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지금 최민희에게 필요한 것이야말로 양자역학
언론 자유 지키던 과거와 달리
마음에 안드는 언론 통제 도 넘어
국감 중 딸 결혼식 논란에선
"일정 몰랐다" 거짓말까지 해
과방위원장 자격 이미 상실 수준
사퇴하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때 그는 언론 자유의 최전선에 서있었다. 군사정권 시절 언론 탄압에 맞서 누구보다도 처절하게 싸웠다. 그가 기자로 일했던 월간 ‘말’은 1990년대 언론 학도들에게 어떤 레거시 매체보다 믿음직한 언론이었다. 이후 수차례 이름을 바꾼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에서 상임대표까지 지내며 민언련의 ‘대모’로까지 불리었다.
그의 현재 직업은 국회의원이다. 또한 과거의 이력을 바탕으로 현재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권력으로부터 언론을 지켜야 하는, 실제로는 언론을 감독하는, 국회 상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리고 그는 언론의 자유를 헌신짝처럼 내다버렸다.
지난달 20일 국정감사장에서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MBC 보도본부장을 퇴장시켰다. 자신의 발언이 포함된 리포트를 문제 삼으며,“이게 중립적이냐”라고 따져 물었다고 한다. MBC 보도본부장은 “개별 보도 사안에 대한 논의는 부적절하다”고 답했지만, 돌아온 건 ‘퇴장’이었다.
과방위원장은 신문과 방송, 통신 등을 감독하는 자리다. 하지만 감독이 간섭이나 통제가 되어선 안 된다. 언론은 국민의 눈과 귀다. 그런 언론이 권력의 통제 대상이 되는 순간, 눈과 귀라는 본질의 역할은 불가능해진다.
그는 MBC에 ‘친(親) 국민의힘 언론’이라는 딱지를 씌웠다. 누가 봐도 설득력이 없다. 지난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MBC는 누구보다 계엄 세력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 관점을 지켜왔다. 게다가, 그런 사실과는 별개로, ‘친 국민의힘 언론’이라고해서 국감장에서 쫓겨나야 할 이유는 또한 뭔가. 그렇다면 반대로‘친 민주당 언론’에게는 도대체 어떤 VIP 대접을 해줄 셈인가.
사실 그의 이런 왜곡된 태도는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다. 과거 그의 행적이나 발언에서 ‘나만 옳다’는 식의 확증편향을 느끼고 불편해했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일까. 당장 지난해 당내 온건파 의원들을 향해 “움직이면 죽는다. 제가 당원과 함께 죽일 것”이라는 극단적 발언을 쏟아낸 것도 그였다.
오히려 놀라운 장면은 따로 있었다. 함께 불거진 딸 결혼식 논란이다. 이는 그가 공직자로서의 기본적 경계조차 지키지 못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국정감사 기간 중 치러진 결혼식에 피감기관 관계자들이 화환과 축의금을 전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공직윤리 위반 논란이 일었다.
카드 결제된 축의금은 없었다, 큰 금액은 다시 되돌려줬다…, 최 위원장의 여러 해명에도 논란은 식지 않았다. 정작 국민이 문제 삼는 것은 금전의 흐름이 아니라 공직자로서의 감수성이기 때문이다. 국회의 상임위원장이 피감기관과 사적인 행사를 공유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최 위원장은 국민들에게 해선 안될 거짓말을 했다. 양자역학을 공부하느라 딸 결혼식 날짜도 몰랐다는 취지의 황당한 해명으로, 온 국민에게 양자역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딸 결혼식 날짜도 모를 정도로 양자역학 열공에 빠져 있어야 할 시간에 유튜브 방송에 나가 딸 결혼식에 입을 한복 이야기를 주고 받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확증편향에 빠진 정치인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특정 진영의 확증편향에 빠진 정치인의 말은 해당 진영의 의견으로 가려 들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자신의 편의를 위해 아무렇게나 거짓말을 내뱉는 정치인은 다르다. 더이상 그의 말을 신뢰할 수 없다. 신뢰할 수 없는 정치인은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이 다했다고 봐야 한다.
기자 출신에서 언론 운동가, 시민사회 활동가를 거쳐 정치인으로 거듭난 그의 이력을 떠올려 본다. 이제는 퇴색되어버린 그의 초심을 떠올린다. 정치인으로서 위기에 빠진 지금 초심으로 돌아갈 때다. 그래서 그가 과방위원장 자리를 내려놓기를 바란다. 그는 이제 선택해야 한다. 신뢰가 사라진 권력의 자리에 남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그 자리에서 내려와 초심으로 돌아갈 것인가. 그의 돌파구는 후자에 있다.
그리고 위원장직을 내려놓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못 다한(?) 양자역학에 대해 제대로 다시 공부해보길 권한다. 양자역학의 주요 개념 중 하나가 불확정성의 원리라고 한다. 입자의 위치를 정확히 알면 속도를 알 수 없고, 속도를 파악하면 위치는 미지수가 된다. 입자의 운동량과 위치를 동시에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의미다. 양자역학의 원리 속에 최 위원장이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도 함께 담겨 있을 듯 하다. 양자역학의 핵심이 정답이 없다는 데 있다면, 양자역학을 통해 최 위원장 역시 자신의 생각과 주장만이 정답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을지도.
김종열 정치부장 bell10@busan.com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