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식의 일필일침] 부산시장을 꿈꾸는가? 동천을 얘기하라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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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강이나 하천 ‘도시의 생명줄’
9개월 후면 시도지사 뽑는 지방선거
후보, 거대 담론보다 시민 삶에 주목을

동천 재생, 도심 상권·생태 회복 등 기회
북항 재개발과 연계 가능 지금이 적기
지속 가능한 설계, 공약으로 내놓길

영국 런던의 템스강, 프랑스 파리의 센강, 일본 도쿄의 스미다강, 싱가포르의 싱가포르강…. 세계 유명 도시들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하천들이다. 이들 중 일부는 오염과 악취로 시민에게 외면받던 시절이 있었지만 체계적인 재생을 통해 도시의 얼굴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이들 강의 사례는 도심 속 강이나 하천은 단순한 물길이 아니라 도시의 생명줄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이제 9개월 후면 시도지사 등을 뽑는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부산에서도 시장 후보들은 ○○○ 조성이나 건설 같은 거창한 구호나 담론을 앞다투어 쏟아낼 것이다. 물론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시민의 일상,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도시의 삶에 대해 후보들이 얼마나 진지한 관심을 보일지는 회의적이다.

대부분의 도시는 물을 따라 성장해 왔다. 하천은 단순한 자연환경이 아니라 도시를 살리는 젖줄이다. 고대 군주의 덕목이 홍수와 가뭄을 다스리는 치수였다면 오늘날의 치수는 곧 도시재생과 맞닿아 있다. 현대의 도시들은 예외 없이 강과 하천, 수변 공간을 중심으로 시민의 삶을 설계한다. 특히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도심 속 하천은 습도를 조절하고 열섬을 완화하며, 생태적 회복력을 높이는 오아시스가 된다. 그런 점에서 도심 속 하천 동천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동천은 단순한 하천이 아니다. 대한민국 근대산업의 발원지이자 근현대 부산의 역사다. 삼성, LG 등 한국 경제를 이끈 수많은 기업이 동천 주변에서 태동했고 부산의 대표 산업 신발도 동천과 함께였다. 수십 년간 악취와 오염의 대명사로 불려 왔던 동천이지만, 동시에 부산의 역사와 기억, 그리고 미래의 열쇠를 쥔 물길이기도 하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산시장을 꿈꾼다면 반드시 동천 재생을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동천 재생은 북항 2단계 재개발과 연계할 수 있는 지금이 적기(適期)다. 동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지난 20년간 부산은 동부산 개발에 집중해 왔다. 그 사이 원도심은 인구 감소와 상권 붕괴로 쇠락했다. 이 흐름을 되돌릴 물리적·상징적 축으로 동천이 주목된다.

동천 재생은 단순한 하천 복원이 아니라 도시 구조와 시민 삶을 새로 설계하는 일이다. 도심 경쟁력은 물론이고 환경·생태적 가치와 도시 역사·정체성까지 회복할 수 있다. 싱가포르의 싱가포르강, 일본 교토의 가모강은 강과 도심을 잇는 공간으로 거듭나며 도시 브랜드를 바꿨다. 부산도 못할 이유가 없다. 동천 재생은 부산의 미래을 다시 빚어내는 일이다. 그래서 통합적이고 지속 가능한 섬세한 설계와 전략이 요구된다. 물론 모든 것은 수질 개선이 전제다. 전문가들은 지류를 포함한 전면적 정비 없이는 동천을 맑게 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안전 또한 중요하다. 기후위기로 극한 호우가 일상화된 지금 범람 위험을 철저히 관리해야 시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최근 5년(2020~2024년) 간 홍수 피해 하천의 93.6%가 지방하천이었다. 동천을 국가하천으로 승격해 정부 차원의 예산과 지원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복개 구간은 벗겨내 자연이 숨 쉴 공간으로 되돌려야 한다. 그러나 조급해서는 안 된다. 한 시장의 임기 안에 모든 것을 끝내려 한다면 ‘모래성’이 될 수 있다. 싱가포르도 강을 되살리는데 1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낙동강 물이 학장천과 가야천을 따라 흘러 동천과 만나는 더 큰 그림도 가능하다. 그 사이사이에 작은 공원들이 징검다리처럼 이어진다면 도심 한복판에서 낙동강까지 ‘녹지 회랑’이 펼쳐지는 생태도시 부산이 현실이 될 수 있다. 물길 위로 작은 배들이 오가며 도심을 가르는 풍경도 상상해 본다. 동천의 본래 이름을 되찾는 일도 필요하다. 1899년 동래부지도에는 동천이 ‘범천’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이름을 되찾는 것은 도시의 역사와 정체성을 복원하는 일이다.

그동안 동천을 살리려는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직 시장 중에는 ‘자연하천 복원’을 내세워 대대적 정화사업을 추진했다. 또 다른 시장은 하루 수십만 톤의 바닷물을 끌어와 오염을 희석하는 해수도수사업도 벌였다. 도심 크루즈 운항을 제안한 시장도 있었지만 성과는 없었다. 결국 동천 재생은 부산의 숙원이자 희망 고문이 돼 버렸다. 하지만 이는 불가능한 일이어서가 아니다. 많은 이가 “동천 재생은 왜 안 되는가”라고 묻곤 한다. 그 답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실현하려 하지 않았을 뿐이다.”

도시는 결국 사람을 살게 해야 한다. 머물게 하고, 걷게 하고, 이야기를 나누게 해야 한다. 그 시작이 바로 동천이다. 동천을 묻는 것은 결국 부산의 미래를 묻는 것이다. 시민들은 거대한 장밋빛 청사진 뒤에 숨겨진 ‘동천의 꿈’을 읽어낼 준비가 되어 있다. 이제 시장 후보들이 답할 차례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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