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재파의 생각+] 세대 혐오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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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대 교양대학 교수·공모 칼럼니스트

세대론 일정 주기 두고 반복적 등장
자본·정치·미디어, 갈등·분열 부추겨
우리 사회 진짜 문제, 구조적 불평등
지금 필요한 것은 이를 해결할 연대

최근 출시된 아이폰 17로 인해 ‘영포티(young forty)’라는 세대 용어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핸드폰이 출시된 직후 온라인에는 ‘아이폰 17은 영포티의 필수 아이템’이라는 제목과 함께 한 이미지가 밈으로 확산됐다. 이미지 속에는 젊어 보이려 애쓰는 중년 남성이 아이폰을 들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고, 이를 본 젊은이들은 ‘지름신을 막아준다’며 웃음 섞인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그 웃음에는 영포티 세대를 향한 조롱이 담겨 있었다.

사실 영포티라는 용어가 처음부터 부정적 멸칭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다. 이 말이 처음 등장한 2015년 무렵만 해도 영포티는 트렌드에 민감하고 자기관리에 적극적인 ‘젊은 40대’를 뜻했다. 이들은 안정된 소득과 구매력을 바탕으로 문화와 소비를 주도했고 멋있는 중년의 모습으로 명명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는 크게 바뀌었다. 이제 영포티는 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혹은 스스로 젊다고 착각하는 40대를 비꼬는 멸칭으로 쓰이고 있다.

최근까지 사회적 담론의 중심에 있었던 MZ 세대론이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영포티 세대론이 부상하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 사회에서 세대론은 일정한 주기를 두고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매번 새로운 이름으로 사회적 갈등과 혐오를 조장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세대론은 어떠한 과정을 통해 형성되고 확산하는가. 다시 말해 특정 세대를 규정하는 담론이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가는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세대론은 자본의 논리에서 시작된다. 기업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소비를 자극하기 위해 특정 세대를 명명하고 그 세대의 특징을 규정하는 마케팅을 펼친다. ‘MZ는 욜로(YOLO)와 플렉스(flex)를 즐긴다’, ‘영포티는 패션, 뷰티, 헬스케어 등 자기관리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식의 선언적 마케팅은 사실상 소비 지침에 가깝다. 기업은 세대를 구획하고 그에 맞는 상품과 서비스를 쏟아낸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자본주의 권력이 만들어낸 이름이 사회적 현상으로 굳어지면서 사람들은 오히려 그 틀에 자신을 맞추게 된다는 것이다.

자본이 세대론을 만들어내면 정치권은 이를 세분화해 갈라친다. 정치권은 ‘MZ 이대남’을 보수 성향의 새로운 지지층으로 규정하고, ‘영포티 남성’을 진보 성향의 핵심 지지 기반으로 강조한다. 특정 세대를 ‘변화를 이끌 주체’로 띄우기도 하고 반대로 ‘기득권 집단’으로 몰아세우기도 한다. 실제로는 세대 내부의 목소리가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단순화된 세대론을 활용해 자신에게 유리한 구도를 만들고 결과적으로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긴다.

미디어는 이러한 갈등 구도를 더욱 적극적으로 확대 재생산한다. 예컨대 ‘근무 5분 전 출근 못 한다는 MZ’, ‘영포티가 입으면 주가가 떨어져’와 같은 자극적 제목의 기사를 앞세워 조회수를 올린다. 이 과정에서 영포티는 자기 객관화를 못하고 20대에게 추근대는 기득권 세대로, MZ는 자기만 아는 이기적 젊은이 세대로 그려지며 풍자와 조롱의 대상이 된다. 또 알고리듬에 기반한 ‘필터 버블’ 효과로 이러한 확증편향은 점점 공고해진다. 결국 미디어는 세대론을 자극적 콘텐츠로 소비하며 사회적 분열을 확대한다.

대중은 자본, 정치, 미디어가 만들어낸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접하면서 점차 그것을 사실처럼 받아들인다. 우리네 일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소한 갈등 그리고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으로 발생한 갈등이 세대 구도로 포장되면서 세대 탓으로 돌려진다. 결국 사람들은 문제의 본질을 보는 것 대신 너희 세대의 문제라며 상대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데 익숙해진다. 이 과정에서 세대 갈등은 혐오로 증폭되고 확산된다.

물론 각 세대는 공통의 시간을 공유하며 나름의 문화적 특징을 형성한다. 그러나 세대를 하나의 이름으로 단순화하는 순간,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수많은 사람의 현실은 지워진다. 각 세대 내부에는 계층과 성별, 직업과 지역의 차이가 뒤섞여 있다. 같은 세대 안에서도 누군가는 상속받은 강남 아파트에 살고 누군가는 최저임금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세대론은 이러한 다층적 현실을 지워버리고 혐오의 언어만 남긴다. 따라서 우리는 자본이 붙여놓은 이름, 정치가 이용하는 프레임, 미디어가 부추기는 갈등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진짜 문제는 세대 갈등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 불평등이다. 불안정한 일자리, 주거 불평등, 돌봄과 교육의 격차는 특정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세대를 탓하는 언어에 머무는 한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고 서로를 소모적으로 공격할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세대를 가르는 이름이 아니라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대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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