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여 명 생활권, 공공도서관 반경 1km 이내 전무… “너무 멀어요” [부산 공공도서관 리포트]
중. 내겐 너무 먼 도서관
인구 밀도지 30곳 중 절반 소외
도보로 10~15분 이상 걸려 불편
반경 2km 이내 없는 지역도 있어
교통 편리한 민간 부지는 비싸
접근성 우선 고려 건립 바람직
부산 지역 인구 밀도 상위 30개 읍면동 중 공공도서관이 반경 1km 이내에 없는 면적이 절반 가량인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에서 10년 새 도서관이 21곳이나 생겼지만 주요 인구 밀집 지역에는 도서관이 부족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높은 땅값 등 부지 확보의 어려움으로 인해 입지 선정 과정에서 시민 접근성이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 현실이 도서관 사각지대를 키웠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인구 밀도 높은 3곳 도서관 ‘0’
부산 동래구 사직1동에 살고 있는 장 모(39) 씨는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주 1회 정도 부산진구 초읍동의 시민도서관을 찾는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지만 약 3km 거리로 걸어서 50분 이상 걸린다. 장 씨가 가까운 공공도서관에 가려면 집에서 8분 거리의 버스정류장에서 131번 시내버스를 탄 뒤, 두 정류장을 지나 54번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환승 후 다시 10분가량 더 가면 도서관에 도착한다. 빠르면 집에서 출발해 20~25분 정도 걸리지만 도로 사정이나 배차 간격 탓에 30분 이상 걸리는 날도 허다하다.
같은 동래구 내에 있는 동래읍성도서관은 이보다 더 멀어 처음 간 뒤로는 다시 방문하지 않는다. 장 씨는 “지난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하면서 올해부터 자녀 교육과 자기 계발을 위해 책과 친해지려 했지만 오가는 길이 부담스러워 도서관에 덜 가게 된다”고 말했다.
23일 부산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장덕현 교수, 구본진 박사 연구팀의 ‘부산 지역 읍면동 단위 도서관 공급 불균형 지역 분석’ 결과에 따르면 부산 지역 인구 밀도 상위 30개 읍면동의 전체 면적(23.1㎢) 중 12.4㎢(47.5%)가 공공도서관 반경 1km 생활권에서 벗어나 있었다. 부산에서 손꼽히게 많은 인구가 모여 사는 지역이지만 도보로 10~15분 거리에 공공도서관이 없어 주민들의 도서관을 이용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간한 ‘2024년 공공도서관 건립·운영 매뉴얼(이하 운영 매뉴얼)’은 ‘공공도서관은 반경 1km 이내(1차 반경) 인구가 도보로 10분 이내 접근이 가능하고, 2km 반경 이내(2차 반경)에서는 도보로 20분 이내로 접근이 가능한 위치에 들어서야 한다’고 권장하고 있다.
부산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인 해운대구 우3동(3만 3021명/㎢), 부산진구 개금1동(3만 2201명/㎢), 동래구 사직1동(2만 8446명/㎢)은 반경 1km에 공공도서관이 없다. 전체 동 면적 가운데 공공도서관 반경 1km 이내에 해당하는 비율이 ‘0’이라는 뜻이다. 이곳 주민 5만 8000여 명은 공공도서관 접근성이 크게 떨어지는 곳에 살고 있는 셈이다.
우3동 주민들은 약 2km 떨어진 해운대도서관 우동분관(해운대구 우1동), 사직1동 주민들은 약 3km 거리의 시민도서관(부산진구 초읍동)을 찾는다. 개금1동 주민들도 약 2km 떨어진 주례열린도서관(사상구 주례동)을 주로 찾는데 이마저도 지난해 10월 도서관이 문을 열면서 가능해졌다.
도서관 서비스 범위를 2km로 확대해도 일부 인구 밀집 지역의 공공도서관 소외는 여전하다. 사직1동(2만 8446명/㎢)은 전체 면적(0.41㎢) 중 0.26㎢(62.9%) 지역에서 반경 2km 이내에 공공도서관이 없었다. 사직3동과 온천3동의 공공도서관 사각지역 면적 비율이 각각 53.7%, 61.8%에 달해 동래구 서부에 있는 이들 지역 주민 상당수는 반경 2km 이내에도 공공도서관이 없어 옆 동네로 ‘도서관 원정’을 떠나는 실정이다. 이 밖에도 서구 충무동(100%), 해운대구 좌2동(100%) 등 도서관 사각지역 비율이 80% 이상으로 높은 곳은 인구 밀집 지역 30곳 가운데 11곳에 달했다.
반면 사상구 덕포1동, 영도구 영선1동, 서구 동대신1동, 중구 보수동 등 인구 밀집 지역 4곳은 도서관 사각지역 비율이 ‘0’으로 나타나 전 지역에서 반경 1km 이내에 공공도서관에 접근할 수 있었다.
구·군별 도서관 서비스 사각지역 분포의 편차도 매우 크다. 사하구는 전체 면적 중 16%의 지역에서만 1km 이내에 공공도서관이 있어 접근 가능성이 낮았다. 반면 해운대구는 74.5%의 지역이 반경 1km 이내에 공공도서관이 있는 ‘도세권’(도서관 도보 생활권)에 해당됐다.
실제 소요 시간을 따져보면 도서관 접근성은 더욱 열악해진다. 도서관까지 거리가 1km여도 도로 여건상 멀리 돌아가야 하거나, 건널목을 건너야 하는 등 도보로 10분 이상 소요되는 경우도 많다.
■사람보단 땅값
인구와 도서관의 미스매칭은 부지 확보의 어려움에서 비롯된다. 교통이 편리하고 접근성이 좋은 민간 부지는 지가가 비싸 ‘그림의 떡’이다. 결국 공공도서관을 지을 때도 접근성은 입지 조건에서 우선 순위가 밀리고, 입지와 무관하게 쉽게 확보할 수 있는 공공용지 등이 우선 검토되는 게 현실이다.
도심지에 있는 일부 지자체에는 활용할 수 있는 공공 부지 자체도 드물다. 남구청은 2016년 인구 밀도가 높은 문현동에 공공도서관 건립을 검토했지만 마땅한 공공용지가 없어 건립을 포기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향은 과거부터 이어지고 있다. 1998년 동구 범일동 증산공원 옆에 문을 연 동구도서관은 해발 고도 130m 높이의 산복도로 위에 있다. 산 아래에서 도서관에 가려면 가파른 언덕길을 쉬지 않고 20분가량 걸어야 할 정도로 접근성이 떨어진다.
차량을 이용한 방문도 어렵다. 주차장이 13면에 불과해 주말이면 도서관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출입로는 불법 주차하는 차들로 교행할 수 없어 운전자 간 다툼이 생기기도 한다. 도서관에서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장을 지나는 38번 시내버스의 평일 기준 배차 간격도 19~28분에 달해 이용도가 떨어진다.
동구청 평생교육과 관계자는 “도서관 건립을 위한 입지 검토는 여러 후보 부지가 있어야 의미가 있는데, 현실적으로 도서관을 지을 수 있는 땅이 없다”며 “면적이 좁고 지형 자체가 경사진 구 특성상 접근성이 좋은 입지를 선정하는 것이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도서관 박은아 관장은 과거 지어진 일부 도서관들의 접근성이 낮은 이유에 대해 “비싼 땅값으로 도심 지역 부지 확보가 어려웠고, ‘도서관은 도심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있어도 괜찮다’라는 열람실 기능 중심의 인식 등이 결합한 결과로 보인다”며 “앞으로 지어지는 공공도서관은 도시 구조의 변화를 고려해 접근성을 우선시해 들어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동우 기자 frien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