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콘텐츠 옷 입고 ‘핫플’ 변신… 젊은 층 취향 저격 [핫하다, 부산 온천]
4. 일본 온천 부활 비결
드라마 인기 힘입어 20~30대 늘어
침체 극복 업계 전반 전환기 맞아
‘온천 올드하다’ 인식 변화도 한몫
이벤트 개발·즐길 거리 결합 시도
민관 거버넌스 구축 시너지 효과
‘온천 원조국’인 이웃 나라 일본 역시도 코로나19를 ‘역대급 수난’을 겪었던 시기로 기억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온천업계 전반이 새로운 전환을 맞으며 활력을 띠고 있다. 일본 온천업계에 불어온 새 바람은 20~30대 젊은 층뿐만 아니라 전국민의 온천 사랑에 불을 지피고 있다.
최근 수년간 일본 온천업계 상황도 한국과 비슷했다. 온천업소는 손님 급감, 연료비·인건비 상승, 후계 문제 등 운영 어려움으로 자꾸 사라져 갔다. 코로나19가 직격탄이 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종식되자 온천을 찾는 사람의 숫자는 ‘브이’(V) 자 반등을 보이고 있다. 일본 온천업계가 색다른 방식으로 부활을 이끌었다는 평가다.
일본환경성에 따르면 일본 온천 숙박 이용객은 지난 50년 동안 연간 1억 명 이상을 유지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진 2020년 7659만 명, 2021년 7804만 명을 보이며 역대 최저 수준의 이용객 수를 보였지만, 2022년 1억 987만 명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약 40% 증가하는 등 완연한 회복세를 보였다.
■일본 2030 “온천, 재밌고 유쾌해”
최근 일본에는 20~3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온천을 즐기는 사람이 눈에 띄게 늘었다. 젊은 층을 겨냥한 온천이나 사우나 이벤트가 확 늘면서 ‘온천은 올드하다’는 인식에도 변화의 바람이 분다.
일본의 온천 붐은 2021년 방영한 TV 드라마 ‘사도(サ道·사우나를 즐기는 법)’가 직접적 계기가 됐다. 등장 인물들은 사우나를 하며 일상을 공유하고, 매 회 각 지역 특색 있는 온천과 사우나 발굴에 나서는 ‘온천 덕후’다. 특히 ‘온천(사우나)→냉탕→휴식’을 하나의 ‘목욕 루틴’으로 정한 입욕법이 대중에게 알려지며 새로운 유행을 만들었다. 온천을 사랑하는 일본인의 ‘입탕 욕구’를 자극했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당시 드라마의 화제성을 되새기며 ‘사람들 맘에 불을 질렀다’고 표현한다. 일본 온천가에서는 ‘토토노우(整う·정돈되다)’라는 유행어가 퍼졌다. 토토노우는 ‘입욕과 사우나를 반복하면 몸과 마음이 편안하게 정돈되고 쾌감을 얻을 수 있다’는 득도의 경지를 이른다.
온천·목욕탕을 테마로 이벤트를 기획하는 일본 디자인 유닛 ‘센토 포에버’(SENTO FOREVER)의 아트 디렉터 나츠미 미나토(28) 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 20~30대에게 온천·사우나는 ‘어른들의 취미’로 여겨졌지만, 요즘은 일상을 벗어난 재밌고 유쾌한 활동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도심 속 바쁜 일상에 지친 젊은이들이 온천과 사우나를 통해 ‘토토노우’를 즐기고 마음의 안정과 휴식을 찾는다”고 말했다.
■ 3000년 된 온천까지도 변한다
일본 온천업계도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고 즐길 거리와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온천에 관심을 갖는 2030 세대를 끌기 위해서다. 도쿄 온천 코스기유는 젊은 예술가에게 인기 있는 거리 고엔지 한가운데 자리했다는 입지를 활용해 문화 행사를 적극 개최하는 곳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100년 넘는 업력을 자랑하며 문화재로까지 지정된 온천의 파격적인 변신이라 할 수 있다. 온천 바로 옆 철거 직전인 연립주택을 개·보수해 공유 스페이스 ‘코스기유 토나리’도 조성했다. 이 공간에선 일본 전통 만담 ‘라쿠고’와 음악 공연, 일본판 옥토버페스트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다. 일본의 2030 세대는 이곳을 ‘힙한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다.
일본 도고 온천 역시 ‘모두의 도고 온천 활성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마을 전체를 대대적으로 리뉴얼해 호텔과 카페, 레스토랑을 갖춘 온천지로 조성하는 게 골자다. 변화의 바람은 3000년 역시를 지녀 일본 온천의 원조라고 불리는 이곳마저 강타하고 있다.
단순히 하드웨어만 바꾸는 것은 아니다. 고색창연한 온천 마을에 예술을 입히는 전시 축제 ‘도고 온세나토’를 기획해 젊은 세대를 사로잡았다. 2022년 평범했던 도고 온천 별관 ‘아스카노유’는 형형색색의 꽃밭으로 대변신하며 일본 열도에 화제를 모았다. 안뜰 마당에 일본 유명 사진작가 니나가와 미카의 꽃 작품 230점을 바닥에 깔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핫 플레이스’로 재탄생시켰다. 그 결과 온천 ‘오타쿠’(마니아)뿐만 아니라 사진가의 팬들도 방문하는 명소로 떠올랐다.
■ 일본의 성공 비결은
도고 온천 프로젝트는 온천을 매개로 다양한 주체들이 긴밀히 협력한 모범 사례로 꼽힌다. 이 프로젝트에는 참여한 조직만 해도 6곳에 달한다. 마쓰야마시를 비롯해 도고 온천 경영주, 상인, 시민단체, 대학, 지역은행 등 민관이 ‘온천을 살리고 지역의 매력을 알리자’는 취지에 동감해 힘을 모았다.
한때 숙박객만 연간 120만 명이 넘는 호황을 누렸던 도고 온천. 하지만 시설 노후화로 2014년 관광객이 80만 명까지 줄어들었다. 위기감은 온천업소들을 뭉치게 했고, 지자체는 예산을 지원하고 온천도시에 문화예술을 입히는 실험에 동참하게 했다. 다만 일본 전문가들은 다양한 주체들이 공동의 목표 아래 명확한 의사 합의를 선행해야 성공적인 민관 거버넌스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일본 고쿠가쿠인대학 우메카와 토모야 관광도시조성학과 교수는 “도고 온천 프로젝트는 지자체가 적극적인 태도와 의지를 갖고 지역 은행과 대학 등 실질적으로 가능한 지원 주체와 수단을 검토하는 등 각고의 노력이 뒷받침 돼 나온 결과물”이라면서도 “거버넌스로 해법을 도출하려면 생각이 다른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의 의사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각 주체들이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대되 최선이 아니면 차선의 대안을 찾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임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끝-
손희문 기자·히라야마 나루미 서일본신문 기자 moonsla@busan.com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