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 칼럼] 자원은 없고 사람만 있는 나라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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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논설위원

이스라엘 가스전 확보 패권 부상
이집트·요르단 수출, 역학 변화

이란 전쟁, 비산유국에 안보 위기
중국·독일 등 각국 전략 흔들려

중동 변수 허약 한국 변곡점 맞아
에너지 굴기에 국가 미래 걸려

‘적이 실수할 때 방해하지 말라.’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일 나폴레옹의 격언을 인용해 중국이 미국의 이란 침공에 방관하는 방식으로 어부지리를 노린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오판한 데다 무모함이 겹치면서 결국 쇠퇴를 가속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인식이 중국 지도부에 퍼져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어떻게 종결되든 중동 석유 의존은 변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중국의 부작위는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우선 미 해군의 통제를 벗어난 우회 수송로를 확보하려던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가 흔들린다. 천문학적 재원을 쏟아부어 탈미국 노선을 걸었지만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 우회는커녕 출발부터 막힌다. 호르무즈 봉쇄로 비산유국의 에너지 안보 취약성이 명확해졌는데, 여기에 중국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반면 이스라엘의 무리한 무력행사는 에너지 굴기에 힘입은 점에서 대비된다.

‘자원은 없고 사람만 있다.’ 60~70년대 한국에서는 국가 발전 서사에 이스라엘이 비교 대상이었다. 일촉즉발의 지정학적 위기에다 자원 빈곤을 교육과 기술로 극복하자는 성장 담론을 공유하고 있다는 논리였다. 당시 이스라엘은 군사 강국이었지만 에너지만큼은 약소국이었다. 산유국들이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으니 중동 내 수입은 언감생심이었다. 유전 탐사는 반세기에 걸쳐 실패를 거듭했고, 전력 수요는 석탄 발전으로 충당해야 했다.

절치부심한 끝에 반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지중해 영해에서 가스전이 터진 것이다. 2009년과 2010년 타마르·레비아탄에서 천연가스가 발견되자 이스라엘은 단순한 군사 강국이 아닌 에너지 패권의 한 축으로 부상했다. 전력 생산의 70%를 가스로 충당하고도 남아 이집트와 요르단에 파이프라인을 연결해 수출까지 하게 된 것. 이집트와 요르단은 1차 중동전쟁을 주도했으니, 불구대천의 적대국 사이에 산업의 젖줄이 이어지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에너지 자립을 이룬 이스라엘과 일부 아랍국가 사이의 갑을 관계는 중동 내 반이스라엘 전선을 이완하는 효과를 불렀다. 민간인 피해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무장 정파 하마스와 헤즈볼라에 무차별 폭격을 가하고, 급기야 이란을 침공해 전 세계 공급망을 마비시키는 무리수의 배경에 자원 강국의 자신감이 있다.

에너지 종속이 국가 안보를 뒤흔든 독일 사례는 자원 빈국 한국의 반면교사다. 원전 3기를 폐기하는 대안으로 값싼 러시아 천연가스를 선택했다가 후회막급이다. 러시아와 직통 연결되는 해저 가스관 노르트스트림 1·2는 기간 산업을 떠받친 전략 인프라였다. 길이만 해도 부산~서울 직선거리(약 325km)의 4배에 달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가 전략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독일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한 데 대해 러시아가 공급 축소와 가격 인상으로 보복했기 때문이다. 독일은 전략적 실수를 인정하고 러시아 가스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일찍이 미국의 석학 노엄 촘스키는 미국의 석유 통제권을 ‘세계 권력의 지렛대’라고 규정했다. 석유 수도꼭지를 틀어쥠으로써 한국과 일본 등 비산유국 겸 주요 제조국을 종속시키는 구조라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중국이 태양광 발전과 전기차 시장에 집중해 세계 시장을 제패한 것은 미국의 화석 연료 패권의 그늘을 피하겠다는 고육지책의 산물로 읽힌다. 중국의 도전은 유효하지만 문제는 아직 석유 시대가 저물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구나 미국은 셰일 가스 덕분에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됐고 여전히 중동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일본·중국을 콕 집어 ‘자유항행 보장 책임’을 반복적으로 상기한 것은 비산유국의 약점을 꼬집는 것이다.

미국과 이란의 협상은 지지부진하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떤 경우라도 전쟁의 결말은 산유국 승자, 비산유국 패자 구도다. 게다가 미국의 ‘무임승차는 없다’는 선언은 한국처럼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 가장 뼈아프다. GDP(국내총생산)의 8%, 연간 수입액의 20% 이상을 석유와 가스가 차지하고, 그 대부분을 중동에 의존하는 나라로서는 공급망 불확실성 대비를 넘어선 국가 존립의 위기의식이 필요하다.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방산 등 하이테크 강국으로 올라섰지만, 에너지 무기화에 취약해 주사기, 쓰레기봉투, 도로포장용 아스콘 생산이 중단되는 게 현실이다. 자원은 없고 사람만 있는 한계를 극복하자고, 인재를 키우고 기술을 개발해 이뤄낸 한국의 성공 신화가 변곡점을 맞았다. 자원의 자립이 없으면 성장과 번영은 지속되기 어렵고, 영원한 종속을 피할 길이 없다. 자체 탐사와 자원 외교 등 에너지 굴기에 국가 미래가 걸렸다.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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