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협상 암초 만난 ‘온라인플랫폼법’…플랫폼 규율 늦어지나
미국 재계 한국 온플법 추진 반대의견 밝혀
미 하원, 자국기업 영향 설명 요청 서한 보내
관세협상에서 온플법 입법 주요의제로 다뤄
빅테크 기업의 독과점 횡포나 소상공인 갑질 행위를 막기 위한 ‘온라인 플랫폼법’(온플법) 입법이 미국의 입김에 다시 표류하는 모양새다.
독과점 규제는 일단 미루고 갑질 규제를 담은 입법만 우선 추진하려는 계획마저도 상호 관세를 앞세운 미국의 전방위적 압박에 공전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온플법이란 쿠팡 배민 등 온라인플랫폼 대기업의 불공정거래를 방지하고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다. 그런데 미국은 자국의 구글 애플 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이 제공하는 혁신적인 서비스를 막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27일 관가 등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한 ‘온플법’ 입법은 미국 재계·입법부·행정부의 ‘삼각 파고’ 앞에 표류하는 흐름이다.
미국의 반발은 재계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재계를 대변하는 미국상공회의소, 구글·아마존 등이 속한 미국 컴퓨터통신산업협회는 윤석열 정부 시절부터 공개적으로 한국의 온플법 추진에 반대 의견을 밝혀왔다.
아울러 미국 하원은 지난 1일 의원 43명 명의로 트럼프 행정부에 한국 무역 협상에서 온플법을 의제로 다루라고 촉구했다.
지난 24일에는 미 하원 법사위가 한국의 온플법으로 미국 기업이 받을 영향을 설명해 달라는 요청 서한을 우리나라 공정위에 보냈다.
미국의 반발은 온플법이 구글·애플·메타 등 미국의 빅테크 기업을 부당하게 표적으로 삼는다는 의심에서 나온다.
미 하원은 “한국의 법안은 노골적으로 차별적인 유럽연합의 디지털시장법(DMA)과 유사하다”며 “바이트댄스, 알리바바, 테무 같은 중국의 주요 디지털 대기업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미국 기업들을 과도하게 겨냥해 중국공산당의 이익을 진전시킬 것”이라고까지 주장했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국회에서 “특정국가를 차별해서 해당 법을 적용하겠다는 계획을 가진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미국 측은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상호관세 협상에서 한국의 온플법 입법을 주요 의제로 다루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25일 브리핑에서 “온플법이 주요하게 다뤄지고 있다는 점은 국회도 알고 있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재명 정부 출범 후 50일이 지나도록 온플법 주무 부처인 공정위의 새 수장이 지명되지 않는 이유가 미국 눈치 보기라는 의견도 나온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온플법을 거대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을 규제하는 법(독점규제법)과 갑을관계를 다루는 법(공정화법)으로 이원화해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미국이 강하게 반발하는 독점규제법은 추후 제정하고,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공정화법을 먼저 도입하자는 것이다.
공정화법 논의는 입점업체가 내는 수수료 상한선을 정하는 방향으로 가는 모습이었다.
모든 플랫폼에 수수료 상한제를 도입할 경우, 구글 플레이스토어나 애플 앱스토어가 규제 대상으로 들어올 수 있어 대상을 ‘국내 배달앱’으로, 상한제 규율은 별도 법으로 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온플법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어떤 요구를 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만약 관세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한국의 온플법 입법에 계속 어깃장을 놓을 가능성이 있다.
온플법 입법 시도가 늦어질수록 국내 산업과 소상공인에 피해가 간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입법이 늦어지면 글로벌 플랫폼은 기존에 누리던 혜택을 강화하면서 인공지능(AI) 등으로 사업을 확대하려 할 것”이라며 “손해를 보는 것은 국내 플랫폼들”이라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한미 간 디지털플랫폼·AI 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접근 전략을 바꿀 필요가 있다. 규제 논쟁이 아니라 전략적 디지털 동맹으로 논점을 전환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덕준 기자 casiope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