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년 만에 고개 숙인 검찰…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 최말자 씨 ‘무죄 구형’ (종합)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부산지법, 23일 오전 공판기일 열어
검찰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 줘”
최 씨 변호인 “법원·검찰·변호인 잘못”

“대한민국 국민 덕분”이라 밝힌 최 씨
검찰 사과에 “대한민국 정의 살아있어”
법원, 9월에 사실상 무죄 선고할 듯

61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최말자 씨가 23일 오전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 첫 공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며 손을 치켜들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61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최말자 씨가 23일 오전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 첫 공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며 손을 치켜들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61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 혐의 유죄 판결을 받았던 최말자 씨가 23일 오전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 첫 공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며 팔을 들어 하트를 하며 인사하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61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 혐의 유죄 판결을 받았던 최말자 씨가 23일 오전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 첫 공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며 팔을 들어 하트를 하며 인사하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60여 년 전 성폭행범 혀를 깨물어 징역형을 선고받은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 당사자인 최말자(79) 씨 재심 공판에서 검찰이 무죄를 구형했다. 검찰은 “범죄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접근했다.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줬다”며 최 씨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법원은 60년 만에 같은 사건으로 선고를 받을 최 씨에게 무죄 판결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지법 형사5부(김현순 부장판사)는 중상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최 씨 사건 재심 첫 공판기일을 23일 열었다. 지난 5~6월 열린 두 차례 공판준비기일에 나오지 않았던 최 씨는 이날 법정에 직접 출석했다. 재판부는 증거 조사를 간략히 진행했고, 검찰은 피고인 신문을 생략했다.

61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 혐의 유죄 판결을 받았던 최말자 씨가 23일 오전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 첫 공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며 손을 치켜들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61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 혐의 유죄 판결을 받았던 최말자 씨가 23일 오전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 첫 공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며 손을 치켜들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검찰은 이 사건이 성폭력 범죄에 대한 정당방위에 해당한다며 최 씨에게 무죄를 구형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첫 공판준비기일까지 방청석에 있었던 부산지검 공판부 정명원 부장검사가 법정에 직접 출석해 무죄 이유를 설명했다.

정 부장검사는 “재심 개시 결정 취지에 따라 검찰은 사실관계부터 판단에 이르기까지 치우침 없이 재검토했다”며 “최 씨는 당시 생면부지 남성에게 갑자기 성폭행 범죄를 당하게 됐고, 방어 행위로 부지불식간에 혀를 깨물게 됐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급박하고 현저한 침해에 대한 방어 행위에 소극적으로만 저항할 것을 요구할 수 없다는 점, 근래에 발생한 유사한 사안들이 불기소되거나 무죄로 선고되고 있다는 점 등을 검토해 증거로 제출했다”며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로서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시대에도 형사 사법의 역할은 국민에게 부당하게 가해지는 차별적 편견을 걷어내고, 오로지 법률적으로 마땅한 결과를 줄 수 있는 것”이라며 “특히 검찰의 역할은 범죄 피해자를 범죄 사실 그 자체로부터는 물론이고 사회적 편견과 2차 가해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 부장검사는 “검찰이 과거 이 사건에서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고,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접근했다”며 “그 결과 성폭력 피해자로서 마땅히 보호받아야 했음에도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줬다”며 최 씨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최 씨 측도 재판부에 법원, 검찰, 변호인 등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무죄 선고를 요청했다. 최 씨를 대리한 법무법인 지향 김수정 변호사는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무죄가 되는 사건이 아니다”라며 “그때나 지금이나 문제일 수밖에 없는 사건이 검찰과 법원의 잘못으로 오판됐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시 변호인조차 억울함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해 최 씨를 제대로 변호하지 못했다”며 “검찰과 법원이 과거 세대 잘못을 바로잡아야 하듯 저희 변호인들도 선배 세대가 남긴 미완의 변론을 완성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61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 혐의 유죄 판결을 받았던 최말자 씨가 23일 오전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 첫 공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며 참석자들과 포옹을 하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61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 혐의 유죄 판결을 받았던 최말자 씨가 23일 오전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 첫 공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며 참석자들과 포옹을 하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최 씨는 손으로 눌러쓴 글로 채워진 흰 종이를 펼쳐 최후진술에 나섰다. 최 씨는 “국가는 1964년 생사를 넘나든 악마 같은 그날의 사건은 어떠한 대가로도 책임질 수 없다”며 “피해자 가족들의 피를 토할 고통과 심정을 끝까지 잊지 말고 기억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이어 “61년 죄인으로 살아온 삶에서 희망과 꿈이 있다면 우리 후손들은 성폭력 없는 세상에서 자신의 인권을 지키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라며 “대한민국 법이 그렇게 만들어 달라고 두 손 모아 빌겠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최 씨 사건에 대한 선고기일을 오는 9월 10일로 지정했다. 검찰이 최 씨에게 무죄를 구형한 만큼 재판부도 무죄 판결을 내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재판이 끝난 뒤 최 씨는 기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법원 건물 밖에서 기자들과 만난 그는 “제가 이겼다”며 “한국여성의전화와 변호사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덕분”이라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최 씨는 검찰이 사과한 데 대해 “아직까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제 귀로 분명히 사과하는 걸 들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니까 대한민국 정의는 살아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3일 오전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최말자(가운데 흰색 옷) 씨.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23일 오전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최말자(가운데 흰색 옷) 씨.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최 씨는 이날 오전 부산지법 앞에서 한국여성의전화 등 전국 220개 단체가 연대한 ‘성폭력 피해자 정당방위 인정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는 “저를 위해 모여주신 여러분께 머리 숙여 고맙다고 인사드린다”고 했다. 부산여성의전화 등은 이날 기자회견문을 통해 “법원은 긴 세월의 과오를 이제라도 바로잡아 수사, 사법기관과 우리 사회가 여성 폭력 피해 생존자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도록 판결하라”고 밝혔다.

이번 재심은 성폭행 피해자인 최 씨가 정당방위가 아닌 중상해죄로 60년 전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을 다룬다. 1964년 5월 6일 당시 18세였던 최 씨는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노 모(당시 21세) 씨 혀를 깨물어 약 1.5cm 절단했다는 이유로 구속기소 됐다.

1965년 1월 부산지법은 6개월간 옥살이를 한 최 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노 씨는 최 씨보다 더 가벼운 판결을 받았다. 강간 미수가 아닌 특수 주거침입·특수협박죄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형이 나왔다. 노 씨는 현재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 씨 사건은 형법학 교과서 등에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은 대표적 사례로 다뤄졌다. 법원행정처가 법원 100년사를 정리하며 1995년 발간한 ‘법원사’에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