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수의 과기세] 다시 보는 우장춘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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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유전 성질 이용 우수 품종 육성 육종학 전공
'종의 합성' 실험적 입증 세계적 과학자 반열
씨 없는 수박 개발은 오해… 8월 10일 추모식

한번은 광안리해수욕장에 갔다. 도로변 화단에 피튜니아가 심겨 있었다. 남미가 원산지인 피튜니아는 오래 전부터 관상용으로 많은 인기를 누렸다. 문제는 암술과 수술이 모두 존재하는 겹꽃 피튜니아를 얻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처음으로 완전한 겹꽃 피튜니아를 개발한 인물은 누구일까? 장영실, 장기려와 함께 부산의 3대 과학자로 꼽히는 우장춘이다. 또 한번은 부산대 인근의 가정식 밥집을 찾았다. 깊은 맛의 배추김치와 달콤한 양배추 쌈이 곁들어진 백반을 먹었다. 우장춘은 1950년에 한국에 돌아온 후 채소의 품종을 개량하는 연구에 매진했다. 우량 품종을 찾아내는 데서 시작하여 교잡 실험을 통해 신품종을 개발해 나갔다. 그 결과 1960년에는 배추 원예 1호와 2호가 탄생했고, 1962년에는 양배추 동춘(東春)과 양파 원예 1호와 2호가 등장했다. 우장춘은 1959년 8월 10일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제자들을 통해 결실을 보았던 것이다.

광안리해수욕장과 가정식 밥집에서 함께 했던 동료들과 이와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두 놀라는 눈치였다. 우리의 일상에서 과학자를 만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한국의 과학자, 특히 부산의 과학자를 만나기는 더욱 어렵다. 무심코 여긴 것들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감사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우장춘에 대한 오해도 제법 있다. 그는 생물의 유전적 성질을 이용하여 우수한 품종을 길러내는 육종학을 전공했다. 우장춘은 육종학의 위력을 생생히 보여주기 위해 ‘씨 없는 수박’을 자주 활용했다. 강연회가 열릴 때마다 손수 재배한 씨 없는 수박을 꺼내 시연해 보였다. 씨 없는 수박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소문을 탔고, 1955년 대구에서는 ‘씨 없는 수박 시식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우장춘과 씨 없는 수박은 점점 밀접하게 연결되었으며, 급기야 우장춘이 씨 없는 수박의 ‘재배자’에서 ‘개발자’로 둔갑되기에 이르렀다. 씨 없는 수박은 교토제국대학의 기하라 히토시(木原均)가 1943년에 처음 개발했는데, 씨 없는 수박이 우장춘의 대표 업적으로 간주되는 촌극이 빚어졌다. 이러한 점은 일본의 여성 저술가 츠노다 후사코(角田房子)가 1990년에 우장춘의 전기로 발간한 〈나의 조국〉에서 지적된 바 있다.

우장춘의 가장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종의 합성’이 꼽힌다. 그것은 유채의 염색체수(38개)가 배추의 염색체수(20개)와 양배추의 염색체수(18개)를 합친 것과 동일하다는 사실에서 출발했다. 우장춘은 배추와 양배추를 가지고 수많은 중간 교잡 실험을 시도했으며 그 결과 유채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곧이어 그는 배추와 흑겨자를 활용하여 갓을 만들었고, 흑겨자와 양배추를 교잡하여 에티오피아 겨자를 합성했다. 배추, 양배추, 흑겨자가 꼭짓점에 위치하고 중간에 유채, 갓, 에티오피아 겨자가 있는 그림은 ‘우의 트라이앵글(U’s Triangle)’로 불린다. 우장춘은 1935년에 ‘배춧속 식물에 관한 게놈 분석’이라는 63쪽짜리 영어 논문을 발표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1936년에 도쿄제국대학에서 농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우장춘의 연구는 매우 괄목한 것이지만, 이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해서는 곤란하다. 지금도 인터넷 자료를 검색해 보면 “우장춘의 연구가 세계 최초로 다윈의 진화론을 논박하고 수정했다”는 식의 표현이 종종 등장한다. 그러나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같은 종들의 교배를 통해서만 새로운 종이 출현한다고 주장하지도, 다른 종들의 교배를 통한 종분화가 불가능하다고 단언하지도 않았다.

또한 일본의 육종학자들은 1910년대부터 인근 품종들의 상관성을 고려하여 식물종이 진화하는 양상을 탐구해 왔다. 특히 1930년에는 앞서 언급한 기하라 히토시가 ‘게놈 분석’이라고 부른 염색체 분석 방법을 정립하여 밀의 종분화를 탐구하고 있었다. 우장춘은 이러한 연구 전통 내에서 배춧속 품종 사이의 교잡 실험을 통해 해당 작물들의 상호관계를 밝혔던 셈이다. 우장춘의 연구는 종의 합성에 관한 주장을 최초로 입증하여 그것이 과학적 이론으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의의가 있다.

우장춘이 씨 없는 수박을 개발하지 않았고 종의 합성을 처음 논의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의 위상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것이 없어도 우장춘은 위대하다. 종의 합성을 실험적으로 입증했다는 것만으로도 세계적인 과학자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더 나아가 우장춘은 조국으로 돌아와 일본에서 하던 첨단 연구를 이어가지 않고, 한국의 실정과 요구에 부합하는 연구로 전향하는 또 다른 위대함을 보였다.

오는 8월 10일은 우장춘의 기일이다. 부산 동래구는 2006년부터 해마다 우장춘 박사 추모식 거행을 주관하고 있다. 이번 추모식을 계기로 우장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그의 세계가 더욱 잘 조명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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