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안개달'에 다시 보는 모네의 루앙 대성당 연작과 니체의 관점주의
모네, 안개속의 루앙대성당, 1894. 폴크방 미술관, 독일 에센.
11월 초, 한국뿐 아니라 프랑스에도 안개가 피어오르는 계절이다. 프랑스 혁명력에서 브뤼메르(Brumaire)는 ‘안개달’을 말하는데, 현재의 그레고리력으로 10월 22일부터 11월 20일경에 해당한다. 아침의 차가운 공기와 밤사이 응결된 습기는 도시와 들판 위로 옅거나 짙은 안개를 드리운다. 사물은 또렷한 윤곽을 잃고, 빛과 그림자는 흐릿한 장막 속에서 서로 스며든다. 이때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는 고정된 실체라기보다는, 순간마다 다른 얼굴을 드러내는 다층적인 장면이다.
프랑스 노르망디의 루앙 역시 이 계절이면 강변을 따라 자욱한 안개가 피어오른다. 모네가 루앙 대성당을 수십 차례 반복해 그렸던 것도, 바로 이런 시간과 날씨, 빛의 변화가 건물의 표정을 끊임없이 바꾸었기 때문이다. 같은 대성당이지만, 아침과 저녁, 맑은 날과 흐린 날, 해가 비치는 순간과 안개가 덮인 순간은 전혀 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
니체는 말한다. 세상에 단 하나의 절대적이며 본질적인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에 따르면, 우리의 관점을 벗어나면 어떠한 단일한 물리적 실재도 존재도 없다. 오직 해석하는 다양한 관점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것이 니체의 ‘관점주의’다. 물론 니체가 프랑스 예술, 특히 문학(몰리에르, 라신), 음악(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을 높이 평가했음에도 모네가 니체를 직접 읽었거나 사상적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는 없다. 또한 니체가 프랑스 회화를 직접 접한 시기는 인상파가 막 부상하던 시기였기에 니체가 인상파 미술가들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한 사례 역시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모네의 대성당 연작은 니체의 관점주의를 시각적으로 증언한다.
전통적인 본질주의자라면 루앙 대성당이라는 거대한 석조 건물은 우리 눈에 비치는 주관적 인상과 무관하게 그 배후에 변치 않는 본질적 실체로서 존재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언제나 빛과 안개, 시간의 층위가 얽힌 하나의 ‘해석’일 뿐이다.
소설가 모파상은 모네를 가리켜 “특정한 때와 장소에서 순간순간 변하는 빛과 색의 조화를 한꺼번에 다섯 개의 캔버스 위에 포착하는 포수”였다고 말한다. 모네가 그린 30장의 ‘루앙 대성당’ 정면 그림은 형태적으로는 거의 같아 보이지만, 아침 무렵, 햇빛이 가장 강렬한 정오, 해 질 녘, 밝은 날과 흐린 날, 눈·비가 내릴 때, 안개가 낄 때의 빛과 색상은 항상 달랐다. 바로 그 차이가 대성당의 실체라기보다는 관점들의 집합이 세계를 구성한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단일한 목소리나 절대적 진리보다 서로 다른 관점들이 빚어내는 다양성, 이것이 현대 사회가 지켜야 할 미학적이자 민주적 가치가 아닐까? 미술평론가·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