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END론' 꺼낸 이 대통령…북핵 용인 딜레마는 여전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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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 유엔총회 기조연설
END…교류·정상화·비핵화 3축 제시
"END 이니셔티브로 한반도 냉전 끝내야"
'민주 대한민국 복귀' 천명
"새로운 대한민국 국제사회 복귀"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 뉴욕에서 열린 UN(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신 대북 정책으로 ‘END 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교류를 시작으로 관계 정상화에서 비핵화까지 세 단계에 걸친 대북 정책으로 한반도 평화를 이끌겠다는 계획이다. 비핵화를 완강히 거부하는 북한에 맞춘 현실적인 접근법이라는 평가 한편으로, 교류와 관계 정상화 과정에서 북핵을 용인하는 그림이 그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 대통령은 23일(현지 시간)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한반도 평화 구상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END’를 중심으로 한반도에서의 적대와 대결의 시대를 종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류, 관계 정상화, 비핵화 3가지 단계로 한반도 대결 구도를 종식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 첫 단계인 ‘교류’(Exchange)에 대해서 “교류와 협력이 평화의 지름길이라는 것은 굴곡진 남북 관계의 역사가 증명한 불변의 교훈”이라며 “교류 협력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지속가능한 평화의 길을 열겠다”고 내세웠다. 이어 두 번째 관계 정상화 단계(관계 정상화·Normalization)에 대해선 “남북의 관계 발전을 추가하면서 북미 사이를 비롯한 (북한과) 국제사회의 관계 정상화 노력도 지지하고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남북은 물론, 북미 간 대화를 이끌면서 유화적인 관계를 조성하겠다는 의미이다.

이 대통령은 END의 마지막 ‘비핵화’(Denuclearization)에 대해서는 “엄중한 과제임이 틀림없지만, 단기간에 해결되기는 어렵다는 냉철한 인식의 기초 위에 현실적으로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고 짚었다. 이 대통령은 북핵 축소 과정을 거쳐 폐기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대한 중단부터 시작해 축소의 과정을 거쳐 폐기에 도달하는 실용적·단계적 해법에 국제사회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며 앞서 제안한 ‘3단계 비핵화론’을 재차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은 없을 것’이라고 거듭 밝혔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상대의 체제를 존중하고 어떤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적대행위도 할 뜻이 없음을 다시 분명히 밝힌다”며 “이 세 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우선 남북 간 불필요한 군사적 긴장과 적대 행위의 악순환을 끊어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같은 END 구상에 대해 “교류·관계 정상화·비핵화 세 요소가 서로 추동하는 구조이며 우선순위나 선후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END 이니셔티브는 비핵화를 포함해 남북관계 전반을 다루는 접근”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같은 END 이니셔티브 구상을 내놓기까지 여러 안을 놓고 고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가 단기간 해결이 쉽지 않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단계적 실천 방안을 구상하다가 이같은 END를 결과물로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END는 사실 시작 단계인 ‘교류’부터 쉽지 않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를 어기지 않으면서 북한과 할 수 있는 교류는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최근 “우리는 한국과 마주 앉을 일이 없으며 그 무엇도 함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특히 비핵화에 앞서 남북, 북미 교류나 관계 정상화(수교)가 맺어지면 이는 한국과 미국 정부가 자칫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비핵화가 수반돼야 제재 완화를 거쳐 제대로 된 교류가 이뤄질 수 있지만, 교류를 시작점으로 비핵화가 마지막 단계로 설정된 것이다. 정부가 교류를 시작으로 관계 정상화, 비핵화에 도달하는 안을 제시한 만큼, 향후 정부의 대북 메시지나 정책에 어떤 변화가 이뤄질지 관심을 모은다. 위 실장은 ‘관계 정상화 추진이 북한을 별개의 국가로 인정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에 “(남북) 두 국가론을 지지하거나 인정하는 입장에 있지 않다”며 이를 일축했다. 위 실장은 한미 관세 후속 협상에 대해선 “우리(한국 정부) 입장이 무리한 게 아니기 때문에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새로운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 완전히 복귀했음을 당당히 선언한다”고 밝혔다. ‘민주 대한민국’의 복귀를 천명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지난 겨울, 내란의 어둠에 맞서 대한민국 국민은 ‘빛의 혁명’을 이뤄냈다”며 “친위쿠데타로도 민주주의와 평화를 염원하는 대한국민의 강렬한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유엔 정신의 빛나는 성취를 보여준 역사적 현장이기도 했다. 대한민국이 보여준 놀라운 회복력과 민주주의의 저력은 대한민국의 것인 동시에 전 세계의 것”이라며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향한 여정을 함께할 모든 이에게 ‘빛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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