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진규의 법의 창] 북극항로 시대, 부산의 역할
법무법인(유) 정인 변호사
요즘 가장 차갑고 뜨거운 곳은 북극해이다. 기후위기가 바다의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 북극해의 해빙 현상이 가속화되며,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북극항로’가 본격적으로 열린다.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기존 항해보다 30~40% 가까이 시간을 단축해 국제 해운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전 세계가 북극항로를 선도하고, 선점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중국은 이미 2024년 기준으로 35차례 북극항로 운항을 했고, 미국은 쇄빙선 구매계획을 발표했으며, 러시아는 2035년까지 북극항로 선정에 39조 원의 투자 계획을 밝혔다. 그리고 일본은 제4차 해운 기본 계획에 북극항로를 포함시켰으며, 프랑스의 대표적인 국적 선사인 CMA CGM은 올해 쇄빙선을 구매했다. 이제 북극항로는 더 이상 단순한 무역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전략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특히 부산은 북극항로의 기점이자 종점으로서, 물류와 해양산업의 중심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부산이 이 거대한 기회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준비, 그중에서도 법률적 기반 구축을 선행해야 한다. 국제 해양법(협약)부터 해양환경 보호, 항만 안전, 해양 보험, 분쟁조정까지, 북극항로는 단순한 길이 아니라 법이 지배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물류·해양산업 중심되는 거대한 기회
해양 사고 시 책임 소재 등 분쟁 발생
법령 발굴·입법 제안 주도적 역할해야
북극항로는 대부분 러시아 연해를 따라 형성돼 있고, 그 주변은 극한의 자연환경 속에 있다. 이 때문에 북극항로에는 ‘유엔해양법협약’과 국제해사기구(IMO)의 ‘극지방 운항 국제규정’ 등 다양한 국제기준이 적용된다. 부산에서 출항하는 선박이 북극항로를 안전하게 통과하기 위해서는, 이에 부합하는 선박의 구조 기준, 운항 능력, 승무원 자격 요건 등 국내 관련법 정비가 필수적이다. 부산시는 중앙정부와 협력해 극지항해를 위한 선박 검사와 인증 체계를 선도적으로 마련하고, 극지 전용 선박의 설계·건조에 필요한 법적 인허가 기준 구축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북극은 지구 생태계의 최전선이자 마지막 보루이다. 이곳에서 발생하는 해양오염이나 사고는 전 세계적 영향을 미친다. 이를 예방하고 책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환경영향평가, 선박 배출 규제, 해양 사고 시 책임소재와 손해배상 체계 등이 명확히 정립돼야 한다. 부산은 이미 친환경 항만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여기에 발맞춰 예컨대 ‘북극항로 통항 선박 특별관리 조례’ 등과 같은 지역 입법을 통해 지속 가능한 해양 이용의 모델 도시로 거듭나야 한다.
북극항로는 기상 조건이 극단적이며, 사고 위험도 높다. 이에 따라 관련 선박은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어 보험료가 급등하거나, 보험인수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 부산은 지방정부 차원의 선박 보증제도, 공공보험기구와의 연계, 리스크 평가 기준 마련 등을 검토해야 한다. 또, 해난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보험금 지급과 손해배상 책임에 대한 명확한 법적 기준과 국제조정 절차도 필요하다. 이와 같은 법제는 단지 위험과 손실을 줄이는 차원이 아니라, 부산이 해양 금융과 법률의 중심도시로 성장하기 위한 핵심 기반이 될 것이다.
북극항로 이용이 본격화하면, 항만 이용권, 운임 갈등, 사고 책임 등 다양한 국제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현재 일반 민사 법원 또는 일부 지방법원, 부산 중재센터가 그 일환을 담당하고 있지만, 보다 신속하고 전문적인 해상사건 처리를 위해서는 부산에 해사전문법원 설립이 필요하다(부산일보 7월 9일 자 23면 필자 칼럼 참조). 부산이 아시아 해양 분쟁 해결의 중심지가 되기 위해서는, 해사전문법원 이외에도 지방정부 차원의 전문 인력 양성에 필요한 법률 지원과 교육 체계도 함께 고민하고, 정비해야 한다.
이 모든 법과 제도의 준비에는 중앙정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지방정부가 장기적 전략을 가지고 먼저 움직여야 한다. 중앙정부가 국제협약과 국가 기준을 만드는 동안, 지방정부는 실무적 인프라와 지역 네트워크를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 북극권 도시와의 자매결연, 국제 포럼 유치, 지역 내 조례 제정 등을 통해 부산은 국제적 해양 법률 선도 도시로서의 위상을 구축해야 한다. 특히 부산시는 ‘북극항로 법제도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지역 기업·학계·법률가들과 함께 필요한 법령을 발굴하고 중앙정부에 입법을 제안하는 지방 주도형 해양 정책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북극항로는 단순한 항로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글로벌 해양 질서의 재편을 의미하며, 부산은 그 중심에 설 수 있는 도시다. 그러나 준비 없는 기회는 지속되지 않는다. 길이 열렸을 때, 그 길을 제대로 걷기 위해 필요한 것은 법과 제도의 준비가 그 시작이고, 그 준비에 부산시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빙상 실크로드’로 가는 북극의 문이 열리고 있다. 부산은 이제 북극항로를 시작으로 해양물류 도시를 넘어, 해양 법률 도시로 도약할 준비를 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