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국가론’ 들고 나온 정부… 국힘 “헌법 부정하며 북한 편 드나”
정동영 통일 장관 “현실적,실용적 관점에서 두 국가 인정해야”
이 대통령 ‘END 구상’ 뒷받침, 북미 대화 견인 의도로 풀이
그러나 북핵 용인, 분단 고착화하는 결과 초래 우려 적잖아
국힘 “북한 편 드는 순진한 꿈…통일 지향하는 우리 헌법 부정”
통일부를 중심으로 현 정부 내에서 남북은 ‘두 국가’라는 점을 현실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23년 12월 말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면서 촉발된 ‘두 국가론’은 문재인 정부 당시에도 논란이 된 바 있다. 정부 일각의 이런 움직임은 남북 대화와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북측의 호응을 끌어내려는 포석으로 풀이되지만, ‘통일을 지향한다’는 우리 헌법을 부정하는 동시에 분단을 고착화할 것이라는 지적 또한 거세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언론 간담회에서 “(남북은) 사실상의 두 국가, 이미 두 국가, 국제법적 두 국가”라면서 “적게는 50∼60% 국민이 북한을 국가라고 답한다. 국민 다수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두 국가라는 것,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하는 것이 영구분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현실적, 실용적 관점이고 유연하게 남북관계를 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으로 개성공단 안착 등 남북 대화 국면을 주도했던 정 장관은 현 정부 통일부 장관으로 컴백한 직후부터 남북 대화 재개를 위한 다각도의 대북 유화책을 제시하고 있다. 두 국가론 역시 최근 적대적 두 국가론을 바탕으로 ‘통일은 없다’는 북한 김 위원장의 주장에 일견 호응하는 모양새이기도 하다.
앞서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해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두 국가론을 언급하면서 “(남북이) 그냥 따로, 함께 살며 서로 존중하고 같이 행복하면 좋지 않을까”라는 입장을 냈으나,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헌법에 위배된다”며 당론이 아니라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정 장관이 이런 논란을 무릅쓰고 두 국가론을 적극 제시하고 나선 배경은 최근 북한의 움직임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 정부의 대화 재개 요구에 일체 불응하고 있는 북한은 최근 비핵화 논의 배제를 전제로 북미 대화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이에 여권 내에서는 10월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북미 정상 간 판문점 회동이 재연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표출되기도 했다. 정 장관이 북측의 두 국가론에 호응하는 모습으로 이 대통령의 ‘END 이니셔티브’를 뒷받침하면서 북한의 대화 움직임을 추동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라는 해석이다.
정 장관은 “대통령이 밝힌, 대화와 교류를 어떻게 복원하느냐, 그리고 오래된 꿈인 4강의 교차 승인을 완성해 북미수교, 북일수교를 만들어 내느냐가 우리 앞의 실천적 과제”라면서 “제재를 통해 북핵을 포기한다? 가능성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북핵 문제 해결의 돌파구는 ‘북미 정상회담’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두 국가론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정부 내에서도 혼선이 감지된다. 앞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23일(현지 시간) 뉴욕 간담회에서 “정부는 두 국가론을 지지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외교안보부처의 고위당국자 두 명이 ‘두 국가론’에 대해 엇갈린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야당은 두 국가론에 기반한 이 대통령의 END 이니셔티브에 대해 “북한의 편을 드는 끝없이 순진한 꿈”이라고 맹비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이날 대전시당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북 제재 공조에 함께 힘을 모으는 동맹국들 앞에서 사실상 북한의 두 국가론을 편들었다”며 “자유민주적 질서에 입각한 평화 통일을 실현해야 할 책무가 있는 대통령이 우리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도 이날 “이 대통령은 END를 교류·정상화·비핵화라고 설명했지만, 햇볕정책, 평화번영정책으로 이미 두 번 좌절한 환상을 세 번째 꾸겠다는 것”이라며 “END 이니셔티브는 대한민국 안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김천식 통일연구원장은 지난 19일 열린 통일 관련 학술행사에서 “적대적이든 평화적이든 두 국가론은 한 민족을 영구 분단시킨다”며 “북한이 남북 특수관계를 부정하고 ‘적대적 두 국가론’으로 변경했다고 해서 우리까지 ‘두 국가론’으로 변경하는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언급했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