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빈 상가 도시, 부산 되살릴 주거 중심 도시계획으로 전환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채창일 (주)경성리츠 대표


정부는 주택난 해소를 위해 공급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서울은 상가 의무비율을 줄여 주거 공급을 늘리는 방안을 내놓았다. 도심 공실을 줄이고 주택난을 완화하려는 합리적 시도다. 그러나 부산의 현실은 다르다. 주택난보다 상업용 부동산 공실 누적이 더 큰 문제로 다가온다.

부산의 오피스 공실률은 지난해 말 기준 18%대,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10%대 중반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단위계획은 상가 비율을 지나치게 높게 설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구 암남동의 경우, 상가 비율을 50%로 정하고, 완화하더라도 최소 20% 이상을 상가로 채워야 한다. 수요가 없는 상가를 억지로 지어야 하고, 결과적으로 상가는 비고 남은 상권마저 약화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상가 중심의 개발이 아니라, 주거 중심의 유연한 도시계획이다. 이미 현장에서는 “상가 대신 주택으로 허용해 분양가를 낮추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부산의 용도용적제는 주거 비율이 높을수록 오히려 용적률을 낮추는 구조다. 수요가 주거에 몰리더라도 규제가 이를 억제하고 상가 비율을 강제한다. 상업지역은 본래 도시 활력을 불러내는 거점이어야 하지만 지금은 공실만 쌓이는 구조로 전락했다.

상가 비율을 줄여 주거 수요를 흡수하고, 주거 비율 증가에 따른 용적률 페널티는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 주거가 필요한 곳에는 유연하게 전환이 가능해야 하며, 수요 연동형 계획을 도입해 공급을 실수요 중심으로 조정해야 한다.

부산의 미분양 문제 역시 단순한 공급 과잉의 문제가 아니다. 수도권 중심의 일률적 규제가 그대로 적용되면서 주거 이동성이 심각하게 막혀 있다. 산복도로와 노후 주거지에 여전히 많은 시민이 살고 있지만, 고분양가와 거래세·대출 규제가 겹쳐 이사 수요가 억제된다. 대기업 브랜드 단지는 일부 선방하지만, 지방 중소 건설사는 미분양에 직면해 생존 위기에 처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HUG 보증제도나 LH 매입도 취지와는 달리 현장에서는 규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HUG 보증심사는 절차가 길고, 그 사이 금융비용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LH 매입 기준은 현장 수요와의 간극이 커 거래 성사가 어려우며, 복잡한 행정 절차로 인해 많은 사업자가 중도 포기하고 있다. 여기에 과도한 공공기여와 상가 비율 강제가 겹치면서 분양가는 더욱 오르고, 이는 다시 미분양으로 이어진다. 결국 제도는 안전망이 아니라 시장의 발목을 잡는 구조가 되고 있다.

해법은 민간의 장기 임대 역량을 시장 안으로 다시 끌어들이는 것이다. 과거 정부가 임대사업자를 투기 세력으로 낙인 찍으며 종부세 부담이 커지고, 보증보험 가입이 막혀 전세 반환 불안까지 확산됐다. 그 결과 양질의 임대주택 공급은 위축됐고, 주거 이동성은 더 악화됐다.

이제는 민간 임대사업자 등록 제도를 실효적으로 복원해야 한다. 종부세 합산 배제, 양도세 중과 배제, 취득세·재산세 감면 등 장기 임대 인센티브를 정교하게 설계해 민간이 안정적으로 공급과 운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HUG와 LH는 심사와 매입 절차를 단순화하고, 부산의 상가 비율 규제와 용도용적제를 수요 연동형, 탄력형으로 재편해야 한다. 지금의 상가 용도는 임대 주거용으로 유연하게 전환 가능하도록 법적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거래세와 대출 규제는 이동성 회복을 목표로 미세조정하되, 과열 우려가 있는 구간에는 상시적 안전장치를 병행해야 한다. 민간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하지 않으면, 공공은 감당할 수 없는 비용과 책임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결국 부산의 도시문제는 단순한 공급 확대나 규제 완화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의 본질은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규제 틀에 있다. 빈 상가가 쌓이고 주거 수요가 억제되는 구조 속에서 ‘공급’은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정책은 구호가 아니라 실행에서 평가를 받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일한 해법이 아닌 복합적이고 정교한 전략이다. 수요에 귀 기울이고, 규제를 유연화하며, 민간의 역량을 다시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 그것이야말로 부산의 빈 상가를 기회의 공간으로, 정체된 도시를 회복의 무대로 바꾸는 열쇠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