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 승계 안 돼 '눈물의 매각', 회사 판 돈은 서울로… 해외로…
부산 기업인들 고령화 가속
후계자 없어 폐업 사례 속출
흑자에 문 닫는 경우도 있어
지역 재투자 선순환 구조 절실
오랜 기간 지역 산업의 근간을 이뤘던 부산 중소 제조업체 대표들의 고령화가 가속화하는 가운데, 기업 승계를 하지 않으려는 2세들이 많아지면서 ‘눈물의 매각’이나 폐업 사례가 늘고 있다. 지역 경제를 떠받치는 기업들이 문을 닫는 것도 안타까운데, 매각 자금마저 부산이 아닌 서울로,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지역에서 재투자가 이뤄지고, 선순환이 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조업 분야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A 씨의 자녀는 유학파로,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다. A 씨는 자녀가 회사를 물려받기를 바랐지만, 자녀는 가업승계를 거부했다. 해외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와 몇 년간 지켜보니 업종 전망도 그리 밝지 않은 데다 각종 규제와 구인난 등 ‘골치 아픈’ 문제들이 많아 기업을 경영할 자신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A 씨는 결국 회사 폐업 자금으로 수도권의 부동산을 구입했다.
수산업계의 B기업은 자녀가 수산업을 물려받지 않고 자회사를 운영하며 타 지역 호텔과 테마파크 등을 인수한 데 이어 서울의 극장까지 인수해 사업을 확장한 경우다.
부산 강서구 지사동에서 자동차부품업을 하는 C 대표는 “자녀에게 고생길이 훤한 사업을 물려줄 이유가 없고 자녀들도 가업을 이어받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동종업을 하는 대표에게 회사 운영을 맡고 일정 배당만 달라고 제안을 한 상태”라고 말했다.
실제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한 ‘2024 중소기업 가업승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자녀에게 승계하지 않을 경우 기업의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매각’이라고 답한 이가 48.6%에 달했고 ‘폐업’이라는 응답자도 8.3%에 이르렀다. 자녀에게 가업을 승계하지 않으려는 이유로는 ‘자녀가 원하지 않아서’(38.8%)를 꼽은 이들이 가장 많았고, ‘자녀에게 기업 운영이라는 무거운 책무를 주기 싫어서’라는 응답도 26.9%나 됐다.
특히 부산의 경우 60세 이상 제조업 대표자의 비율이 36%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부산의 제조업 대표자 수는 3만 5062명으로, 이 중 60세 이상은 1만 2471명이었다. 전국 평균 29%에 비해서도 상당히 높다. 앞으로 가업승계 이슈가 부산에서 더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부산 강서구의 한 기업인은 “회사 매각을 하려 해도 M&A 관련 전문 변호사, 회계사들이 거의 서울에 있어 막대한 수임료, 매각 비용마저 서울로 올라가고 있다”고 전했다.
김동규 신영증권 APEX 서면 지점장은 “부울경 지역의 경우 중화학 업종이 많은데 2세들이 승계를 기피하면 힘들게 키워온 기업을 매각하거나 폐업을 해야 한다”면서 “창업자의 2세들이 부산보다는 해외나 수도권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아 매각 자금 또한 수도권이나 해외로 흘러가게 되는데, 부산에서 재투자가 이뤄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산업 구조 변화 단계에서 기업 매각이나 폐업 자금이 지역에서 선순환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연구 기관과 함께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