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의 곰곰 생각] 극우가 온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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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백인 중산층 지위 상실감 선동
미 트럼프 권위주의 지탱 배경
 
한국, 정치·경제적 양극화 심각
혐오·차별 심리 자극 요인 넘쳐
보수 정당조차 극우 침투 취약
견제 장치·자정 능력 고민해야

극우 성향의 전직 역사강사 전한길 씨가 국민의힘에 입당하자 당이 ‘친길’(친전한길)과 ‘반길’(반전한길)로 쪼개졌다. 그는 아스팔트와 유튜브에서 횡행하던 ‘윤 어게인’(윤석열 전 대통령의 복귀)과 부정선거 의혹을 들고 와 당을 장악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윤석열과의 단절’을 외치는 혁신파는 ‘반극우연대’로 뭉쳐 맞서지만 당의 주류인 ‘언더 친윤’(숨겨진 친윤석열)은 “당의 다양성”이라며 눙쳐 버린다. 그 사이 “계엄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고 주장했던 인사는 당대표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극우에 침식당하는 보수 정당의 난맥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장면이다.

극우는 더 이상 거리에만 있지 않다. 또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드는 노년층에 국한되지도 않는다. 21대 대선 출구조사를 보면 ‘이대남’(20대 남성) 과반이 국민의힘을 지지했다.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난입했다가 체포된 시위대 과반이 20~30대였다. 이 흐름이 변방에 있던 ‘윤 어게인’ 세력을 정치권 한복판으로 밀어 올리고 있다. 젊은 세대의 정치적 불만이 비상식적으로 분출되는 현상을 더 이상 간과해선 안 된다. 이 점에서 미국은 반면교사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1기 때는 정치권의 아웃사이더가 부상한 배경으로 ‘백인 빈곤층’의 지지가 거론됐다. 제조업 몰락으로 피폐해진 저소득층이 트럼프에 몰표를 줬다는 거다. 트럼프가 공화당을 장악한 2기에 들어서는 변곡점을 맞는다.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의사당에 난입했던 시위대 다수가 중산층 백인 남성들이었던 것처럼, 미국의 정치 지형은 보수 색채가 짙어지는 수준을 넘는 정체성 변화를 겪고 있다. 극우적 선동에 빈곤층뿐만 아니라 중산층과 전 연령대가 포섭되고 있다는 의미다.

트럼프는 ‘지위 상실’에 대한 불안감을 부추겼다. 주류에서 추락하는 좌절감 또는 두려움을 자극해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고 이를 ‘정당한 분노’로 포장했다. 이민자, 여성, 비기독교, 유색 인종을 공공의 적으로 몰았다. 그들이 복지, 일자리, 사회적 지위를 빼앗아 갔다는 주장은 빈곤층뿐만 아니라 중산층의 영혼을 흔들었다.

트럼프가 주창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에서의 ‘미국’은 모두의 미국이 아니다. ‘기독교 가정의 백인 가부장’에 걸림돌이 되는 소수자는 처단 대상이다. 이는 독일 나치의 갈라치기, 즉 분할 통치(divide and rule)와 판박이다. 내부의 특정 집단을 위험 세력으로 내몰아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오래된 극우의 전략이다. ‘대안 우파’(alternative right)가 퍼뜨린 피해자 프레임이 일반화되면서 미국은 극우적 혐오와 차별이 당연시되는 사회로 가고 있다. 급기야 ‘내 권리가 침탈당했다’는 논리는 동맹국에 관세 폭탄을 던지고, 미국에 제조업 투자를 강요하는 식으로끼지 왜곡된다.

“어떻게 만든 나라인데…!” ‘극우 트럼프’를 지탱하는 “내가 주인”이라는 정서는 아스팔트 태극기 부대 노년층의 울분과 겹친다. 우려스러운 것은 한국에서도 청년 세대, 중산층 전문직, 종교계로 극우 세력이 파고 들며 외연을 확장하는 점이다. 혐오와 차별이 정치 자산이 되고, 세대와 계층을 넘는 우향우 추세가 뚜렷한 미국의 낯선 풍경이 한국에서 재연되는 대목은 당혹스럽다.

물론 젊은 남성의 극우화 진단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부모 세대에 당연했던 좋은 일자리, 결혼과 출산, 고급 아파트 그리고 노후 복지를 누릴 수 없게 되자 비뚤어진 집단 행동으로 나타나는 건 실재한다. 종래의 역할 모델이었던 가장이 될 수 없자 느끼는 남성성 상실감은 ‘극우 트럼프’를 만든 ‘억울한 약자’ 정서와 동전의 양면이다. 그 결과 여성과 외국인(중국), 장애인,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똘똘 뭉쳐쳐 거대한 회오리를 일으킨다.

일본의 극우 참정당이 외국인 경멸을 내세워 참의원 선거에서 약진한 것처럼, 극우의 기승은 저성장 시대 전 세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정치적, 경제적 양극화가 심각한 한국은 인화성 불쏘시개가 널렸다는 게 문제다. 중산층 세습과 서울공화국, 정규직의 벽 등 불공정·불공평한 사회는 극우 세력이 덩치를 키울 수 있는 최적의 토양이다.

보수의 적통을 자처하는 국민의힘은 겨우 극우 역사강사 한 명이 일으킨 바람에 휘청댄다. 21대 대선에서 무려 1450만 표를 얻은 정당이라 믿기 힘들 정도다. 극우 바이러스에 대한 내성을 생각하게 만드는 사례다. 거리의 극우가 제도권으로 진격하고 있다. 극우 포퓰리즘은 지금은 미약하게 보이지만 ‘분노의 빅텐트’가 펼쳐지는 건 시간문제일 수 있다. 민주주의 건강성을 지키는 견제 장치와 자정 능력 그리고 통합의 가치를 숙고해야 할 때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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