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 이민 단속’ vs ‘투자 유치’ 딜레마… 엄격한 美 비자정책 바뀔까
트럼프 "인재 합법적 입국 가능케"
'불체자 추방' 역풍 우려한 모습
고질 문제 '비자 쿼터' 풀릴지 주목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HL-GA)의 한국인 체류자 대규모 단속 사태와 관련해 미국 정부의 후속 조치에 관심이 쏠린다. 내국인 일자리 확보를 위해 불법 체류 근로자에 ‘철퇴’를 가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초강경 이민정책 기조와 ‘관세 전쟁’을 지렛대로 외국 기업의 미국 투자를 유도하는 전략이 이번 일을 계기로 충돌하는 모순이 드러난 까닭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엄격한 비자 정책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8일(현지 시간) 주요 외신에 따르면, 강경 일변도로 유지해 온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은 이번 단속 사건 이후 나온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통해 변화 기류가 감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토안보수사국(HSI)의 HL-GA 합동 단속 결과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그들은 불법 체류자(illegal aliens)였고, ICE는 자기 할 일을 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불과 이틀이 흐른 뒤인 지난 7일에는 “우리는 한국과 매우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며 이번 일로 한미 관계가 긴장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던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트루스소셜에 다시 글을 올려 “그것(인재를 데려오는 일)을 신속하고, 합법적으로 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투자하고 있는 모든 외국 기업에 우리나라 이민법을 존중해줄 것을 촉구한다”는 전제를 밝혔지만 이번과 같은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안을 모색하겠다는 뉘앙스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그들(한국)이 말한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검토해보겠다”면서 “우리는 함께 우리나라를 생산적으로 만드는 것뿐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사건을 통해 그동안 큰 문제가 없거나 당연하다고 여겼던 미국 취업비자 정책과 불법 체류자 단속의 제도적 상충을 인지하게 됐다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한국 기업들의 경우 조지아주를 비롯해 미국 각지에서 생산 시설을 확충하고 있지만, 여기에 필요한 전문 인력의 수급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합법적 취업 비자(H1B 비자)의 쿼터가 제한적이고, 절차가 까다롭다 보니 비자 면제 프로그램의 일종인 ESTA(전자여행허가제)나 상용·관광 비자인 B1·B2 비자로 우회하는 ‘편법’이 만연했다.
한국 내에서 역대 정부가 비자 정책 개선에 소홀했고 기업들도 관행적으로 대응해왔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과 별개로, 미국 입장에서도 외국 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독려하는 와중에 전문 기술자의 취업 비자마저 제한하는 데서 빚어진 모순적 결과를 받아들이게 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훌륭한 기술적 재능을 지닌 매우 똑똑한 인재를 합법적으로 데려와 세계적 수준의 제품을 생산하길 권장한다”면서 “(그들이) 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훈련해달라”고 부탁했다. 한국에 쿼터를 배정하지 않은 취업 비자 중 일정 부분을 숙련 기술자 및 현지인 교육 등의 조건으로 허용할 가능성이 읽히는 부분이다.
단일 현장에서 역대 최대 규모로 꼽힌 이번 단속에서 구금된 약 300명에 달하는 한국인들의 석방 교섭이 조기에 실마리를 찾게 된 배경 역시 트럼프 행정부의 이같은 상황 인식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한국인 기술자·근로자들의 체류 신분 문제를 풀지 않으면 한국뿐 아니라 다른 외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를 독려하기 어렵고, 미국 내 숙련 노동자 인력난을 타개하려면 취업 비자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트럼프 행정부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