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합리성" 내세웠지만 ‘통화 스와프’도 교착 상태
이 대통령 직접 나서 베선트 장관 대면
'통화 스와프' 내세우며 협상 합리성 강조
베선트 "내부 협의" 통화 스와프 관련 입장 피해
김민석 "비자·스와프 해결 없인 투자 어렵다" 발언
국민의힘 "관세 문제 책임자인 총리가 미국 협박"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을 만나 한미 간 ‘통화 스와프’ 체결을 거듭 강조했다. 베선트 장관의 카운트파트너는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지만, 한미 관세 협상이 평행선을 달리자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것이다. 한미 통화 스와프와 관련해 베선트 장관은 “부처와 협의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이 대통령이 확답을 받지 못하면서 관세 협상에 난관이 여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24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 베선트 미 재무장관을 만나 관세 협상에 대해 ‘합리성’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에 대해 “상업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양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전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미국과 일본의 합의가 있었지만, 한국은 경제 규모나 외환시장 인프라 등에서 일본과 다르다. 이런 측면을 고려해 협상이 잘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이 앞서 미국에 통화 스와프 체결을 요청했지만, 현재까지 진전이 없자 이 대통령이 통화 스와프 체결 필요성을 재차 언급한 것으로 해석된다.
베선트 장관은 이에 “이 대통령의 말을 충분히 경청했고 이후 내부에서도 충분히 논의하겠다”고 답했다. ‘충분히 논의하겠다’는 답변에 의미가 있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관세 후속 협상이 평행선을 달리고 그간 통화 스와프 체결에 대한 미국 측 입장도 나오지 않는 상태다.
이같은 상황에서 미국은 국제통화기금(IMF) 지원을 받고 있는 아르헨티나에 200억 달러(약 28조 원) 규모의 통화 스와프를 약속했다. 한국 정부의 통화 스와프 요청에 소극적인 트럼프 행정부가 아르헨티나 정부엔 오히려 먼저 제안을 한 셈이다.
대통령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이날 현지 브리핑에서 한미 통화 스와프와 관련해 “무제한 통화 스와프가 된다고 해서 자동으로 (협상이) 다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고등학교 수학 용어로 설명해보자면 무제한 통화 스와프는 필요조건”이라고 부연했다. 통화 스와프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체결되더라도 이후 추가로 논의를 거쳐야 할 과정들이 있다는 의미다.
김 실장은 이 대통령이 최근 외신 인터뷰에서 ‘외환위기’까지 거론하며 통화 스와프가 필요하다고 밝힌 것을 언급하며 “그게 안 되면 충격이 너무 크다. 해결되지 않으면 도저히 다음으로 나가지 못하는 필요조건”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것이 해결된다고 해서 당연히 미국이 요구하는 ‘에쿼티’(자기자본) 형태로 3500억 달러 투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충분조건도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까지의 협상 상황에 대해서는 “상업적 합리성에 맞고, 우리가 감내 가능하고 국익에 부합하며 상호 호혜적인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협상 중”이라며 “시한 때문에 그런 원칙을 희생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미 관세 후속 협상이 여전히 가시밭길인 가운데, 여권에선 강경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당장 김민석 국무총리는 미국과 비자 문제, 통화 스와프 협정 합의가 어렵다면 대미투자가 어려울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김 총리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비자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미국 투자는 불확실성에 놓일 수밖에 없다”며 한미 통화 스와프 문제에 대해서도 “한미 간 합의된 투자 규모가 한국 외환보유액의 70%를 웃돈다,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 협정이 없다면 한국 경제가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비자 문제와 통화 스와프 체결 없이는 대미 투자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미이다.
국회에선 더불어민주당 등 5당이 ‘미국의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요구 철회’ 회견을 열기도 했다. 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사회민주당, 기본소득당 일부 의원이 참여한 회견에서 이들은 미국의 투자 강요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국민의힘은 평행선을 달리는 정부의 한미 관세 협상을 비판했다. 특히 김 총리의 인터뷰 발언을 강하게 지적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이날 “관세 문제를 외교로 풀어야 할 책임자인 국무총리가 미국을 향해서 협박하고 있다”며 “관세 협상이 제대로 되지 않자 반미 선동으로 태세를 전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대한민국 정부가 한미 관계에서 신뢰를 회복하고, 어떻게 이 문제를 풀고 관세 협상을 마무리 지을지 고민해야 할 때에 국무총리가 이런 무책임한 발언한 것에 대해서 온 국민은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대통령은 더 이상 보여주기식 외교와 위험한 착각으로 국민을 기만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