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기후 재난의 시대, 건축의 과제
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대표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생존의 지능 조명
'자연·인공·집단' 키워드 윤리·기술 환기
달라진 환경 감안한 설계 방식 논의해야
올여름은 말 그대로 ‘극단’이다. 사상 최장의 폭염특보가 이어지는 가운데, 시간당 10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진다. 더위와 비가 교대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겹쳐 도시를 뒤흔든다. 폭염이 더 강력한 폭우를 부르면서 극단적인 여름철 날씨가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이 됐다고 한다. 지난봄 대형 산불 피해를 입은 지역은 복구가 채 끝나기도 전에 폭우로 인해 토사 붕괴가 이어졌다. 급기야 일부 마을은 집단 이주를 결정해야 했다. 한편 도심 속 열섬 현상은 계층별로 생존 가능성을 갈라놓고 있다. 작열하는 태양을 피할 수단 없이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그리고 도시 빈민들에게 유독 가혹하다. 어느새 우리는 기후 위기라는 단어를 넘어 ‘기후 재난의 시대’에 들어섰다.
기후 위기의 문제 중 중요한 것은 ‘이전과 똑같이 회복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건축 역시 예전의 논리로는 답을 찾을 수 없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멋진 형태나 고급 자재, 높은 용적률을 추구하는 설계를 넘어, 기후 재난의 시대에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고 공존할 수 있을지를 묻는 건축이다.
제19회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흥미롭고도 본질적인 탐구를 시작했다. 지난 5월 15일부터 11월 23일까지 세계 50여 개국 750여 명의 건축가, 예술가, 과학자, 수학자, 기후 전문가, 철학자, 요리사, 목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초대돼 총 280개의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다. 총감독은 도시계획 건축가이자 MIT 교수인 카를로 라티(Carlo Ratti)다. 그는 이번 전시의 주제를 ‘지성(Intelligens) : 자연적, 인공적, 집단적’으로 제시했다. 이는 단순히 인간의 지능만을 뜻하지 않는다. 자연계의 복잡한 생명 시스템, 인공지능이 내놓는 패턴과 해석, 그리고 인간이 집단적으로 축적해 온 생활의 지혜 모두를 아우르는 확장된 개념이다. 그것은 공간의 미학도, 기술의 과시도 아니다.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하며 창의적으로 대응하는 능력, 즉 건축이 지닌 생존의 지능이다. 카를로 라티는 “우리가 직면한 시급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은 인간의 설계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연, 인공 시스템, 그리고 인간의 집단적 지혜가 상호작용하는 복합적 지능의 세계를 마주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당신이 짓는 이 건축은, 지금의 세계를 이해하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자연(Natural), 인공(Artificial), 집단(Collective)’이라는 세 개의 렌즈를 통해 건축을 바라본다. 이 세 키워드는 기후 위기 속에서의 건축이 마주한 윤리적·기술적 과제를 총체적으로 드러낸다.
‘자연’ 지능은 생태계 자체가 지닌 적응력과 회복탄력성을 가리킨다. 기후 위기 속에서 인간 중심의 도시계획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지구 생태계의 일부로서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물길을 막지 않는 저지대 주거, 땅과 건물이 호흡하는 재료의 사용, 에너지 순환을 고려한 설계 등 자연의 리듬과 기후의 변화에 순응하는 감각이 도시 설계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인공’ 지능은 첨단기술과 데이터, 인공지능을 통해 만들어진 새로운 건축 언어다. 드론을 이용한 재난 감시 시스템, AI 기반 설계 도구, 기후 시뮬레이션을 통한 도시 구조 분석까지, 기술은 지금껏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의 진보가 곧 삶의 진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스마트 도시, 탄소저감형 건축물도 결국 그 안에 담기는 인간의 경험과 공동체의 삶을 고려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집단’ 지능은 개인을 넘어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내는 지혜다. 공동체 주도형 도시 재생, 시민 참여 설계, 전통 지식과 현대 기술의 융합. 이러한 시도는 기후위기에 적응하기 위한 유연한 구조를 만들어낸다. 특히 이번 비엔날레는 지역의 목소리를 전면에 내세우며, 다국적 기업 중심의 개발 논리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유도한다. 더 이상 스타 건축가의 작품이 아닌, 시민들과의 협업, 지역의 기억, 공동체의 주체적 참여로서 완성되는 건축을 말한다. 기후 위기 시대에 건축은 권력의 상징이 아니라, 살아남는 연대의 기술이어야 한다. 그 방향은 단 하나의 도면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어떤 공간에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를 묻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건축은 이제 환경에 적응해야 할 때이다. 환경에 영향을 덜 주는 설계가 아니라 근본부터 다른 설계 방식을 논의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도시도 근본적으로 다시 질문되어야 한다. 기후 재난은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새롭게 짜야 할 일상이다. 건축이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과 자연, 기술과 공동체가 새롭게 맺는 관계를 설계함으로써,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기후 위기의 한복판에서, ‘건축’에 기대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