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의 생각의 빛] 문화의 힘으로 정의와 민주주의를 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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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최근 부산과 서울 등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부산광역시중구문화원에 모여 우애를 다진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다. 한국작가회의 본회 소속 작가들이 지역을 순회하면서 집담회 형식의 대화를 하는 행사인데, 이번에 부산지회에서 열린 것이다. 중구 대청동에 있는 중구문화원 2층에 촘촘히 들앉은 회원들과 발제자 및 토론자들의 열띤 음성이 인상적이었던 행사였다. 두 번째 발제자였던 나는 발제에 앞서 중구문화원의 내력과 함께 복병산 일대와 대청동에 포진한 문화유산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였다. 참석자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대청동, 광복동, 중앙동, 동광동, 부평동, 보수동 등 이른바 ‘원도심’을 형성했던 공간이 지닌 의미를 짧게나마 언급하고 소개하는 게 멀리 일부러 찾아온 서울 손님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날 행사의 주제는 ‘더 많은 정의,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하여’였다. 다소 무겁고 거창한 주제여서 발제 내용을 구성하는 데 애를 먹었지만, 1678년 용두산공원 일대에 조성된 초량왜관 시대와 개항 및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거쳐 한국전쟁의 상흔과 뒤이은 피란민들의 유입 등 부산이 역사적으로 빛과 그늘을 동시에 쐰 도시였다는 사실과 행사의 주제를 아우르고 싶었다. 중요한 점은 1979년 10월 부마항쟁의 시위 행렬이 광복로와 대청로를 가득 메웠다는 점과 함께 1987년 6월 항쟁 때에도 도심지였던 서면 일대와 함께 원도심의 간선도로가 민주주의와 정의를 외치는 시민들에게 열린 광장의 기능을 담당했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부산이 지켜온 정신적 기질 되살려

시민 자존감 회복하는 동력 삼아야

도시 곳곳 문학적 색채 적극 활용을

행사를 마치고 저녁을 먹기 위해 일행들을 데리고 식당으로 가는 중간중간 설명이 필요한 도로나 건물이 보이면 그 공간이 지닌 의미를 전달하였다. 부산타워가 보이는 대청로를 끼고 용두산공영주차장 근처에 있는 적산가옥과 영화체험박물관을 가리키며 잠깐 설명을 마치고 저녁 뒤풀이가 예정된 식당으로 들어가 저녁을 먹었다. 평소 손님이 많아 점심시간에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먹기가 힘들었던 식당이었다. 예약 인원보다 한 테이블 가량의 인원이 더 참석하여 더욱 분주한 자리였다. 부산과 서울 등지에 터를 잡고 창작 활동을 하는 작가들의 상견례를 겸한 자리여서인지 분위기는 차분하면서도 생기를 띠었다.

문학이 ‘정의’와 ‘민주주의’에 보탬이 되는 요소가 있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과 꿈을 언어로 제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법률과 제도가 규제하지 못하는 온갖 부정적인 인간의 속내와 언행을 폭로하고, 인간 내면에 자리 잡은 자유와 해방에 대한 갈구를 형상화하는 문학의 기능에 딴지를 걸 사람은 없다. 폭풍우처럼 휩쓸고 간 거리 곳곳에서 피를 뿌리며 죽어간 맑은 영혼이 있는 반면에, 제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다른 이들의 피와 살을 희생하고자 하는 검은 영혼이 있다. 일제의 강점으로 수많은 이들이 희생되고, 해방이 찾아왔지만 이념 갈등으로 분열되고, 더욱이 한국전쟁으로 무수한 파괴와 살육이 진행되었던 속에서도 이곳 부산이 지켜온 정신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한다.

밀물과 썰물처럼 온갖 사람과 물자가 빠져나가고 들어오는 속에서 만신창이가 된 것처럼 보였지만, 시나브로 정착하게 된 문화와 정신은 현재 새로운 도시공간으로 탈바꿈하려는 기지개를 켜면서 그 알곡을 펼쳐 보여야 하는 때에 다다랐다고 본다. 세계유산위원회가 내년 부산에서 개최되면서 이곳의 위상이 한층 도약하는 계기가 되겠지만 중요한 것은 시민들에게 안겨다 주었던 자존감 상실을 회복하는 일이다. 한때 서울 다음가는 대도시로 전국 각지에서 부산으로 몰려드는 때가 있었다. 산업화 시기 부산은 청년들의 꿈과 희망을 보상해 준 도시이자 해양산업의 요충지로서 산업과 무역의 플랫폼 기능을 담당했던 공간이었다. 그런 도시였던 부산이 처한 현실을 감안하면 지금도 부산을 지키면서 부산 사람만의 기질과 인정을 지니고 베풀고 있는 지역민의 자존감을 되살리는 방법 가운데 문학도 능히 포함될 수 있다.

용두산공원 일대가 그동안의 번영과 쇠락을 거듭하는 중에 알게 모르게 형성한 문학적 색채를 지워버려서는 안 된다. 시민들에게 뚜렷하게 각인되지 않았지만 여러 문화예술인의 마음으로 유전되어 온 언어의 쉼터, 다시 말해 시인의 체취가 군데군데 남아 있는 곳이다. 그중 하나가 부산 시단의 지킴이로서 동광동 백산기념관 부근 ‘강나루’란 주점을 운영하며 수많은 문학인과 예술인들을 품었던 고 이상개(1941~2022) 시인의 3주기가 곧 다가온다. 그 주점에서 문화예술인들은 정의와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일상의 속살까지도 조곤조곤 나누었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혁명까지도 말할 수 있었던 10평 남짓한 그 공간에 가을밤 어둠이 무겁게 가라앉아들 시각, 시인의 조용한 음성이 우리들 등을 어루만지는 듯한 늦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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