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포르투갈 대규모 정전… 원인 ‘이상 기후’ 가능성
28일 정오께 전역서 정전 발생
항공·철도 마비 ‘국가비상사태’
“사이버 테러 아냐” 원인 분분
스페인 내 극심한 기온 변화로
초고압 전력선에 진동 ‘셧다운’
스페인·포르투갈에서 벌어진 대규모 정전 사태로 항공·철도가 마비되고 병원 진료가 중단되는 등 큰 혼란이 벌어졌다. 약 16시간 만에 대부분의 전력은 복구됐지만 아직 공식적인 정전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포르투갈 전력회사는 스페인의 불안정한 대기 변동으로 초고압 전력선에 비정상적인 진동이 발생하면서 정전에 이르렀다고 지목하면서, ‘이상 기후’로 인한 정전일 가능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국가 마비 부른 대규모 정전 사태
28일(현지 시간) 낮낮 12시 30분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대규모 정전 사태가 벌어져 큰 혼란이 발생한 이후, 스페인 전력공사 레드 엘렉트리카는 29일 오전 6시까지 전체 에너지 수요의 99% 이상이 복구됐다고 밝혔다.
AP·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발생한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항공편이 중단되고, 지하철이 마비됐으며, 모바일 통신이 끊기고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멈춰 하루 동안 일상이 마비됐다. 주요 공항과 기차역은 발이 묶인 여행객들의 임시 야영지로 변했다.
지하철이 멈추자 스페인 마드리드의 주요 기차역과 상점, 사무실이 폐쇄됐고 수천 명이 거리로 쏟아나왔다. 일부 시민은 히치하이킹으로 집으로 돌아갔고, 일부는 몇 시간씩 걸어서 집에 가야 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귀가하지 못한 시민과 외국인 여행객을 위해 실내 체육관에 1200개의 간이침대를 설치하기도 했다. 특히, 정전으로 인해 인터넷과 모바일 통신이 끊기면서 건전지로 작동하는 라디오가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전력이 끊겨 신호등도 작동하지 않아, 차량에 탄 시민들은 거북이 운행으로 돌아가거나, 전기를 동력으로 하는 자동차 키가 작동하지 않아 차를 타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
마드리드 오픈 테니스 대회도 정전의 영향을 받았다. 영국의 제이컵 펀리 선수는 3라운드에서 불가리아의 그리고르 디미트로프 선수와 접전을 벌이던 중 경기를 중단해야 했다. 정전으로 경기장 전광판과 코트 위 카메라가 모두 작동을 멈췄다. 대회 조직위원회는 결국 이날 남은 경기를 모두 취소해야 했다.
스페인 내무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치안 유지를 위해 전국에 3만 명의 경찰을 배치했다. 양국 정부는 긴급 각료회의를 소집하고 대책 회의에 나선 끝에 29일 새벽 가까스로 전력 공급을 재개할 수 있었다.
■이상 기후, 정전에 영향 줬나
정전의 원인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포르투갈은 문제가 스페인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는 반면에, 스페인은 프랑스와 전력 연결망 단절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상황이다.
루이스 몬테네그루 포르투갈 총리는 “사이버 공격의 징후는 없다”고 밝혔다. 포르투갈 전력망 운영사 REN은 정전의 원인이 ‘드문 대기 현상’으로 인한 ‘비정상적인 진동’ 때문일 수 있다고 밝혔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REN은 “스페인 내륙에서의 극심한 기온 변화로 인해 400kV 초고압 전력선에 비정상적인 진동(일명 ‘유도 대기 진동’)이 발생했다”며 “이 진동이 전력망 동기화 실패를 일으켜 유럽 전력망 전체에 연쇄적인 장애를 초래했다”고 밝혔다.
REN의 조앙 콘세이상 이사는 로이터 통신에 “처음에 스페인 전력 시스템에서 아주 큰 전압 요동이 있었고, 이것이 포르투갈 시스템으로 확산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 공급업체인 니어라의 타코 엥엘라르 대표는 “기온 변화로 인해 송전선의 물리적 특성이 조금씩 변하면서 전력망의 주파수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브뤼셀 싱크탱크 브뤼겔의 게오르그 자크만 선임연구원은 “전력망 주파수가 유럽 기준인 50Hz 이하로 떨어지면서 프랑스를 포함해 발전소들이 연쇄적으로 차단됐다”고 밝혔다. 프랑스 일부 지역에서도 정전이 발생했다.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