁점으로 떠오르며, 국감장은 정책 논의보다 사생활 논란으로 가득 찼다. 한 언론은 이번 국감을 “강성 지지층에게 잘 보이기 위한 ‘유튜브 쇼츠용 국감’”이라 표현했다. 짧고 자극적인 장면만 남기려는 ‘보여주기식 질의’가 국민의 피로를 키운 것이다. 이런 장면들은 국감이 왜 국민에게서 멀어졌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정책 검증보다는 여야의 공방이 중심이 되고, 질의는 정치의 언어로 채워졌다. 행정부를 감시하는 자리가 오히려 정쟁의 무대로 전락한 것이다.
행정 감시는 가장 본질적인 국회 권한
하지만 정책 논의 실종 정쟁 무대 전락
시민단체 "역대 최악" F학점 평가 내려
'보여주기' 아닌 책임 있는 검증 아쉬워
현장 잘 아는 실무자 목소리 담아내고
질의 초점을 민생 중심으로 재편하길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눈길을 끄는 장면이 있었다. 지난달 국감장에서 안미현 검사는 이렇게 말했다. “보완수사권이 전면 박탈돼 부작용이 생기면, 책임을 지셔야 할 분들은 무리하게 입법하신 분들입니다.” 이 한마디는 정치적 발언이 아니라, 현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실무자의 절박한 외침이었다. 그는 법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제도의 변화가 어떤 공백을 만드는지를 직접 목격해온 사람이다. 국감이 국민의 삶을 위한 제도라면, 바로 이러한 실무자의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 실무자의 의견을 배제한 입법은 결국 국민에게 불편과 피해를 전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행히 일부 상임위에서는 실질적 논의도 있었다. 불법 사금융에 노출된 청년 실태 조명, 선거관리위원회의 보안 문제, 공공기관의 정보보호 인력 부족, 지역재정의 불균형과 비효율적 집행 등 구체적 현안이 질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질의는 상대 공격을 위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행정의 문제를 바로잡는 건설적 논의였다. 국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바로 이런 모습이다. 정쟁 대신 실무와 정책 중심의 질의, ‘감정’ 대신 책임 있는 ‘검증’으로 채워질 때 국감은 제 기능을 되찾을 수 있다. 국감이 국민에게 의미 있는 제도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실무자는 단순한 증인이 아니라, 제도의 작동을 증언하는 전문가로 존중받아야 한다. 입법가와 실무자가 함께 문제를 논의하고 제도의 허점을 진단할 때, 비로소 국민이 체감하는 개선이 가능하다.
또한 질의의 초점을 민생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도 시급하다. 국민이 체감하는 물가, 복지, 안전, 교육, 지역 경제의 문제는 국감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국민들이 질의와 답변 과정을 보고, ‘누가 이겼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개선할 것인가’로 평가받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국감은 ‘끝나는 행사’가 아니라 ‘시작점’이어야 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감사 결과가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큰 논의도 공허하다. 후속 관리 체계를 강화하고, 국회는 국감 이후 기관의 개선 보고를 의무화하며 이행 여부를 점검해야 한다.
무엇보다 책임 있는 입법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입법은 권한이 아니라 책임이다. 법이 국민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지 못한 채 만들어진 입법은, 선명한 구호로 포장되더라도 결국 부작용을 낳는다. 입법자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그 법이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니라, 입법이 현장의 경고에 귀 기울이며, 실무자가 두려움 없이 소신을 밝힐 때 국감은 비로소 제 이름을 되찾을 것이다. 실무자의 외침이 정쟁의 소음에 묻히지 않고, 책임 있는 입법과 실효적 감사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다시 신뢰할 수 있는 ‘국민을 위한, 국민을 향한 국정감사’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