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과 인류의 미래를 밝히다”
제21회 경암상 7일 부산서 시상식
경암교육문화재단(이사장 진애언)은 7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경암홀에서 ‘제21회 경암상 시상식’을 가졌다.
이날 시상식에는 진애언 경암교육문화재단 이사장, 이종호 경암상위원회 위원장(서울대학교 교수·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최재원 부산대학교 총장과 각계 주요 인사와 학계 관계자, 그리고 4개 부문 수상자와 가족 등이 참석했다.
행사는 경암상 20년의 역사를 되새기며, ‘학문에 대한 순수한 존경과 인류에 대한 헌신’이라는 재단의 설립 이념을 되새기는 시간으로 꾸며졌다. 특히 올해 시상식에서는 수상자들의 연구를 주제로 한 헌정 영상과 더불어, 특별히 제작된 헌정곡이 연주되어 참석자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올해 경암상은 자연과학, 생명과학, 공학, 특별상 등 4개 부문에서 각기 세계적인 업적을 쌓아온 석학 4인이 선정됐다.
자연과학 부문에는 김유수 광주과학기술원(GIST) 화학과 교수가 선정됐다. 김 교수는 주사터널링현미경(STM)과 첨단 광기술을 정교하게 융합하여 단일 분자 수준에서 양자 상태를 정밀 계측하고 능동적으로 제어하는 연구 영역을 개척했다. 그는 개별 분자의 전자·진동 상태를 분광학적으로 규명하며, 양자정보처리·나노 촉매·인공광합성 등 융합 과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암상위원회는 “기초과학과 미래 기술의 경계를 잇는 혁신적 연구 성과”라고 평했다.
생명과학 부문 수상자인 허준렬 하버드 의과대학 부교수는 면역조절 물질 ‘인터류킨-17(IL-17)’의 기능과 분자기전을 세계 최초로 규명한 인물이다. 그는 장내세균이 생성한 담즙산 대사물질이 면역반응을 유도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인터류킨이 뇌 기능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규명함으로써 면역학을 신경과학의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위원회는 “면역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세계적 업적”이라며 그의 연구가 난치성 질환의 새로운 치료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강조했다.
공학 부문은 김호영 서울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가 수상했다.
김 교수는 계면 유체역학(interfacial fluid mechanics)과 연성 물질 물리학(soft matter physics)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그는 모세관 현상, 젖음 현상, 탄성 모세관 현상(elastocapillarity) 등 복잡한 물리적 현상을 정밀 규명하고, 이를 기반으로 습도 및 물 구동 연성 로봇(humidity-/water-powered actuator)을 개발했다.
생체모방 기술을 응용해 저전력 소프트 로봇 설계에 기여한 그는 “공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연구자”라는 찬사를 받았다.
특별상에는 MIT 기계공학부 김상배 교수가 선정됐다. 김 교수는 로봇공학의 세계적 권위자로, 인간의 움직임을 모방한 생체모방 로봇 분야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이뤘다.
특히 그가 개발한 ‘Mini Cheetah(미니 치타)’ 로봇은 경량화와 고기동성이라는 두 가지 난제를 동시에 해결하며 로봇공학의 방향을 새롭게 제시했다.
기존의 유압 구동 중심에서 벗어나 전기 구동 방식을 세계 최초로 실증한 그의 연구는 산업계 전반에 큰 파급력을 미쳤으며, 보스턴 다이나믹스·Agility Robotics·Unitree 등 150여 개 기업에 기술적 영감을 제공했다.
위원회는 “인류의 삶을 기술로 확장한 과학자”로 평가했다.
이번 제21회 경암상 수상자는 전국 대학 총장, 학장, 주요 학회장, 교수 3인 이상의 추천을 받아 총 59명의 후보 중에서 선발됐다.
부문별로 구성된 6~7인의 전문 심사위원단이 2차례에 걸친 엄정한 심사를 거쳤고, 최종적으로 경암상위원회의 전체 심의를 통해 수상자가 확정됐다.
올해는 인문·사회 부문에서는 수상자가 선정되지 않았다. 재단 측은 “모든 후보자의 업적이 훌륭했지만, 경암상이 추구하는 기준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을 신중히 선정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올해부터 경암상의 상금은 기존 2억 원에서 3억 원으로 증액됐다.
이는 학문에 대한 존경과 연구자의 노고를 정당하게 예우하려는 재단의 뜻을 반영한 것으로, 경암상이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 권위의 민간 학술상으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준다.
수상자 전원에게는 상금과 함께 순수한 학문적 헌신을 상징하는 상패가 수여됐다.
경암교육문화재단은 태양그룹 창업주이자 호 ‘경암’으로 불린 고 송금조 회장이 평생 모은 사재 1000억 원을 기부해 2004년 설립한 순수 민간 공익재단이다.
송 회장은 “부는 사회로부터 얻은 것이니 반드시 사회로 돌려야 한다”는 신념 아래, 학문과 문화의 발전을 위해 평생의 결실을 환원했다.
그 뜻을 이어 2005년 첫 시상식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21년간 경암상은 학문적 탁월성과 인류 발전에 헌신한 학자들을 발굴해 왔다.
진애언 이사장은 이날 인사말에서 “경암상은 고인이 평생을 바쳐 이룬 결실을 사회에 되돌리고자 한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된 상”이라며 “수상자 한 분 한 분의 업적에는 인류의 미래를 밝히는 지성이 담겨 있다. 학문적 가치에 대한 존경과 예우의 상징으로 경암상이 계속 발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암상은 부산을 기반으로 출발했지만, 이제는 세계 학술계를 향해 그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특히 올해 수상자 4인 중 2인이 해외 유수 기관(하버드대·MIT) 소속 연구자라는 점은 경암상이 단순히 국내를 넘어 국제적 학문 네트워크의 허브로 자리 잡고 있음을 상징한다.
21년의 역사를 이어온 경암상은 앞으로도 학문의 본질적 가치와 인류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그 뜻을 이어갈 예정이다.
강성할 미디어사업국 부국장 shg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